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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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희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2. 12. 17:23

진주 출생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

1989년 ‘현대시학’ 등단

2004년 박인환 문학상 특별상 수상

2005년 경남문학상 수상 
시집,「트렁크」「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뜻밖의 대답」


못에게

        
박혀 있는 게
못의 힘인 줄 아는
바보
먹통
 
못 느끼겠니......?
 
못의 엉덩이를 두드려가며 깊이
깊이 못과
교접하는
상처의

 

탄력?

 

시집,트렁크(세계사,1995)

 

시를 분류하는 법, 중국의 백과사전

 

a) 정육과 肉汁으로 사는 것
b) 애인의 아랫도리처럼 달콤한 것
c) 애인의 아랫도리처럼 구역질나는 것
d) 두고 보면 알게 되는 것
e) 두고 보면 모르게 되는 것
f)  어디가 입이고 어디가 항문이어도 좋은 것
g) 수세식 변기처럼 순결한 것
h) 똥을 먹일 수 있는 것
i) 끽 소리 없이 똥을 먹는 것
j) 이름만 불러도 깜짝깜짝 놀라는 것
k) 토끼잠을 자고 하루 스물세 시간 토끼씹을 하는 것
l) 더러운 곳을 피해서 무서운 곳으로 가는 것
m) 무서운 곳을 피해서 더 더러운 곳으로 가는 것
n) 피가 모조리 구정물로 변해도 썩지 않는 것
o) 여분의 불알을 질질 끌며 문지방을 넘나드는 것
p) 입을 열 때마다 벌건 자지가 튀어나오는 것
q) 혀가 깃발처럼 일렁이는 것
r) 웬만해선 숨통을 끊을 수 없는 것
s) 도끼를 맞아도 언제나 빗맞는 것
t) 전염병처럼 피해야 하는 것
u) 부를 때마다 틀린 얼굴로 돌아보는 것

 

이봐, 오늘 내가                                                       


문이, 벌컥

열리고 헐레벌떡 추억은

되돌아 온다 마치 잊은 것이라도 있다는 듯이

추악한 삶보다 끔찍한 것은 추악한 추억

까마귀 고기를 먹어가며 추억은

정욕과 망각의 까마귀 나를

구워 먹으며 추억은

나보다 오래

살것이다 헐떡 거리며 추억은 백살까지

발기할지 모른다 이미

백살일까, 이봐

오늘 내가

백살이야?

 

얼음여자

 

1


보여주마
얼음답게, 몸 속을
드나드는 톱날들을 환희
보게 해주마
물이 되는 살의 공포, 나를
썰음질하는 실물의
톱니들을
만지게 해주마.....얼음
톱밥, 물이 되는
시간의
닭살들을

 

2


얼음톱밥에
삶은 피를 끼얹어 먹는 팥빙수

 

비벼 먹어라 겁내지 말고
무색무취가 무섭대서
색소로 물들인
노랑 주황
얼음 핏방울

 

거미

 

하루 세 끼의 극약과 세 알의 독약으로 연명하는 거미


극(極)과 독(毒)으로 내공을 쌓는
독거미
허공의 대갈통을 끌어안는
거미
거미가 다 된
거미
혼잣말을 하는
거미


 거미는 허공에 대고 대화를 시작한다 허공에 대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없는 문을
 닫는다
 
 왜 모조리


장바구니를 들고 오늘은 또 무엇을
똥으로 만들어 줄까
미나리 상추 쑥갓
바지락 피조개
펄펄 뛰는 저 도다리란 놈을 똥으로
만들어 버려 ......?
항문을 쩝쩝 다시며 지나가는
과일전 좌판 위에
황도 백도 천도 복숭들
등천하는 저 향기를 구린내로
저 신선한 과육들을
똥으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분뇨의 회로 나를
거치면 모든 것은 왜
심지어 당신까지, 내게서
나오는 것은
왜 모조리


모과  
 
죽어서
썩는
屍臭로밖에는 너를
사로잡을 수 없어

 

검은 屍班이 번져가는 몸뚱어리
썩어갈수록 참혹하게
향그러운

 

이 집요한, 주검의
구애를

 

받아 다오
당신

 

트렁크

                                                              
이 가죽 트렁크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지퍼를 열면
몸뚱아리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 벌어지는


수취거부로
반송되어져 온

토막난 기억이 비닐에 싸인 채 쑤셔박혀 있는,이렇게

코를 찌르는, 이렇게
엽기적인

 

시집, 트렁크(세계사,1995)

 

꿈의 전부

 

뜨거운

 

생의 배꼽 위에서

 

복상사

 

하는 것만이

 

내 꿈의

 

전부

 

허불허불한                                                     

 

막차를 놓치고

저녁을 떼우는 역 앞 반점

들기만 하면 하염없이 길어나는 젓가락을 들고

벌건 짬뽕국물 속에서 건져내는 홍합들…… 불어터진

음부뿐이면서 생은, 왜

외설조차 하지 않을까

골수까지 우려준 국물 속에서

끝이 자꾸만 떨리는 젓가락으로 건져올리는

허불허불한 내 시의

회음들, 짜장이

더글더글 말라붙어 있는 탁자 위에서

일회용 젓가락으로 지그시

빌려보는, 이

상처의


모독의


시, 시, 시, 시울들………

 

음화 
 

인형이

있었다 눕히면 눈을

감았다 치마를 들치고 사내아이들이

연필심으로 사타구니를 쿡쿡 찌르며 킬킬거릴 때

눈을 감고 미동도 않던 인형이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책상 모서리에

패대기쳐지며

터진 뒤통수에서 지푸라기를 꺼내보이던

비명도 한 번 안 지르던 인형이

있었다 머리채를 끄잡혀

질질 끌려가며

희미하게 웃어보이던

걸레쪽처럼 칼질 된 얼굴이

있었다 쓰레기더미 위에서

제 몸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둥근

눈이

 
……있었다 

 

미꾸라지 숙회

 

희망, 희망 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미꾸라지 숙회라는 음식을 잡숴보셨는지요

산청 생초 명물이죠

기름 둘러 달군

백철솥 속에

펄펄 뛰는 미꾸라지들을 집어넣고

솥뚜껑을 덜썩이며 몸부림치고 있는

미꾸라지들 한가운데에

생두부 서너 모를 넣어주지요

그래 놓으면

서늘한 두부살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 미꾸라지들이

두부 속에 촘촘히 박힌 채

익어나오죠

그걸 본때 있게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는 음식인데요

말씀하시는 게, 그

두부모 아닌가요

우리 모두 대가리로부터 파고들어가

먹기 좋게 익혀져 나오는

허연 두부살?

 

늙은 창녀 노래 2

 

나를 입고

나를 신고

나를 걸타고

한 입 또 한 입 나를

베어무는 당신

피 빨고 노래 빨고

질겅질겅 씹어 재떨이에

내뱉는 당신

온몸에 남은 푸른 이빨자국들을

사랑할께요 시퍼렇게

사랑할께요 가지말아요

버리지 말아요 나의

기둥서방 당신

붙잡을 바짓가랭이도 없는 당신

입에서 항문으로

당신의 음경에

꼬치 꿰인 채

뜨거운 전기오븐 속을

빙글빙글빙글

영겁회귀

돌고 돌께요 간도

쓸개도 없이


산월

 

마음만 섞어도

애가 서는구나

들통이로구나

체외수정이란 게

이런 것일 줄

꿈에도 몰랐구나

생소주잔에 섞인

눈빛만으로도

애가 들어서는 줄

마른 입덧을 해가며

처음 아는구나

산월이 다가오는데

부득부득

온 하늘이 불러오는데

어디다

몸을 풀어야 할지

막막하구나

 

아버지의 자장가


이리 온 내 딸아

네 두 눈이 어여쁘구나

먹음직스럽구나

요리 중엔

어린 양의 눈알요리가 일품이라더구나

 

잘 먹었다 착한 딸아

후벼 먹힌 눈구멍엔 금작화를

심어보고 싶구나 피고름이 질컥여

물 줄 필요 없으니, 거

좋잖니......

 

어디 보자, 꽃핀 딸아

콧구멍 귓구멍 숨구멍에도 꽃을

꿎아주마 아기작 아기작 걸어다니는

살아 있는 꽃다발

사랑스럽구나

 

이리온, 내 딸아

아버지의 바다로 가자

일렁이는 저 거대한 물침대에

너를 눕혀주마

아버지의 바다에, 널

잠재워주마

 

오늘도 쓴다마는

 

오늘도 쓴다마는

무엇을 왜

쓰는지 한 자를 쓰면

두 자가 지워지고 한 줄을 읽으면

두 줄이 잊혀지네 읽으면

읽을수록 무식해지고

알면 알수록

혼미해지네

똥인지 된장인지

똥막대긴지 금막대긴지

금이 줄줄 흐르는 똥막대기가

똥이 줄줄 흐르는

금막대기가

목구멍 깊숙이 들어오는데

行間을 치면 行姦이

나오고 오늘도

쓴다마는

쓰기는 쓴다마는

선창가 고동소리도 옛 님도

없이 지나간 자국도

고일 눈물도

없이

 

시집, 뜻밖의 대답, 민음사

 

벗겨내주소서

 

지긋지긋하다

똥구멍이빨간시도

씹다붙여준껌같은섹스도

쓰고버린텍스같은생도

지긋지긋해지긋

지긋하옵니다아버지

풍선의대가리를가르고돌을채우는일도

있지도않은구름다리를벌벌떨면서건너는연애도아버지

지긋지긋하옵니다뻐꾸기시계속에서

시간마다튀어나오는아버지의

면상도색다른털벌레도

지긋지긋하옵니다

가래처럼찐득거리는희망도

손가락이열개나달린이구멍도

저뱀자루도아버지지긋

지긋하옵니다

벗겨주소서

벗겨내주소서아버지

나를아버지

콘돔처럼아버지

아버지의좆대가리에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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