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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칼끝에서 사랑의 품으로 / 이영진

휘수 Hwisu 2006. 3. 23. 13:57
혁명의 칼끝에서 사랑의 품으로

80년대 민중시인 박노해 백무산 오봉옥, 변화된 모습으로 90년대 문단 노크


    뜻한 인간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며 유토피아의 건설을 위해 빛나는 화살처럼 80년대 의 허공을 직진해갔던 저 민감하고 눈부셨던 시인들은 지금 어떤 정황 속에 놓여 있을까.

박노해 백무산 오봉옥 등이 최근 시집과 저작물을 선보이며 현실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그들의 변화된 시정신은 곧 80년대의 변혁적 열정이 어떻게 내면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지난 연대의 상 처와 좌절이 어떻게 숙성되어 가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지난 7월 「사람만이 희망이다」(해냄)를 옥중 출간한 박노해는 책의 표제 위에 「내가 희망을 포 기하지 않는 것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란 첫시집 「노동의 새벽」에서 치열하게 보여줬던 노동하는 자의 전투적 열정이나 분노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여전히 그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 모순에 대한 변혁 의지를 포기하거나 철회한 것은 아니다.

다만 또 다른 방식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는 또 다른 방식을 찾아가기 위해 첫시집의 「신혼 日記」나 「손무덤」에서 보여줬던 아내나 일터 속의 동료들을 더 이상 찾아갈 수 없는 상 황 속에 빠져 있다.

그는 노동자들의 일상 속에 펼쳐진 구체적인 형상보다 사물의 본질이나 근원적인 관계의 철칙같은 깨달음에 더 깊이 사고 를 집중시키고 있다.

감옥에 갇혀 7년 동안이나 일상이 차압된 상태에서 다분히 명상과 정신주의적 세계 인식에 자신을 맡겨놓을 수밖에 없지 만 그것은 단순히 「영어(囹圄)의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굳건하게 믿고 추구했던 변혁적 세계가 그렇게 명징하고 단선적인 방법에 의해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박노해 역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세계는 변해버렸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열정에 찬 신념이 지닌 오류를 발견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음을 밝히 는 시를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한 번은 다 바쳐 피우고 시들어 쓰러진 꽃몸/ 더듬어 더듬어 사지 받아 올리듯/ 단호하게 응결된 한 생을 받습니다(「꽃씨를 받으며」중에 서)

오 네 안에 주렁주렁 매달린 이 욕망과 애착의 열매들도/ 나날이 간소하게 솎아내겠사오니/ 정녕 절 솎아내버리지 마소서([솎아내지 마소서] 중에서)

박노해는 끝없는 자기검증과 내적 성숙을 향해 기도하고 있으며 이 길이 곧 생명을 가득 채우는 겸허한 사랑의 길이 될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순명과 정진 속에서 전선에 선 자의 공격적 정서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적 축조물로 변조시켜가는 수많은 감옥 안팎의 대상들이 당위적 메시지로 전달돼 오기보다 진정한 구원과 사랑의 아픔 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가 시 속에서 자주 반복하고 있는 「겸손」과 「사랑」이란 어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불우를 더 많이 노래하여 오히려 만인들의 공감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일은 허다하다.

최근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백무산은 이런 실수를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

첫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에서부터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떤 경 우에도 미적 체험에 근거해서 노래해야 된다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다.

「공구와 나사」「기차를 기다리며」「지옥선」 등 그가 첫시집에서 보여주었던 개괄화에 대한 탁월한 능력은 세번째 시집인 「인간의 시간」(창작과비평)에도 여전히 심미적 방법으로 관철되고 있다.

꿈을 쫓을 때와 생활에 충실할 때/ 어느 때를 위해 사는가/ 어느 때가 일상이며 어느 때가 꿈이냐([부리가 붉은 새] 중에서)

내 손길이 닿기 전에 꽃대가 흔들리고 잎을 피운다/ 그것이 원통하다([꽃] 중에서)

유토피아와 혁명을 꿈꾸는 지상의 존재가 끝없이 맞닥뜨려가는 일상과 초월의 문제를 절묘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부리가 붉은 새」와 사랑하 되 사랑의 시간을 나누어줄 수 없는 것들에게 갖는 연민을 노래하고 있는 「꽃」은 모두 개괄화에 성공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80년대 상처와 좌절 이렇게 숙성됐는지 확인

「공구와 나사」에서 보여주었던 노동현장과 노동자들의 일상에 대한 개괄화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고여드는 아픔과 존재론적 고민으로 시적 대상이 옮겨왔을 뿐, 그가 터득한 미학적 방법론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과도한 일상적 체험은 개인의 체험만을 절대화하거나 즉자적 형상화에 함몰하기 쉬운 약점을 갖고 있다.

사실적 규율에 충실하고자 했던 숱한 리얼리즘 계열의 시들이 이념과 사회변혁의 전망을 형상화하는데 실패하고 오히려 시를 식상하게 만들어갔던 점 에 비춰 본다면, 백무산은 일상을 과감하게 추상화시켜 일상의 잡다함을 뛰어넘는 전체의 개괄화에 대부분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개괄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역시 박노해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 의 현장보다 자신의 실존적 번민에 더 많은 공력이 투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옛길 버리고 왔건만/ 새길 끊겼네/ (중략)/ 아, 나 이제 경계에 서려네/ 칼날같은 경계에 서려네([경계] 중에서)

백무산 역시 과거 그가 걸었던 진보의 오솔길이 더 이상 절대적인 길이 아님을 깨닫고 있으며 전망이 보이지 않는 옛길과 새길 사이의 경계에 서서 고민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환멸이라면 사회주의는 환상이었던 지난 한 세기의 실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될지 그 역시 막막할 뿐인 것 이다. 그러나 그는 다짐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체 자연 속으로 자신을 합일시켜가고자 한다.

간혹 자연의 질서에 몸을 섞으며 초월적인 포즈를 내비치는 것은 감당할 길 없는 현실의 무거움 탓이 아닌가 싶다.

「지리산 갈대꽃」, 서사시 「붉은 산 검은 피」를 상재하면서 필화사건을 일으켰던 오봉옥 또한 80년대 변혁 운동의 정서를 첨예하게 형상화해 왔던 시인 중의 한명이다.

해방 이전과 이후의 운동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그의 과격하리만큼 치열하던 80년대적 정서와는 달리 이번에 출간된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실천문학사)는 그가 지난 시절 겪었던 좌절과 상처가 깊이 곰삭아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빨치산 무장투쟁을 정면으로 노래했던 그의 야성적 기질이 8년이라는 긴 침묵을 뚫고 오는 동안 생활 세계의 주변으로 많이 이동해왔음을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투박하고 힘에 차 있지만 과거와는 달리 사랑을 자주 이야기하고 「아프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한 때는 사랑이었다/ 풀섶에서 만난 봉오리들 불러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며/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꽃] 중에서)

백무산의 「꽃」과 달리 오봉옥의 「꽃」은 뼈아픈 반성의 고백으로 다가온다. 옳았건 틀렸건 지난 80년대 변혁의 외길로 젊은 육신들을 몰아갔던 숱한 「말」과 「선언」들이 올곧고 시원하게 자기 반성을 시도한 적은 별로 없다.

그것이 의도된 잘못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신생의 삶과 또 다른 열정의 생성을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은 필수 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봉옥은 확실하게 자신을 내놓고 반성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를 바꾸는 대신 감싸안음으로 불멸 꿈꿔

비린내 한 방울 안 풍기고 그런 꿈 꾸었다/ 민중이니 조국이니 와와 소리지르며/ 기름때 한번 안 묻히고 그런 꿈 꾸었다([나의 길] 중에서)

오봉옥은 이제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꾸었던 자들의 죽음조차 보아주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그는 시를 쓰지 못하던 지난 8년 동안 병고와 가난에 시달리며 자신의 관념을 털어내는 신고의 세월을 살았다.

그는 이제 기름때와 비린내나는 삶의 현장에서 「정다방 김양」의 사랑니도 안난 계집애와 더불어 생활의 때를 묻히며 산다.

삶의 현장에서 살아숨쉬는 건강한 생명력을 그 특유의 야성으로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변혁 운동의 가장 치열한 전선에 배치되었던, 아니 그 전선을 만들고 추동해갔던 세 시인의 변모는 세계사적 전환기에 동승해 있는 오 늘의 현실이 얼마나 급박한 변화 속에 있었던가를 헤아려 보게 한다.

불멸을 꿈꾸었던 만큼 상처받은 좌절의 밤은 깊었던 것 같다.

시인들은 세계를 뒤바꾸는 혁명 대신 사랑으로 세계를 감싸안음으로써 새로운 불멸을 꿈꾸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자의 상처 속에서만이 또 하나의 사랑이 잉태될 수 있듯 스스로를 죄인으로 자처하는 오봉옥의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는 80년대 민중 시인들의 가슴이 서서히 회복해가는 징후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영진<시인·문학평론가>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