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공광규 시모음 본문
시래기 한 움큼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를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막무가내 식당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 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화해시켜 보려는 경찰의 노력도
그를 신임하는 동료들이 찾아가 빌어도
식당주인은 한사코 절도죄를 주장했다
한 몫 보려는 식당 주인은
그 동안 시래기를 엄청 도둑 맞았다며
한 달치 월급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시래기 한줌 합의금이 한 달치 월급이라니!
그는 야박한 인심이 미웠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
평생 주먹다짐 한 번 안 해본 산골 출신인 그는
찬 유치장 바닥에 뒹굴다가 선잠에 들어
흙벽에 매달린 시래기를 보았다.
늙은 어머니 손처럼 오그라들어 부시럭거리는.
흙집 사리
오래 살아서 장마에 쿵! 하고 무너진
시골 헌집 옆구리를 삽으로 파내는데
깨진 장독과 버려진 사기그릇과
녹슨 쇠붙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조각난 오줌독과 개밥그릇도 나뒹군다
째그락거리던 식구들의 말소리와
염생이와 강아지와 동생들이 놀던 소리도 들린다
마침, 햇살이 들자
깨진 장독과 사기그릇과 오줌독과 개밥그릇과
쇠붙이 모서리들이 반짝거린다
수십 년 살다 죽은 흙집 사리다.
말똥 한덩이
청계천 관광마차 끄는 말이
광교 위에 똥 한 덩이를 퍽! 싸놓았다
인도에 박아놓은 화강암 틈으로
말똥이 퍼져 멀리멀리 뻗어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잘게 부순 풀잎조각들
풀잎이 살아나 퇴계로 종로로 뻗어가고
무교동 인사동 대학로를 덮어간다
건물 풀잎이 고층으로 자라고
자동차 딱정벌레가 떼 지어 다닌다
전철 지렁이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고
사람 애벌레가 먹이를 찾아 고물거린다
시집<말똥 한 덩이> 2008. 실천문학사
1960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6년 동서문학에 <저녁>등 5편 당선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등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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