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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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시모음 1

휘수 Hwisu 2006. 12. 5. 00:36

인천 출생
2000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인천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빈터' 동인
시집 <산으로 간 물고기>2004년 문학의전당


북소리

 

숨가쁘게 달려오고 있다 그가

 

허공을 베어 넘어뜨리며

 

벼랑 치받는 파도를 건너뛰며

 

울짱한 떡갈나무 숲에 꽝꽝 부딪치며

 

월장하는 달빛을 뚫고

 

아직 덜 마른 풀대궁을 지나서 와

 

들숨처럼 나에게로

 

산으로 간 물고기

 

산중 절간에서 물고기를 본다
두 눈 부릅뜨고
바람의 경전을 듣고 있다  
‘잠들지 마라’
딱딱한 비늘의
저 물고기
보드랍고 빛나던 속살은 뉘게 다 내어주고
속 빈 몸뚱어리로 남은 것이냐

 

산사 뒤꼍의 나뭇잎이 흔들린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지느러미를 흔들어댄 모양이다
사방으로 번지는 비린내
산빛보다 환하다


어떤 사랑

 

절간 마당 풀 섶에서
버마재비 한 쌍이
무아경의 내川를 건너고 있구나
소리와 빛이 잠시 멎었다
풀리며 만길 적막이 걷히자
각시가 신랑의 머리통을 아작,
어느 하늘 끝에서 소리 없이 천둥 터지는구나
신랑은 參禪 중  
각시 입안에서 가슴 배 팔다리 바수어지는
저를 바라보고 있구나
새끼발가락 끝에서 바르르 떨던
나머지 生 한 터럭마저  
허공으로 사라지고
붉은 입술 각시 유유히 자리를 뜨고

 

大寂光殿에서 염불소리 흘러와
참선하던 자리에 고여
한낮이 깊구나
막무가내로 깊어가는구나


신발 속의 길들이

 

먼지 낀 선반 위
어미의 낡은 중국구두 한 켤레
그 속에서 밧줄처럼 질긴
수백 갈래의 길들이 흘러나오네
어미는 그 질긴 길들 놓아두고
막차로 갔네
  
나는 신발에 묻은 먼지들을 말끔히 털어 내네
평생 모질었던 시간들을 위로해 주듯
신발 등에 달려있는 색색구슬들이
어미의 빈발을 쓸어주고 있네
반짝거리네
어민 발 시리지 않겠네

 

신발 속
어느 길에선가 걸어나왔을 반달
잎 진 오동나무 끝에 걸리어 있네
어미 간 길을 비추고 있네

 

복숭아꽃이 내게로

 

꽃잎을 따서 그늘에 둔다
백반가루 섞어 흰 사기그릇에 짓찧는다
꽃의 살점들이 뭉그러지는 소리 들린다
우묵하게 사발이 패이고 그 안으로 시퍼런 고요가 잦아든다

 

저녁상 물린 뒤
손톱마다 소복하게 진초록 꽃잎들을 올려놓는다
붉은 물이 뚝 뚝 떨어진다
아주까리 잎사귀에 싸인 손끝들 아릿아릿
잎사귀를 처맨 흰 무명실이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들을 한 쪽 구석에다 둔다
내 손톱 속 어느 깊숙한 곳에서
서서히 봉숭아꽃이 피어난다
어둠 속 마당귀에 누군가 어른거린다
별이 떴다 진다

 

물컹, 初經이 쏟아지고

 

내 속에 새빨간 燈 하나 켜진다

 

소금꽃

 

여름 석양을 지고

리어카 끄는 노인의 등에 소금꽃 가득하다

빛 바랜 검은 티셔츠 위로 하얗게 솟은

엄숙한

노동의 꽃잎들

 

나는

차마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손에 들려있는

詩集이

무색하기만 하여


출처, 문학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