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13회 동양일보 신인문학 수필부문당선작 / 이은재 본문
13회 동양일보 신인문학 수필부문당선작
자운영이 만발할 때
내 유년의 봄은 냇가에 뿌리를 내린 버들강아지가 솜털을 털어 내며 시작되었다. 설한풍(雪寒風)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향기가 뒷동산에서 봄의 전령을 알리면 산기슭에 움츠려 있던 산수유가 파문을 지으며 꽃망울을 터트렸다. 살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동면하던 개구리 귀를 세우고 앞산에 수줍게 핀 진달래꽃 붉어지면 나는 자운영 나물을 캐러 들녘으로 달려가곤 했다.
자운영 나물을 좋아하셨던 할머니 때문에 나물을 캐러 가면 자운영에 욕심이 가곤 했다. 그러나 자운영은 쑥이나 냉이처럼 언덕에 저절로 돋아나는 봄나물이 아니었다. 누군가 씨앗을 뿌려 가꾸는 주인 있는 식물이었다. 더러는 언덕에 씨앗이 떨어져 주인 없는 자운영도 있었지만 수량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운영 밭에 살짝 들어가 자운영을 한 소쿠리 캐서 도망치곤 했다. 혹시 누가 보았을까 두려운 진땀이 가슴으로 흘러도 맛있게 드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냥 흐뭇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가끔 이웃 동네로 자운영 서리를 하러 갔다. 저녁 무렵 물을 길러 우물가로 모여든 아낙네들은 그믐밤에 자운영 서리를 하자며 은밀한 눈빛을 보냈다. 엄마를 대신해 물을 길러 왔다가 그 모의를 엿들을 때면 나는 신바람이 났다. 엄마는 나의 동행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엄마 몰래 살금살금 따라가곤 했다.
자운영을 서리하러 가는 날은 유난히 어둠이 깊었다. 나는 주인에게 들키는 것보다 깊은 어둠이 더 무서웠다. 주인에겐 들키지 않았지만 별들에겐 무수히 들켰던 밤, 별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촌부들의 비행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면서도 주인에게 소리치지 않았다. 정강이까지 자란 자운영을 낫으로 벨 때마다 놀란 개구리들은 풀 섶으로 도망치느라 야단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봄밤의 풍광에 매료되어 설레었다. 정적에 뒤덮인 들녘은 반딧불이의 비행으로 형광 숲이 되었고, 논두렁에서 그리움을 토하는 풀벌레들의 세레나데 소리에 마음이 젖어들곤 했다.
한 자루씩 담은 자운영 자루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음은 뿌듯하면서도 가슴은 쿵쿵 뛰었다. 동네 어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졸였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조금 전 전운이 감돌던 비무장 지대 같던 자운영 밭에 꼬리를 단 유성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유랑 별이 되어 자운영 밭을 헤매는 꿈을 밤새 꾸곤 했다.
인기척조차 살라버린 그믐밤/ 자루 하나씩 숨기고/ 도둑고양이 담을 넘듯/ 밭이랑을 걸었지// 고요한 풀섶/ 반딧불이 섬광에/ 놀란 개구리/ 푸드득 달아나는 소리에/ 내가 더 화들짝 놀랐던가// 보릿고개 남루한/ 빈 밥상에/ 혼자 있음을/ 몹시 미안해 하던// 봄날이면/ 서럽도록 그리운 맛 같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봄날의 하루해는 유난히 길었을 것이다. 삽살개 혼자서 빈집을 지키고 있던 유년의 봄날에 학교에서 돌아와 허기를 채우려고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아랫목 담요 속에 고구마 몇 알이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고구마는 엄마의 체온 같아서 일터에 나가신 엄마의 부재로 쓸쓸한 나를 위무해 주었다. 겨우내 지겹도록 먹었던 고구마를 군말 없이 삼킨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그 시절에 간식으로 고구마라도 먹을 수 있었던 부유가 어딘가. 어떤 날은 실컷 생고구마를 베어먹고 무심코 마주친 거울 속에서 입가에 고구마 전분이 하얗게 묻은 낯선 나를 발견하곤 했다. 숲에서 땔감을 구해야 했던 유년 시절, 숲에 가보면 낙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빈농의 허청에 쌓이고 황토 흙만 푸시시 얼어 있었다. 그런 시절에 자운영 서리는 어쩌면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민초들의 전투였었는지도 모른다.
자운영 꽃이 만발할 때면 자운영을 서리하며 설레던 봄밤을 그려본다. 그 시절엔 ‘절도’라는 말보다 ‘서리’라는 너그러운 표현을 썼다. 서리를 하다가 들켜도 주인은 송사하지 않았다. 장난스런 정서쯤으로 여겼다. 배가 고파도 까치밥을 위해 감을 다 따지 않고 몇 개는 감나무 우듬지에 남겨 놓을 줄 알았던 그런 인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 아우르며 살았다. 지금은 부유한데도 분쟁은 더 많다. 가진 자의 돈을 조금만 훔쳐도 ‘서리’라는 용서보다 ‘절도’라는 미움으로 단죄한다. 그러나 서리가 죄가 되지 않았던 전설 같은 아름다운 시절이 내 유년에는 있었다.
가난한 밥상에서 훌륭한 반찬이 되어 주었던 자운영의 아름다운 희생처럼 오늘 문득 따뜻한 사람들이 그립다. 나물로서 사명을 다한 자운영은 분홍빛 꽃을 피워 최후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꽃씨를 남겼다. 너무도 가난해서 마음까지도 척박했던 내 유년은 자운영 꽃길이 있어서 행복했다. 해마다 들녘에서 만나는 자운영 꽃은 유년의 봄날을 회상하게 했다. 가끔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돌아보게 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했다. 자운영 꽃이 만발할 때면 그 시절의 풋풋한 향기가 그리워 고향으로 달려간다.
토담에 피어오른 아지랑이에 무심코 창문을 열었다가 꽃샘바람에 도로 창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던, 그래서 늘 창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게 하였던 봄, 그 봄날에 다시 한 번 자운영 서리를 해 보았으면…….
심사평
수필에 대한 관심과 아울러 전반적으로 실력이 점차 늘어 심사하는 입장에서 반갑다.
수기나 기행문 수준에서 벗어나 문학성을 갖추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당선작으로는 이은재 님의 ‘자운영이 만발할 때’를 내세운다. 탄탄한 문장력에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솜씨에 호감이 간다. 어린 시절 자운영에 얽힌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자칫 추억거리를 들출 때는 감정이나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운데 이를 극복하여 문학작품으로 잘 다듬었다. 한밤중 자운영 서리를 하던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허기를 채우려고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아랫목 담요 속에 고구마 몇 알이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고구마는 엄마의 체온 같아서 일터에 나가신 엄마의 부재로 쓸쓸한 나를 위무해 주었다. 겨우내 지겹도록 먹었던 고구마를 군말 없이 삼킨다. 끼니도 잇지 못하던 그 시절에 간식으로 고구마라도 먹을 수 있었던 부유가 어딘가’ 가난하던 유년도 이런 따뜻한 온기 덕분에 곱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으리라.
함께 보낸 ‘저 고운 단풍처럼’은 화려한 단풍을 보는 시각에 음악의 청각을 접목하며 가을 여행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수필에 음악적 소양을 잘 살리기로는 ‘보리수 익는 계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를 배경으로 삼았다. 불우했던 젊어 죽은 음악가의 삶과 보리수나무 울타리 집에 살았던 어릴 적 친구의 억울한 죽음과 교직하는 재기가 번득인다.
신성애 님의 ‘군불’은 친정집에 들렀을 때 맛보는 따뜻한 정감을 잘 그리고 있다. 군불을 지피시는 ‘늙으신 아버지 얼굴에는 잘 익은 홍싯빛이 감돈다’는 표현도 좋다. 오래 안 쓰던 구들방 아랫목에서 불이 붙었던 해프닝도 따끈한 인정이 넘친 탓일까. ‘내 마음의 군불’도 반성하는 심성이 은근하다.
홍성란 님의 ‘화장’은 참 어려운 소재 - 남편의 죽음과 화장을 그런대로 잘 소화했다. 어려운 소재일수록 남다른 특이한 회상이며 애틋했던 사연,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아쉽다.
본선에 오른 77편의 작품을 보며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런 얘기들보다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더 접근했으면 싶다.
■심사위원:조성호(수필가)
당선소감
각종 소장을 들고 아우성치는 민원창구에 한 청년이 해바라기 그림을 들고 나타나자 갑자기 민원실이 환해졌다. 해바라기 들판처럼. 홍익대 학생이라는 그 청년은 손수 그린 것이라며 그림 한 점 사줄 것을 간청했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내년이면 대학생이 될 아들 녀석을 떠올리며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청소년들에게 무언가 희망의 끈을 놓아주고 싶었다. 정직하게,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세상은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림을 사 주기로 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던 고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사고로 바꿔놓은 것은 해바라기였다. 헨리 맨시니의 배경음악과 함께 우크라이나 벌판을 걸어가는 소피아 로렌의 우수에 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영화 ‘해바라기’와,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를 통하여 은연중 내 정서 깊숙이 각인되었던 해바라기를 작년 여름에 황달 걸린 환자처럼 눈동자가 샛노랗도록 볼 수 있었다. 직장의 배려로 다녀온 서유럽 연수에서였다. 그때의 아련한 기억을 반추하며 설레는 가슴으로 유독 해바라기 그림에 시선이 머물고 있는 나를 보고 청년은, “해바라기는 행운과 부를 주는 꽃이랍니다. 이 그림을 통해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해바라기처럼 환한 햇살을 뿌리며 청년이 돌아간 뒤에도 해바라기의 잔영이 여전히 가득한데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전화였다. 그 청년의 말처럼 정말 해바라기는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일까.
맞춤법, 띄어쓰기조차 무지했던 나는 2002년 어떤 사연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언어들을 섭렵하게 되었고, 우리의 언어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끊임없는 다독과 글쓰기에서 비롯되었다. 직장 내 코트넷 자유게시판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습작의 글을 올릴 때마다 뜨겁게 격려를 보내주었던 직장의 동료들이 있어서 투박했던 나의 글들은 한 걸음씩 다듬어져 갔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직장에 감사드린다. 특히 최인석 통영지원장님, 법원행정처 이상배 과장님, 청주법원 이상환 감사관님, 포천시법원 이민우 계장님께 감사드린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게 진심어린 격려를 주셨던 법원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또, 현재 근무하고 있는 논산지원 이창형 지원장님을 비롯한 논산지원 직원들에게 더욱 감사를 드린다. 근무지에서 항상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있어서 글을 열심히 쓸 수 있었다.
퇴근 후에 전북대 평생교육원으로 수필 공부를 하러 가면 그 먼 대전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러 온 모습이 기특해서인지 책을 한 권씩 선물로 주시면서 격려를 해 주셨던 김학 교수님과, 함께 공부했던 야간반 여러 문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내 뜨거운 친구에게 감사인사를 보낸다. 아마도 내 글을 가장 많이 읽어주고 사랑해 준 사람은 그 친구일 것이다.
부족한 제 글을 예쁜 시선으로 보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06년 겨울은 잊지 못할 계절이 될 것 같다. 내게는 너무도 벅찬 수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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