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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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詩모음

2006 현대문학상 수상 박상순 시모음

휘수 Hwisu 2006. 9. 14. 00:41

박상순(朴賞淳)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198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繪畵科)졸업

서양미술사와 서양화를 전공
이론 쪽에 더 관심을 가졌으며, 후에 군 복무 중에

미술비평가나 화가가 되기보다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
1989년 문학출판사인 <(주)민음사>에 입사. 최초 직책은

아트디렉터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
1993년 첫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
1996년 두 번째 시집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1996년 <현대시 동인상> 수상
1998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수료
1998년 민음사의 미술부장, 편집부장을 거쳐 편집주간이 되어

문학계간지,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인문과학서 등 많은 저서를

기획 출간
1998년 이후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심사위원 역임
2005년 시집 <Love Adagio>출간
2005년 (주) 민음사의 대표이사
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 수상
2006년 3월 민음사 퇴사
현재, 출판사<웅진 문학에디션 뿔> 대표
경희대 국문과 겸임교수

<SBI 서울 북 인스티튜트>의 편집디자인 책임교수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

 

 

목화밭이 있었다 ─ 한 사람이 있었다
목화밭이 있었다 ─ 내가 있었다
한 사람이 있었다 ─ 무릎이 깨진 백색의 소년이 거기 있었다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
무릎이 깨진 백색의 소년은 가고
너는 아직도 목화밭에 있구나
너는 아직도 남아 있구나

 

목화밭이 있었다 ─ 두 사람이 있었다
목화밭이 있었다 ─ 내가 있었다
우리들이 있었다 ─ 머리에 솜털을 단 백색의 소년들이 있었다

 

흰 꽃들이 부를까. 하얀 달이 부를까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
너는 아직도 목화밭에 있구나
너는 아직도 남아 있구나

 

목화밭이 있었다 ─ 세 사람이 있었다
목화밭이 있었다 ─ 내가 있었다
나와 함께 있었다 ─ 내 손가락을 묻고 돌아선 백색의 소년들이
있었다

 

거기 있었다. 사막에도 비가 올까. 사막에도 비는 오겠지
솜털처럼 돋아날까. 내 손가락도 자라서 목화가 될까
흰 꽃들이 부를까. 목화솜이 부를까
하얀 달이 부를까. 다시 부를까

 

목화밭이 있었다 ─ 목화밭만 있었다
목화밭이 있었다 ─ 소년들만 있었다
거기 있었다 ─ 목화밭을 지나서 소년은 가고

 

내가 끌고 간 것들, 내가 들고 간 것들
내가 두 손에 꼬옥 움켜쥐고 간 것들
거기 있었다. 목화밭이 부를까. 목화솜이 부를까
네 손가락을 묻고 돌아선 백색의 소년은 가고
너는 아직도 남아 있구나. 목화밭에 있구나


죽은 말의 여름휴가

 

죽은 말이 여름휴가를 떠난다
아직 살아 있는 말들의 마을을 지나
달린다

 

죽은 말은
오래전에 사라진 나의 미래
살아 있는 말들은 내 미래의 시간이 죽은 뒤
솟아난 엉뚱한 미래

 

이제서야 죽은 말은 여름휴가를 떠난다
바다를 향해
엉뚱한 미래를 지나
달린다. 달린다

 

죽어서도 달린다
죽도록 달리고 또 달려서
바다로 간다

 

바다는
이미 오래전에 닥쳐온 나의 고독
모래알 같은 고독이 파도에 쓸려
밀려가고 밀려오는
여름은
아직 살아 있는 나의 죽음

 

꼬리에 죽음을 달고 내 죽은 말이
여름휴가를 떠난다
죽은 말
죽어버린 말
죽은 말
다시 살아나도 영원히 죽어버릴 나의 말


공구통을 뒤지다가

 

아홉 살의 나는 철길에서 돌아와 공구통을 뒤집니다.
나사못, 대못, 구부러진 녹슨 못.
아주 튼튼한 놈들만 긁어모았습니다

 

당신께 보냅니다

 

내년엔 나도 열한 살이 됩니다
열 살 때의 일들은 그냥 없던 걸로 합시다

 

당신께 보냅니다
즐거운 편지처럼

 

내년엔 나도 통통한 애인과 함께
오동도나 제주도
아니면 카프리 섬의 소형 버스 안에서
삼십대를 보냅니다

 

껄렁한 이십대는 없던 걸로 합시다
나사못, 대못, 구부러진 녹슨 못,
아주 뾰족한 놈들만 당신께 보냅니다

 

선물로 보냅니다

 

내년엔 나도 여덟 살이 됩니다
여덟 살의 나로 다시 돌아갑니다

 

당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구멍을 뚫고, 튼튼한 나사못으로
당신이 가는 길을 막아버린 뒤

 

다시 아홉 살이 되면 나는 철길에서 돌아와
내 인생의 공구통을 뒤지다가
당신이 내게 보낸 편지를 읽습니다
내게 남겨진
당신과 나의 기나긴 이별의 편지를


폭포 앞에서

 

그녀는 콩 한 개
나는 콩 두 알

 

그녀는 별 하나
나는 별 두 개

 

그녀는 갑자기 오토바이를 사고
나는 높은 산, 높은 길, 높은 구름, 더 높은 하늘을 사고

 

그녀는 콩 한 개
나는 콩 두 알

 

그녀는 별 하나
나는 별 두 개

 

나는 갑자기 높은 산, 높은 구름, 높은 하늘 위의
날개 달린 물고기가 되고

 

그녀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내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때
 
그녀가 처음부터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
그래도 그녀만을 폭포처럼 사랑했을 때

 

그녀는 콩 한 개
나는 콩 두 알

 

그녀는 별 하나
나는 별 두 개

 

그녀는 갑자기 오토바이를 사고 바다를 사고
나는 그녀를 위해 무지갯빛 물고기를 사고

 

그러나 그녀가 죽고
내가 죽고

 

그녀가 살아나고
나는 그냥 죽어버리고

 

그녀는 별 하나
나는 별 두 개

 

그녀는 콩 한 개
나는 콩 두 알

 

나는 갑자기 높은 산, 높은 구름, 높은 하늘 위의
날개 달린 물고기가 되고

 
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현실에 몸을 두고 살기가 외로워 의자 위에 내 몸을 올려놓습
니다. 올려놓고 보니 불편한 의자입니다. 그리고 보니 의자도
현실입니다. 이번에는 의자를 몸 위에 올려놓아 봅니다. 무겁
습니다. 의자를 내려놓고 나 자신과 맞서보기로 합니다. 온갖
사실들이 기억의 창고에서 쏟아져나옵니다. 한동안 그것들과
도 맞서보지만 여전히 의자 하나 놓여 있습니다.

 

저 하늘엔 비행기가 갑니다.

 

그래서 외로운 나도 길을 나서봅니다. 우연도 필연도 아닌 길
을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내 좁은 경험을 벗어나 다른 길을 찾
아보기로 합니다. 혼자 가기가 심심하기는 하지만 큰 길을 따
라 강변까지 나갑니다. 이제 계단을 내려가면 강입니다. 오른
발 왼발. 강변에선 함부로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른
발 왼발. 나는 갑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고 합니다.

 

강변에 나와 바람을 쏘입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내 의식이 바
람 속에서 눈을 뜹니다. 내 몸은 풀밭에 누워 있습니다. 누워
있는 몸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바람을 쏘인 탓인지 의식이 자
꾸 가벼워져 몸 밖으로 새나갈 것 같습니다. 하나 둘. 새어나갑
니다. 새나가고 맙니다.
저 하늘엔 비행기가 갑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고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나는
잠시 여기서 멈춰 있으라고 합니다.

 

 

             반복, 변주, 변신, 생성
                                        - 박상순론 / 오형엽                                                   
                                                           
 ‘무의식적 타자성의 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박상순의 시는 시니피에로부터 이탈한 시니피앙의 유희를 통해 기존 시의 관념을 전복시킴으로써 주체의 자기 동일성을 해체하고 억압된 타자성을 복원한다. 분석적 비평의 도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박상순의 시세계는 낯선 이미지와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추상화의 기법으로 보여준다.


 박상순 시의 어법은 기본적으로 꿈의 방식을 따른다. 꿈은 사고를 시각적인 그림으로 변환시켜 보여준다. 따라서 꿈 자체는 시에 있어서 묘사의 방식과 상통한다. 잠재적 꿈 사고는 욕망의 충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억압받으며 외형적 꿈 내용을 구성하기 때문에 단절되고 비약된다. 박상순의 시가 온전한 전체의 풍경화가 아니라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풍경화를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은 시각적 풍경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온전히 그 자체로 전달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꿈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 이야기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박상순의 시가 회화적 기법을 보여주면서도 이야기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상 혹은 풍경을 이야기하는 방식, 묘사를 진술로 전달하는 방식, 즉 꿈을 말하는 것이 박상순 시의 어법인 것이다.


  조감도의 기법에 의해 박상순의 시는 형용사와 부사를 최대한 제거하고, 명사와 동사의 결합을 통해 단순화되고 압축된 문장을 구사하며 꿈의 문법을 재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박상순 시의 문장은 명사와 동사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사와 동사의 결합은 가장 단순화된 문장의 형태인데, 박상순의 시는 이처럼 압축된 문장의 반복과 변형에 의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것은 압축과 전위, 은유와 환유의 연쇄 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꿈의 문법과 유사하다. 따라서 명사가 형성하는 계열체들과 동사가 형성하는 계열체들, 그리고 그 각각의 결합 관계를 추적한다면 박상순 시의 문법적 규칙을 규명할 수 있다.


 명사와 동사의 단순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박상순의 시는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압축과 전위, 은유와 환유가 교직된 무의식의 언어 게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아버지- 어머니- 나’ 혹은 ‘아저씨- 여인- 나’의 구도는 오이디푸스적이라기보다는 상호 침투적 관계이며 개인적 차원이라기보다 사회적, 문명사적 차원에 해당한다. 따라서 박상순의 시는 퇴행, 나르시시즘적 응시, 오이디푸스적 삼각형 등의 코드로 환원되는 정신분석학적 분석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그의 시가 문명/자연, 폭력/상처, 남성성/여성성 등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벗어나는 방식은 반복- 변주- 변신- 생성으로 이전 단계를 함입하며 전개되어 가는 진화의 과정이다. 이것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첫째, 기차?자전거?트럭 등의 교통 장치이고, 둘째, 신호등?안테나?전화기 등의 기호 체계와 주파수 장치 및 공명 장치이다. 박상순의 시는 차이를 동반한 반복의 어법을 통해 변형과 변주를 거듭하며 기존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선다.


 박상순 시에 등장하는 ‘벌레’ 혹은 ‘동물’은, 들뢰즈와 가타리 식으로 말하면, 리좀적 존재이며 분자적 존재이다. 리좀은 질적 복수성을 지닌 다양체로서 동일성에 예속되지 않는 차이를 생성하고, 타자성을 다른 존재에게까지 감염시키고 번식시킨다. ‘벌레’와 ‘동물’은 무리를 이루고 감염에 의해 형성되고 증식되며 변환된다. 동물-되기는 리좀-되기이며 분자-되기이다. 쥐-되기는 사람이 진짜 쥐가 되거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쥐와 생성의 연대를 이룸으로써 스스로를 쥐로 변형시켜 가는 운동이다. 동물-되기는 ‘상상’이 아니라 ‘몸소 겪음’을 의미하고 그래서 '정념'(passion)을 동반한다. 이 정념적인 운동을 통해 기성의 질서와 체계로부터 탈주선을 생성시키고 새로운 주체화의 점을 모색하게 된다.


 사후성의 원리에 의해 차이를 동반하는 반복을 거듭하며 근원적 사건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박상순의 시는 벌레-되기, 동물-되기, 회화-되기, 음악-되기, 불-되기 등으로 진화되는 변신, 즉 리좀적 분자 운동을  감행한다. 이 분자 운동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지각 불가능한 부재와 무의 지점인데, 이것은 복수적 힘의 잠재적 가능태로서의 모체, 스피노자적 개념의 실체를 의미한다. 이 잠재적 가능태로부터 다시 새로운 존재적 생성이 전개될 수 있는데, 따라서 이 지점으로부터 박상순의 시는 기존의 주체로부터 탈주하여 새로운 주체화의 점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박상순의 시는 벌레-되기, 동물-되기, 회화-되기, 음악-되기, 불-되기로 이전의 몸을 끌어안고 전개되는 ‘변신’의 탈주선을 그림으로써, 근원적 상처와 상실을 넘어서 기존의 주체를 무화시키고 새로운 주체화의 점을 모색한다. 이것은 결국 이성적 자아를 중심으로 성립된 근대적 주체를 넘어서는 길이고, 자아가 지닌 기억과 내면성을 넘어서는 길이다.


오형엽(吳瀅燁)
문학평론가
1965년 부산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국문과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
저서로 <신체와 문체> <주름과 기억> <한국 근대시와 시론의 구조적 연구>

<현대시의 지형과 맥락> 역서로 <이성의 수사학>
현재, 수원대학교 국문과 교수

 

               현대문학상 수상 시인 박상순
  
                                                   韓成禮(시인, 번역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지 중 하나인 ‘현대문학지’는 한국에서 가장 역사 깊은 문학지로서, 그동안 우수한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을 배출하며 문학인의 주요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역사가 오래되고 대표적인 문학지일수록 시와 소설, 희곡, 평론 등 모든 장르의 문학이 함께 실린다. 그래서 주요 문학상은 시부문과 소설부문, 평론부문으로 나뉘어 함께 각각의 문학상의 수여된다.
 현대문학지’에서 수여하는 ‘현대문학상’은 문학지의 이름에 걸맞게 매년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상을 받아왔다. 다른 주요 문학상들도 현재 한국에서 가장 문학의 정점에 서 있는 최고의 문인들에게 주어진다.


 신인문학상과는 구분이 있다. 문인이 되는 길 또한 일본과는 달리, 문인이 되려면 꼭 등용문을 거쳐야 한다. 문학지에서 수여하는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문학에 데뷔하는 길이 있고, 또 하나는 주요일간지를 통해서이다. 이것은 가장 화려하게 등단을 하는 경우이다. 매년 해가 바뀌면 각 신문은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당선자 이름과 사진, 당선소감, 작품 등을 크게 소개한다.

 

 현대문학상 수상자인 박상순은 명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장면이 휙휙 바뀌는 스크린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섞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출판계에서 종사해왔다. 그가 오래 근무하며 뛰어난 문학작품을 출간해온 민음사는 한국에서 문필가라면 누구나 가장 책을 내고 싶어 하는 메이저급 출판사인데, 그의 손은 출판계의 마이더스라고 할 만큼 좋은 책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기획자이고 책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이번 수상에서 그는 경쾌하고 신선한 세계를 가진 그의 시 만큼이나 다양한 호평을 받았다. 심사평들을 나열해보겠다.    


 “박상순 시인은 유사한 경향의 다른 시인들이 지나치게 시론적인 지식과 담론에 얽매여서 작의적이거나 메시지 중심의 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시적 포에지를 탄탄하게 함축하면서 긴장감을 잃지 않는 시편을 선보인 점이 특징이다.”


 “박상순 시인의 작품들은 대담한 환상, 현재와 과거의 혼성, 이미지의 빠른 회전을 통해서 자명한 세계의 전복을 이루어내고 있다. 가령 목화밭에 얽힌 추억과 환상과 이미지의 빠른 회전은 흡사 환등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은근한 음률성을 확보하고 있어 뻑뻑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가령 공구통을 통해서 시간의 질서에서 해방된 화자의 일생을 역시 환등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무의미의 시를 연상케 하는 시행의 비약이 신선하고 상쾌하다. 자명한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같아서 흥미롭다.” 


“박상순의 작품에서 받는 인상은 동원된 말들이 어떤 의미들로 무거워질까봐 뭔가를 의미하기 전에 그 말을 버리고 빨리빨리 다른 말로 옮겨간다는 것인데 그런 만큼 그의 시는 경쾌하고 그 공간은 놀이 공간에 가까운 듯하다. 그와 같은 특징은 의도되었다기보다는 체질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작품을 쓸 때 필경 ‘우연’을 많이 따라가지 않을까 짐작된다.


 언어가 감정이 한껏 탈색된 언어라는 점이다. 그래서 끈적끈적하지 않고 경쾌하다. 또 시간을 계기적 진행에서 해방하여 과거-현재-미래라는 구분을 없애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시간 속에서 겪었거나 겪는 일들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감정과 의미를 역시 무겁지 않은 언어로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박상순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고집해온 시인이다. 우리 시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엉뚱함이 있다. 흔해빠진 현실 재현으로서의 예술을 거부하는 시, 안이한 소통의 문법과 단절하는 시, 자신 만이 풀 수 있는 암호로 만들어진 음악 같기도 하고 때로는 무의식의 풍경을 드러낸 초현실주의 회화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독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에는 이미지와 리듬의 격조가 있다.”

시가쿠(詩學)
-2006, 10월호(2006년도 현대문학상-박상순,오형엽,한성례)

 

출처, 일본에 소개된 시인,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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