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2007 1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작 / 이수진 본문
2007년 1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작 / 이수진
왜 그랬나요?
길바닥에 누워버린 들꽃처럼
바람에 지쳐버린 나무처럼
짐도 없지. 짐도 없지.
그 저 그저 살아온 거지.
버릴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고
배 따뜻하면 만족하지.
더 딘 더딘 아이처럼
발끝마다 가시가 솟아나도
울면 그만이지. 울면 그만이지.
얼음 속에 눈 녹아 들어가듯
추운 마음 익숙하여
울 수도 없었지.
그저 흉내 낸 거겠지.
시계바늘 돌아가듯
익숙한 하루태엽들
버젓이 내게 감기며
하루하루 노래하며 지내는
베짱이 신세였지.
그래 그게 나였지.
심사평
전년보다 응모작품 편수도 훨씬 많고 수준도 높았다. 아쉬운 점은 내용이나 수준이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많고, 산문인지 운문인지 구별이 안가는 시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좋은 시를 제대로 찾아 읽지 못한 결과로 보였다. 예컨대 우리 시를 폭넓게 접하는 대신 최근의 신춘문예 당선 시 등 젊은 사람들의 시만을 중점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또 시는 산문과 달리 응집성이 있어야 하고 폭발력이 있어야 하는데, 평이한 전개나 설명으로 산문과 구별이 어려운 시들도 많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분명하지 않고 수다스럽고 혼란스러운 것도 많은 시들이 공통으로 가진 흠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수진, 조명수, 박흥순의 시들은 이런 흠이 덜할뿐더러 개성이 강하고 아주 재미있게 읽혔다.
특히 이수진의 시들은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왜 그랬나요?’이나 ‘최면술’은 경쾌하고 나이브하면서도 어떠한 우리시와도 같지 않은 목소리의 시다. 남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투른 것 같은 말투, 덜 익은 것 같은 발상도 만약 자신이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오히려 큰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아주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완성도만 가지고 본다면 조명수의 시들이 더 나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때 낙타처럼/ 굽은 아버지의 등을 증오했다”는 진술의 ‘아버지의 등’은 호소력도 있고 감동도 준다. 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고 만져 본 것 같은 구절들이다. 박흥순의 ‘꽃잎이 바르르 떤다’는 산문이 아닌 시가 갖는 재미를 충분히 맛보게 해 주는 시다. ‘양파’도 말을 적당히 절제하고 생략한 점에 있어 다른 이들의 시와 크게 구별된다. 한데 어느 한구석 빈 것 같은 느낌을 어쩔 수가 없다. 이상 세 사람의 시 가운데서 선자들은 이수진의 ‘왜 그랬나요?’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유종호·신경림>
【1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시로 마음을 정화하고 싶다”
시로 표현된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남들로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공부하다 마음이 고단하거나 엉킬 때 마음을 풀기위해 일기 쓰듯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늘 습작이라고 생각했지 한편의 완성된 작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문학상에 응모한 것도 ‘그냥 한번 내보자’한 것인데 당선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너무 놀라 얼떨떨해요.” 지난 4월25일 마감한 13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전체 응모작 2208편 중 시 ‘왜 그랬나요?’로 당선된 이수진씨(30·충남 공주시 금학동 101)의 수상 소감이다.
이씨의 5편 응모작품 중 수상작으로 결정된 ‘왜 그랬나요?’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백수’상태로 지내며 자기 자신과의 갈등, 혹은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 오는 회의와 연민 등 혼란스러운 기분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씨는 때로 자기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기도 하며 저절로 누워버린 ‘들꽃’으로, 바람에 휘둘리느라 지친 ‘나무’로, 하루하루 태엽을 돌려줘야 돌아가는 낡은 괘종시계에 자신의 일상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이 시의 소재이면서 그만의 생각을 담아놓은 시를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고 한다. 시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싶다는 이씨는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오는 답답함과 자기반성을 편안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읊조리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내 개인의 이야기 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의 특별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고 싶어요.” 이제 갓 시작한 젊은 시인만이 꿈꿀 수 있는 바람일지 모른다. 아직 창작의 고통보다는 시라는 형식을 통해 마음속의 내밀한 구석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새내기 시인의 말처럼. 이씨는 지난 겨울 충남 대전에서 발간되는 문학계간지 ‘문학사랑’에 ‘절제’ ‘자전거 타고’ ‘하늘을 보며’ 등 5편의 작품으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지용신인상에 응모한 다른 작품 ‘최면술’은 권위나 외형에 집착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나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성하며 풀어낸 것이고 등단작품인 ‘자전거 타고’의 경우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느낀 단상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목원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해보았지만 잘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이씨는 자신에게 맞는 직장 찾는 일에 한동안 몰두할 것이고 그 틈새에 늘 시를 가까이 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70편 이상의 시를 써놓았으며 언젠가 시집을 내는 것도 그녀의 바람이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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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 인터뷰】“시로 마음을 정화하고 싶다” | ||||||||||||
이 수 진 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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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나요?’시는 제 자신이 정말 힘들고 지칠 때 내 자신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함으로 인해 내 스스로 나를 괴롭혔던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에서 쓰게 된 작품입니다. 이번 문학상에 응모한 것도 ‘그냥 한번 내보자’한 것인데 당선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너무 놀라 얼떨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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