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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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꺽인 검은 장미 / 기사 펌

휘수 Hwisu 2006. 3. 9. 00:57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은 그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존 레넌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는 팬들이 있듯이, 90년대 힙합 전성시대의 정점에 서 있었던 래퍼 투팩 아마루 샤커(1971∼96) 역시 팬들에겐 추앙의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천재 래퍼로 칭송받았던 그 투팩은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래퍼로 활동하기 이전인 열아홉살 때 쓴 시를 모은 유고시집 <콘크리트에 핀 장미>(안의정 옮김, 인북스 펴냄)가 국내에도 소개돼있습니다.

래퍼이던 투팩이 이제 시인으로도 평가받듯이 랩과 시, 얼핏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두 장르는 말로 이뤄진다는 공통점말고도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랩은 ‘플로’(흐름)와 ‘라임’(각운)이 생명. 자유로워진 요즘 시의 원형과 아주 비슷한 것입니다. 거기에 자유로운 언어의 분출은 요즘 시의 경향과도 맞아떨어집니다. 이미 래퍼 투팩의 시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문학교재로 삼고 있을 정도로 시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투팩의 시는 이처럼 랩이 문학적으로 인정받는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래퍼 투팩의 과격한 이미지와 숨겨진 순수성을 함께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습니다. 투팩의 시는 그야말로 흑인만의 정서를 통해 사회보편의 진리를 추구하는 젊은 청년의 꿈을 담고 있습니다. ‘콘크리트에 핀 장미’라는 시에서는 ‘그대는 들었는가/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장미에 대해// 두발 없이도 걷는 법을 스스로 깨달아/ 자연의 법칙 따위는 엉터리라는 걸 증명하였고(중략) 장미는 꿈을 포기하지 않기에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네’라며 흑인의 자존과 자립을 노래하기도 하고, ‘정부보조금 혹은 내 영혼’이란 시에서는 ‘미국 정부에 내 영혼을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굶주리며 거리를 배회하리라’며 직설적으로 흑인을 차별하는 미국사회를 질타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대중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자유의 여신상과 정의 여인상의 눈에/ 안경을 씌워주어야 한다’며 흑인을 차별하는 미국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을 조롱하기도 하지요.

제 보기에, 투팩이란 인물의 의미는 미국 현대사회를 읽는 또다른 독법이기도 합니다. 투팩은 무엇보다도 힙합이란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던 90년대 미국 힙합문화의 상징적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팩이란 인물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90년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대중문화의 주류문화였던 힙합을 이해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투팩은 흑인과격단체인 블랙팬더의 일원이었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슬럼가 다른 청소년들처럼 갱노릇을 하기도 하면서 자라났습니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여덟번이나 체포될 정도로 반사회적이었지만, 20대에 들어서자마자 잘생긴 외모와 탁월한 랩 실력으로 가수 겸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 흑인들의 우상으로 떠올랐습니다. 92년 이후 모두 열두장의 음반을 발표해 이 가운데 9장이 200만장 이상 팔리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스타가 된 뒤에도 그의 삶은 청소년기처럼 온갖 스캔들과 사건으로 점철됐습니다. 갱단 출신답게 92년에는 한 소년을 죽인 혐의로 기소당하기도 했고, 93년에는 사복경찰 살해죄로 체포됐다가 나중에 기각처리된 적도 있었습니다. 총격으로 숨지기 이전에도 여러 차례 총격을 받았습니다. 92년에 백인경찰에 총을 쏜 흑인소년과 94년에 경관을 살해한 또다른 10대가 모두 투팩의 노래에서 범행의 영감을 얻었다고 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댄 퀘일 부통령이 그의 음반을 사회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투팩의 전성기는 불과 5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96년 9월8일 투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타이슨의 권투경기를 보고 나오다 괴한한테 총을 맞아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제로 투팩은 스스로 자신이 서른살 이전에 죽을 것이라고 예견해왔는데 스물일곱에 숨진 것입니다.

갑작스런 죽음은 마치 제임스 딘처럼, 또는 요절한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처럼 투팩을 더욱 신화적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스스로는 평생 범죄와 친숙했으면서도 가출 10대들을 위한 사회활동을 하는 등 너무나 모순된 행동으로 가득했던 그의 평소 생활도 그런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아직도 그가 살아 있다고 믿는 팬들의 광적인 반응도 그의 신화를 유지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투팩 생존설을 주장하는 인터넷사이트가 수두룩하게 개설돼 있습니다.

투팩 생존설을 주장하는 팬들은 투팩이 죽은 바로 다음날 화장됐다는 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며, 항상 방탄 조끼를 입고 다녔던 그가 사고를 당한 날 방탄 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점도 사망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주장합니다. 또 투팩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다는 측근의 증언도 투팩이 일부러 죽음으로 자신을 은폐하고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떠났다는 가설을 내세우는 이들의 논거 가운데 하납니다. 투팩이 숨지기 직전 만들었던 한 뮤직비디오에서 투팩과 똑 닮은 연기자가 마치 얼마 뒤의 사건처럼 총에 맞아 쓰러진 뒤 부활하는 내용으로 발표된 점도 이런 소문을 부추겼습니다.

이런 온갖 비상식적인 논란 속에서 그는 아직도 미국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유고시집부터 유고음반까지 그의 이름을 단 문화상품들의 상품성은 고정시장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타는 가고 전설이 남습니다. 전설은 스타를 더욱 물신화합니다. 그래도 소비자는 기꺼이 주머니를 털지요. 스타를 사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