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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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모음

휘수 Hwisu 2006. 7. 24. 00:08

1952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본명 황재우)
서울대학교 미학과 및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1980년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83년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1년 제36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4년 제8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 (1985),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93) 게 눈 속의 연꽃(1994)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1998) 나는 너다(1999),

오월의 신부(2000)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

 

그는 시인이 된 것을 후회하는 흔치 않은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시인이 된 것은 `우리 사회 때문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1980년 5월의 어느 날 황지우는 정장 차림에 안개꽃 한 다발을 들고 종로3가 단성사 앞으로 나갔다. 안개꽃은 광주시민 학살을 규탄하는 유인물을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러나 계엄군의 삼엄한 감시의 눈초리 앞에서 안개꽃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황지우는 곧 지하철 1호선 역의 플랫폼에서 체포됐다. 손목이 등뒤로 묶인 채 거칠게 끌려나갈 때, 오후의 햇살은 지하철 입구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지금도 그 때의 그 지하철 입구를 잊지 못한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건 바로 우리 사회 때문이었다. 80년 5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지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 모진 지옥에서 한 계절을 보내면서 증오의 힘으로 시를 썼다. 결코 침묵해서는 안될 것 같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의 첫 시집이자 출세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였다. 80년대를 관통하며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를 내 오던 그는, 그러나 90년대 들어 근 10년 가까운 침묵을 지켰다.

 

글을 안 썼다기보다는 도무지 씌어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80년대의 문제의식을 너무도 쉽게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은 말하는 것이 악덕이다, 침묵만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신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 이대로 술을 퍼붓다간 내가 죽지 싶었을 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광주 무등산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요가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 밀교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손 댄 것이 조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미술선생님이 `10년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할 소묘력을 지녔다`며 미대 진학을 강권해 교무실에 끌려다니곤 했을 만큼, 미술적 감성이 풍부한 황지우였다. 흙덩이를 만질 때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도 끄덕 없었다.

 

그렇게 90년대를 보내면서, 95년에는 개인 조각전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1998년도 저물어갈 무렵, 한 편 두 편 써두었던 시를 모아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펴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이 시집이 예상을 뒤엎고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는 다시 시인으로서 세상과 만났다. 시인은 아직도 자신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세월이 흐른 후에는 어쩌면 딱딱한 돌덩어리를 부여잡고 또 다시 조각의 세계에 침잠해 있을지도 모른단다. 
[알라딘 제공]


 

연혁(沿革)

 

 섣달 스무 아흐레 어머니는 시루떡을 던져 앞바다의 흩어진 물결들을 달래었습니다. 이튿날 내내 청태(靑苔)밭 가득히 찬비가 몰려왔습니다. 저희는 우기(雨期)의 처마 밑을 바라볼 뿐 가난은 저희의 어떤 관례와도 같았습니다. 만조(滿潮)를 이룬 저의 가슴이 무장무장 숨 가빠하면서 무명옷이 젖은 저희 일가(一家)의 심한 살냄새를 맡았습니다. 빠른 물살들이 토방문(土房門)을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저희는 낮은 연안(沿岸)에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근경(近景)에서 이름 없이 섬들이 멀어지고 늦게 떠난 목선(木船)들이 그 사이에 오락가락했습니다. 저는 바다로 가는 대신 뒤안 장독의 작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빈 항아리마다 저의 아버님이 떠나신 솔섬 새울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물 건너 어느 계곡이 깊어가는지 차라리 귀를 막으면 남만(南灣)의 멀어져가는 섬들이 세차게 울고울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붙들었고 내지(內地)에는 다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럴수록 근시(近視)의 겨울 바다는 눈부신 저의 눈시울에서 여위어 갔습니다. 아버님이 끌려가신 날도 나루터 물결이 저렇듯 잠잠했습니다. 물가에 서면 가끔 지친 물새떼가 저의 어지러운 무릎까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느 외딴 물나라에서 흘러들어온 흰 상여꽃을 보는 듯했습니다. 꽃속이 너무나 환하여 저는 빨리 잠들고 싶었습니다. 언뜻언뜻 어머니가 잠든 태몽(胎夢)중에 아버님이 드나드시는 것이 보였고 저는 석화(石花)밭을 넘어가 인광(燐光)의 밤바다에 몰래 그물을 넣었습니다. 아버님을 태운 상여꽃이 끝없이 끝없이 새벽물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삭망(朔望)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러나 바람 속은 저의 사후(死後)처럼 더 이상 바람 소리가나지 않고 목선(木船)들이 빈 채로 돌아왔습니다. 해초 냄새를 피하여 새들이 저의 무릎에서 뭍으로 날아갔습니다. 물가 사람들은 머리띠의 흰 천을 따라 내지(內地)로 가고 여인들은 환생(還生)을 위해 저 우기(雨期)의 청태(靑苔)밭 넘어 재배삼배(再拜三拜) 흰떡을 던졌습니다. 저는 괴로워하는 바다의 내심(內心)으로 내려가 땅에 붙어 괴로워하는 모든 물풀들을 뜯어 올렸습니다.
 내륙(內陸)에 어느 나라가 망하고 그 대신 자욱한 앞바다에 때아닌 배추꽃들이 떠올랐습니다. 먼 훗날 제가 그물을 내린 자궁(子宮)에서 인광(燐光)의 항아리를 건져올 사람은 누구일까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게 눈 속의 연꽃

 

1

처음 본 모르는 풀꽃이여, 이름을 받고 싶겠구나
내 마음 어디에 자리하고 싶은가
이름 부르며 마음과 교미하는 기간,
나는 또 하품을 한다

 

모르는 풀꽃이여, 내 마음은 너무 빨리
식은 돌이 된다, 그대 이름에 내가 걸려 자빠지고
흔들리는 풀꽃은 냉동된 돌 속에서도 흔들린다
나는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는 짐승이다

 

흔들리는 풀꽃이여, 유명해졌구나
그대가 사람을 만났구나
돌 속에 추억에 의해 부는 바람,
흔들리는 풀꽃이 마음을 흔든다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
불을 기억하고 있는 까마득한 석기 시대,
돌을 깨뜨려 불을 꺼내듯
내 마음 깨뜨려 이름을 빼내가라

 

2

게 눈속에 연꽃은 없었다
보광(普光)의 거품인 양
눈꼽 낀 눈으로
게가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피워올렸다
눈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연꽃을
게는, 그러나, 볼 수 있었다

 

3
투구를 쓴 게가
바다로 가네

 

포크레인 같은 발로
걸어온 뻘밭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죽고 낳고 죽고 낳고

 

바다 한 가운데에는
바다가 없네


사다리 타는 게,
게座에 앉네

 

허수아비 
    -옷걸이


장판 바닥에 떨어진 담뱃재를 침 묻힌 손끝으로
집어올리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조심해야겠다
고 속으로 경계심부터 품었던 일
구긴 破紙를 휴지통에 롱 슛, 그 결과로 곧 닥칠
일을 占치던 버릇
지하철 마지막 계단의 홀·짝수에 연연하던 것
신문에 난 의학 상식 정도로 스스로 重病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던 겁
속이 미싱미싱할 때 손가락을 넣어 토해버리듯
요즘 나는 넘어올 것 같은 예감들을 미리
게워버린다
시를 쓰다가도 나도 모르게 나오는 불길한 예시는
지운다, 부음란도 이제 덤덤히 읽는다
이 모든 게, 좀 엉뚱하긴 하지만,
내 마음속 애인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마음들에게 시집가고 없는 탓일 게다
추근덕거리는 개에게, '저리 가'라고 한 것 외엔
종일 한마디도 않고 지나가는 날이 있다
짚으로 싼 木人,
누군가 내 등뒤에 서 있는 것 같아
휙 돌아보았더니
내 모자, 내 웃옷, 내 바지를 입은 옷걸이였다
왜 罪지은 것처럼 그리 놀랐을꼬
내 옷을 입고 있던 그 者, 어디로 갔을꼬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신 벗고 들어가는 곳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漁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던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물고기 그림자

 

맑은 물 아래
물고기는 간데없고
물고기 그림자들만 모래 바닥에 가라앉아 있네
잡아묵세, 잡아묵세,
마음이 잠깐 움직이는 사이에
물고기 그림자도 간데없네
눈 들어 대밭 속을 보니
초록 햇살을 걸러 받는 저 깊은 곳,
뭐랄까, 말하자면 어떤
神性같은 것이 거주한다 할까
바람은 댓잎새 몇 떨어뜨려
맑은 모래 바닥 위
물고기 그림자들 다시 겹쳐놓고,
고기야, 너도 나타나거라
안 잡아묵을 텡께, 고기야
너 쪼까 보자
맑은 물가 풀잎들이 心亂하게 흔들리고
풀잎들 위 풀잎들 그림자, 흔들리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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