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침묵 / 르 클레지오 2 본문

OUT/읽고싶은글

침묵 / 르 클레지오 2

휘수 Hwisu 2007. 6. 14. 10:07

침묵 / 르 클레지오 2

 

이 데생들과도 같이, 색채가 넘치는 이 그림, 기적을 담고 있었던 미묘한 연관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들처럼. 현실이 제공해 준 것은 가변적인 감정을 영원의 모습으로 고정시키는 수평선 위로 옮겨졌다. 그러나 현실은 망각되지도 않았고 정복되지도 않았다. 종이의 하얀 표면 위에 검은 잉크로 표시된 이 가느다란 획들은 그들의 재현작업을 통해서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다. 인간의 욕망은 제 요소를 자신의 법칙에 따라 재구성하기 위하여 창조하고 그것을 자기에게 순응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은 배신당했다. 왜냐하면 색채들과 형태들의 저 너머에 물질이 인간에게 도무지 손을 쓸 여지를 주지 않은 채, 나눌 수 없는 상태로, 탐색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답고 불가사의하게 군림하고 있었다. 예술은 구원되지 않았다. 그것은 도피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그림들은 색채가 화려하고 풍부하고 불안했으나 그것들은 또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화(白 )들>이었다.

 

그것들보다 더 강하고 그것들보다 더 미묘하고 그것들보다 더 불안한 그려지지 않은 그림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이룩한 인간의 힘 속에는 그것들을 혼돈으로, 죽음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비인간적인 힘이 보이지 않게 현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표현 저 너머에 그 순결성이, 편편하고 넓고 성격 없는 것의 그 보편적이고 은밀한 측면이 있었다.   79

 

 마찬가지로 음악도 영원한 리듬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정열과 믿음의 그 순간은 그것의 악센트가 그 음악을 이를테면 떠들어 올렸을 때 사실은 전체가 송두리째 완전무결한 침묵 속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육체와 영혼의 그 순간은 이제는 더 이상 육체도 없고 정신도 없는 복합적 현실의 커다란 순간이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이 공개되어 있는 듯한 그렇게도 아름답고 그렇게도 순수한 그 음악, 그 음악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말소하고 귀머거리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음악은 생명 곡선을 닫아버리고 덧없는 각각의 음정은 익명성 속으로 떨어져갔다. 그것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상의 것이었고 인간은 무상성의 가장 극적인 전시였다.    80

 

 왜냐하면 침묵은 그 음악과 다른 음악들로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은 빈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재가 아니라 모든 리듬, 모든 화음, 모든 멜로디의 무한한 현존이었다. 죽음은 무(無)가 아니었고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주 속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제적인 연합이었다.      81

 

 그것은 명백한 것이었다. 명백함.
 부정할 것도 없었고 욕망할 것도 없었다. 자명함은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거기에 송두리째 견고하고 번쩍거리면서, 그 숲속에, 그 창유리 속에, 그 나무 속에, 그 돌 속에 발렌치아가의 <카드릴Quadrille>표 향수병 속에, 먼지의 막으로 덮인 물컵 속에, 푸른 반사광이 나는 흑색 자동차 속에, 그 담배곽 속에, 앵무새 우는 소리 속에, 개 짖는 소리 속에 있었다. 전기 속에, 공기 속에, 유황연기 속에, 화산 속에, 태양의 반점 속에, 바닷속 깊이 썩은 균열 속에, 세포의 핵 속에, 적충(滴蟲類)속에, 검은 하늘에 홀로 떠 있는 태양 속에, 존재하는 것이 지속하는 모든 곳에, 세계가 끝없이 닳아지는 모든 곳에.   82

 

 우리는 침묵하기 위하여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글로 쓰지 않는 것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하지 않기 위하여 하고 있었다. 우리는 창조하기 위하여 창조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재하는 것을, 끔찍하게 현존하는 신비로운 부재를 그리고 있었다.    83

 

 카메라의 렌즈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일 수 있는 것을 보고 있었고 암실 속에서 세계는 그의 영상을 송두리째 투사했다. 주어진 선택은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다할 길 없이 그것으로 있었다. 선택은 나중에 왔지만 그것은 하나의 외관, 생각을 품지 못하는 인간의 무력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선택한 제 요소들 속에는 모두가 현존하고 있었고 모두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리하여 예술, 사고, 혹은 윤리에 의한 그 선택은 현실의 총체를 보고 느끼는 한 불완전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그 선택은 현존하는 모든 것의, 또 인간적 척도와 관계 없이 있는 모든 것의 힘을 그 자체 속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선택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었다. 총체적인 현실성이 그 선택보다 더 지속성이 있는 것이었다.   84

 

 인간의 대단한 상대성은 그러므로 인간적인 것에 대해서조차 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한계를 갖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항상 인간적인 건축의 골격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부분의 비전 속에서 전체적인 비전이, 묘사할 수 없는 전체성이 진동하고 있었다. 감각은 감각을 초월하는 것에 닿아 있었다. 개개의 대상, 외면적으로 선택되고 명확해진 개개의 대상은 수만 가지의 감각, 수 많은 우연, 수없이 많은 관점들과 참조 사항들에 의하여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감각에 호소하는 것, 신경, 피부 및 정신에 의하여 선택된 것은 그것의 이름만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것 속에도 그에 못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고 되찾은 물질성의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85

 

 우주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인간이 가진 것이라곤 그의 감각이라는 빈약한 도구밖에 없었다. 그는 잘못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는 거짓 쪽을 택할 수도 있었다. 개개의 지표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도 없고 현실과의 접촉을 못 가지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서 의식이 그를 주의 깊게 지탱해 주었으며 그에게, 환상 속에서조차도, 허깨비를 정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치 내면의 눈과도 같은 것이었고 타자를 되찾으려는, 죽어 있는 타자를 되찾으려는 불가사의한 욕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떤 대기의 숨결이 침묵의 영역으로 그를 이끌었고 그가 그곳에서 나왔었고 그곳을 향하여 그가 전진하고 있는 세계의 그토록 광대한 벌판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의식이란 바로, 그가 단지 하나의 지나감에 지나지 않음을, 그가 태어났던 바로 그 장소로 향한 내일이 없는 지나감임을 아는 힘, 짐작하는 그의 힘이었다.     86 

 

 어머니의 뱃속을 향하여, 망각을 향하여, 그토록 고요하고 그토록 순수한 바위를 향하여 열망했던 회귀. 그는 그의 조건을 알았다. 그러나 그 조건이 무(無)로 반죽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그 조건에서 떨어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의 외부에 있는 것의 신비를, 항상 그의 밖에 있을 뿐 그 내부로 들어오게 할 수 없는 것의 신비를 느꼈다.

 

그는 세계가 그의 내부로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느날인가 세계에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예감을 가졌었다. 그의 운명은 인간의 운명이 아니었고 그의 낙원은 인간의 낙원이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피안의 세계, 그것은 첫째날 이래 그가 이미 알고 있었듯이 <여기>였다.

 

그의 삶의 소산인 그의 언어와 그의 윤리와 그의 신앙과 그의 예술과 그의 과학과 그의 사랑, 그 모든 것은 땅의 영역으로 서서히, 여지없이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조금씩조금씩 먼지 속에서, 녹 속에서, 불, 공기, 물 속에서, 그 형태를 이루어가고 있었고 구체적인 기호들로 새겨지고 있었다. 사상은 육신과 함께 흙 속에 묻히고 죽음의 밭에서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인간은 그의 육체와 분리된 채 살아가지 못했고 살아본 적도 없었다. 모든 것이 물질에 속해 있었고 물질의 그 어느 것도 박탈될 수 없었다.   87

 

 그것은 이러하였다. 인간의 단 한 가지 위대한 생각은 바로 사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88

 

 황혼이여, 그의 불그스레한 엷은 막의 날개로 정경을 덮으며 대지 위에 떠 있는 황혼이여! 그토록 견고한 대지, 대지의 손톱, 나무들의 모서리, 양철이나 시멘트의 지붕들, 산악, 바다, 그토록 무겁고 그토록 거칠던, 굴복하고 망각되기를 거부했던 모든 것이, 그 모든 것이 오로지 한갓 몽롱한 하늘에 의하여 단번에 씻겨나가 버렸다! 그 연약한 장막,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아 보일 만큼 얄팍하지만 그토록 강한 힘을 닫고 있는 장막 뒤로 그 모든 것은 녹아내렸고 미끄러져 들어가 버렸다. 모든 것은 증발해 버렸다. 모든 것이 몇 가닥의 연기로 변모해서 공기의 공간 속에서 되는 대로 떠돈다. 풍경은 이처럼 자줏빛과 회색의 존재에 의하여 간단히 함락되었다. 땅 위의 실루엣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들의 본질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실루엣들은 가벼워져서 그들의 바탕 위에서부터 떨고 있는 듯 하고 당장이라도 떨어져나가서 거품처럼 증발해 버리려고 하는 것만 같이 보인다. 태양은 사라졌지만 밤은 아직 오지 않았다. 축복받은 순간, 우리가 감히 더 이상 기대할 수도 없을, 그런데 돌연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기적, 하나의 생각처럼 내면의 초상화처럼 펼쳐진 경이, 이 세계에 속한다기보다는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것에 속한 것이기에 이름도 없는 광경.    89

 

자연은 조락(調落)의 무한한 의지 속에 잠긴다. 자연은 동굴처럼 구멍이 뚫리고 움푹 빠져서 기울어지려 한다. 이 순간은 한계의 순간이다. 하지만 경계는 그 앞에 존재했던 것이나 그 뒤에 존재할 것보다 더욱 진실하고 지속적이다. 드디어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모습을 갖추고 꿈은 정확하고 가볍고 섬세해졌다. 중력에서 해방된 듯 탁 트인 이 풍경 속에서 의혹들은 긍정의 형식이 된다.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것, 결코 소유하지 않은 것이 여기에 펼쳐져 있다. 드라마 없는 드라마, 말 없는 언어, 상상적인 것의 비전, 거의 추상적인 것.   90

 

 마법은 황혼은 영원히 헤엄치며, 영원히 연기를 뿜는다. 각 색채, 각 윤곽은, 노출된 모든 색채와 윤곽의 총화인 이 지고의 색채, 절대의 윤곽까지도 거부되었다. 공허가 지배하는 세계가 명백하게 자리잡았다. 도시, 나무들, 산악, 해변들은 일체의 필연성을 박탈당한 채 되는 대로 떠돈다. 태양은 사라지면서 자신의 열광적인 비전을 제거해 버렸다. 태양의 조명들은 꺼졌다. 선택은 이제 명령이 아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은 그것 자체의 부정확한 그러나 명백한 스펙터클 속에 잠겨 있다. 이 돌들은 항상 돌이다. 이 뾰죽한 지붕들은 언제나 같다. 언덕들, 바다, 거리들은 언제나 같은 그 모습이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바로 그것들이 앙심을 품도록 만든 것이다. 유일자의 위력, 허위의 위력인 잔인한 황색빛은 마침내 세계를 해방시켰다. 이제 이 무한한 향락과 성취와 평온의 순간에, 현실은 아무 두려움 없이, 아무 두드러짐 없이 텅 빈 것이 된다. 모든 것이 멀리 있고 또 가까이 있다.

 

모든 것이 기막히게 심오하고 놀랍게 침투 가능한 것이 된다. 반투명의 땅은 위로 튀어오르기를 그치고 대지 위로 나직이 드리운 하늘은 이제 짓누르지 않는다. 바다는 이제 빠지지 않는다. 바위들은 이제 할퀴지 않는다. 수목들은 죽지 않게 되었고 도시들도 죽지 않게 되었으며 이상하게도 인간들마저도 독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 모험은 미래와 죽음을 향한 저주받은 발걸음을 중단한 채 돌연 휴식을 취한다. 시간이 멈춰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갉아먹지도 않고 파괴하려고도 않는다.

 

그것은 작은 터치로 무의미하고 거대한 화폭 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전반적으로 휘갈겨쓴 획들 위에 조그만 기호들을, 조그만 십자 표시들을 새겨넣는 것으로 만족한다. 가느다란 엽맥처럼 공간의 소묘는 가지를 뻗지만 결국 그것은 공연한 짓이다. 물론 그것은 채워넣기 위한 것이고 이미 있었던 표지들의 위치를 바꾸거나, 새로운 표지들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장난하기 위한 것이다.    91

 

 노쇠, 비길 데 없는 노쇠가 사방에 펼쳐져 있다. 세계를 부풀게 하고, 끊임없이 탄생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다. 지평선 위로 끊이지 않고 퍼지는 붉게 물든 대기의 노쇠, 먼지 낀 벽의, 재처럼 가볍고 단조로운 가옥들의 노쇠. 기름한 괄태충(括胎蟲)처럼 늘어나고 반짝이는 몸을 가진 바다의 노쇠. 소리 없이 무너져내리는 농경지의 노쇠. 터진 씨앗의 노쇠, 지표면을 밀치고 자라나는 어린 풀의 형언할 수 없는 노쇠, 불의 노쇠, 하늘과 별들의 노쇠, 남자, 여자, 어린이들의 노쇠. 끝내 운명하지 않는, 수세기 이래 물려받은 선조 대대로의 노쇠.

 

이미 오래 전부터 태야이 사라졌을 때, 밤이 찾아올 수 없을 때, 붉고 잿빛을 띤 부드러운 비를 맞으며 드러누운 세계의 노쇠, 모든 것을 다시 뒤덮고, 알 속에서 싹이 트고, 심장의 중심부에서 고동하는 노쇠. 그것 속에서 결합된 시간과 공간의 노쇠. 오랫동안 그들의 자줏빛 황혼 속에 오랫동안 죽치고 들어앉은 숨결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게 된 시간과 공간의 노쇠. 평온이며 불가능한 최후인 세계의 노쇠.    92

 

 살아 움직이는 황혼, 이보다 더 지상적인 영상은 없었다. 그것은 내 눈과 정신이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내가 알아보았던 영상이었다. 그것은 이렇게 저의 무대를 펼치는, 인간의 피안의 영상, 이 지상 피안의 영상이었다. 무한하고 텅 빈 하늘이 이 지역 위로 내려와 그곳을 복속(服屬)시켜 버렸다. 공간의 가장 검은 부분으로부터 와서, 싸늘하고 말없는 물기둥은 대지의 배꼽에 자신을 비끄러매고 이 지역을 근원적인 모태와 결합시켰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이 관(管)을 통해 영원의 양식, 한없이 현실적인 것의 정수가 통과했다. 이 대지의, 나의 대지의 정경, 알려져 있고 민감한 물질이 수킬로에 걸쳐 펼쳐 있는 정경은 이 예외적인 수액으로 배양되었다.

 

그 수액으로 인해, ― 그것을 정말 볼 수는 없으나 그것으로 살면서 ― 나라는 인간은 자기가 그에 속해 있음을 재확인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무자격자가 아니었다. 그에겐 이제 절망도 증오도 없었으나, 그는 이 수액이 지속적으로 주입되는 완벽한 환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세계와 더불어 도시와 수목들과 더불어, 돌이나 광물 조각들과 더불어, 구름과 연기, 무성한 바닷가의 잡초들, 지하의 수정들과 더불어, 곤충들과 물고기들과 더불어, 분자들과 더불어 그는 거대한 자궁 속에 갇혀 있었고, 그는 같은 혈액 속에 적셔졌으며 계속되는 똑같은 열기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잉태한 영원한 뱃속의 아들로서 똑같은 태아가 되었던 것이다.   93

 

 내가 죽고 나면 나에게로 향하는 나 자신의 무한한 긴장인 내 시선은 길을 잃을 것이다. 나의 언어는 떠나기 위해서 또는 재회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을 그칠 것이다. 그것은 저절로 말하리라. 결국은 저절로 유희는 끝나리라. 왜냐하면 반사광 ― 그것을 반사하는 벽들의 포로가 된 반사광은 미친 질주를 끝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의 근원이었던 것으로 되돌아가고 그 모든 것과 뒤섞일 것이다. 모든 한계들은 없어져 버릴 것이며 말해지고 창조되고 생각되는 모든 것은 그 표현될 수 없는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94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말과 시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침묵, ㅡ리고 실명(失明)뿐이다. 그걸 나는 늘 알고 있었고 늘 알아왔었다. 내 영혼에서 나옴으로써, 내 고향, 내 껍질을 떠남으로써 나는 공동에의 영혼으로, 광대한 고향으로, 모든 살껍질들로 이루어진 나의 살껍질로 되돌아간다. 내 삶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광대무변함이었다. 내 속에 표시된 것은, 내 세포 한개한개에, 내 행동 하나하나에, 내 생각 하나하나에 표시된 것은 그런 다시 만남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른 의미는 없었다. 다른 희망은 없었다. 쾌락과 충만함에다가 허무의 생각을 대립시켜 보려했던 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허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침묵을 향해소, 죽음을 향해서 간다고 해서 내가 허무를 향해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보다 더 가득한 것, 나보다 더 멀고 긴 것, 나 자신은 한 개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을 때 대양인 그것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96

 

 죽음, 완성, 작품을 봉인(封印)하는 것은 그 작품에 사인을 하여 작품 자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기다리는 죽음, 내가 희망하는 죽음, 삶의 몸짓들을 부조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다스리고 완성하는 죽음. 숙명을 대신하는 죽음. 시간을 대신하고 공간을 대신하는. 모든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무한함, 낮의 밤, 그리고 밤의 낮; 권탸가 아니라, 독이 아니라 삶의 절대인 죽음. 그대의 세상에 대항하여 싸우던 이, 그것은 그대의 세상이 도래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투쟁하던 이, 그이는 그대 속에 있었다. 벌써 그대 속에 있었다. 그는 그걸 몰랐지만, 그이가 덧없는 방식으로, 살아 있는 방식으로 행하던 모든 것은 어느날엔가는 해놓은 것이나 앞으로 할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자신의 인위적인 리듬으로 표시해놓은 모든 것은 그러므로 그를 초월하여, 혼돈의 엄격한 조직 위에 열려지고 펼쳐치게 되어 있었다.   97

 

 그 삶, 그 기쁨과 미움의 순간은 그가 몸 담는 진정한 거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똑똑한 세상을 알아보는 데밖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삶은 이해받지 못했다. 그 통일성은 환상에 불과했다. 그 개인성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 생각은 화해의 작품을 이룩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무상한 것, 기막히게 무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창조하고 정돈하던 기호, 복종하라고 하던 목소리, 보이지 않는 청사진을 그리던 손은 삶의 밖에 있었다. 최고의 명령은 밤의 울타리 저쪽 편에서 오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포착할 수가 없었다. 그 명령은 완전히 세계 속에, <우리의 발 밑>에 있던 그 머나먼 세계 속에 현존했다. 그것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 속에, 그것에 따라 존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그의 목소리나 손이나 기호 속에 있지 않을 때는 그의 명령들에 따라 일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가 그 일을 끝마쳤을 때는 우리가 그의 목소리, 기호, 손이 다시 되었을 때였다.     98

 

 이 죽음은 낯설은 것이 아니다. 이 죽음은 알 수 없는 심연 속, 공허의 구렁텅이 속으로 삼켜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에 살아 있던 내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속에 들어 살고 있었다. 나는 그 한가운데에, 그것 위에 서서, 그것 위에 떠서, 그 속에 들어 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하여 그것을 매순간 나의 삶과 함께 알고 있었고 그게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내 피부로, 내 신경으로 만져보았고, 공기와 함께 그걸 숨쉬었고 물과 함께 그걸 마셨다. 내 몸짓 하나하나 속에서 나는 그 죽음을 조립했다. 내 생각 하나하나는 죽음을 위한 생각이었다.

 

시간을 추악하고 잔인하게 만들었던 기이한 모순, 기이한 뒤죽박죽. 나에게 그렇게도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그렇게도 먼 것을 내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었던가? 살아 있음으로써 나는 세계를 산 것으로 만들었다. 내 몸을 가지고 나는 우주에 그 혼을 부여했었다. 이렇게 내 은밀한 욕망에 따라 변질시킨다고 해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환상의 노리개가 아니었다. 나는 불완전하게 사고했다. 주기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혼돈에서 끄집어내었던 그 큰 운동이 그 질주를 끝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는 준비되고 있는 귀로를, 나를 침묵으로 인도해 줄 귀로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99

 

 내 낱말들과 내 생각이 끝나지 않았었다. 표현되기를 그친 것이 그것들에 결합되어 있었다. 영원의 척도, 절대의 척도를 그것들은 나중에야, 내 삶의 종말과 함께 비로소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100

 
 그게 바로 규정된 것이다. 내가 표현할 수 없는, 너무 이르기 때문에 생각도 할 수 없는 모든 것. 부정(否定)인, 강력하고 충만한 부정, 태연한 부정인 그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건 나의 됨됨이의 침묵에 잠긴 몫이다. 그건 내 살아 있는 존재의 죽은 몫이다. 완전히 말하기가 불가능한. 그 백색 공간, 그 동일성은 내 오늘의 거리 속에 있다. 나를 에워싸고 떠받드는 세계,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가 쾌락 속에서 이미 감각에 속하지 않는 것을 대개 드러내 보여준다.

 

단단한, 혹은 부드러운 표면들, 뜨거운 것, 차가운 것, 단 것, 연한 것, 매케한 것, 미묘하고 진동하는 향수들, 색채들, 청, 록, 황, 주황, 흑색, 회색, 눈부신 백색, 보라색, 흐릿하거나 반짝이는 것, 그리고 선들, 곡선들, 구조들, 정확한 릴리프, 패인 것, 투명한 것, 고통의 리듬, 불행의 줄무늬, 기쁨, 욕망, 공허; 움직이는 모든 것; 고정된 모든 것; 내 것과 비슷한 얼굴을 내게 보이는 모든 것, 모르면서도 아는 얼굴, 무궁무진한 나의 낱말들로 한계를 규정해 놓은 얼굴, 그 모든 살아 있는 물질이 다시 그의 문을 닫을 수 있게 되기 위해서 그 순간을 기다린다. 그것이 새겨져 있다. 그것이 끝이다.

 

내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세계는 또한 내 이름을 지우는 세계다. 이리하여 각각의 물건은 내게로 향해 있고 내게로 그 무한한 얼굴을, 진정된 얼굴을 보인다. 이 폭력, 이 투쟁 속에서 진짜 유령처럼, 아마도 존재하는, 존재할 수도 있었을, 나를 절대로 버리지 말았어야 했을 아버지의 유령의 영상처럼 나는 도처에서 평화와 안일을 본다.    102

 
 내가 행하는 각각의 행위, 내 속에 진동하고 알아채기 어려운 시간의 딸그락소리를 표시하는 각각의 감각은 내게 말하기 위하여 여기에 있다. 시작된 작품이 완성되려면 네가 사라져야 한다 라고. 삶의 이 순간이 세계의 나머지 속으로 흡수되고 용해되자면 네가 죽어야 한다 라고. 차이가 있는 것은, 고독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려면.   103

 

 이건 바로 어떤 다른 의식의 차디찬 시선, 내가 더 이상 그 유일한 대상은 아니고 현실이라는 스펙터클의 전체 넓이를 다 굽어보는 어떤 의식의 차디찬 시선 같은 것이다. 그것은 벌거벗은, 군더더기 없는, 어찌나 격렬한지 거의 추상적인 정도인 그 시선, 그것 자체인 동시에 다수인 그 시선, 어떤 인격 밖의, 지능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 움직이는 그 시선, 이어주는 게 아니라 우주와 통합되고 한 덩어리가 된, 어떤 의식(儀式)같은 그 시선.

 

나는 떠났다. 겉모습들의 장소를 떠나 바야흐로 물질에 덥석 물려버렸다. 얼음. 얼음, 빛과 에너지의 엄청나게 큰 빙하. 생명의 경련들로 이루어진 응고. 대지 저 너머 피안의 엄청난 추위처럼 물질의 위력이 도망치려고 시도하던 모든 것을 마비시켜 버렸다. 물은 고요하고 밀폐된 덩어리로 굳어지고 공기는 환원불가능한 쇠붙이가 되었고 불은 그 벌거벗은 칼날을 영원히 고정시켜 버려서 타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불타버린 것이다. 도처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마법의 동일성으로 도장 찍혀진 채 결정적으로 굳어져버린 생명의 끔찍하고 기나긴 장관을 제공한다.      104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결코 보아서도 사랑해서도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나 행위에 의하여 생겨난 것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어둠이 우리의 빛보다 더 밝고 이 공허가 우리의 현존보다 더 조밀하고 더 현실적이다. 그것들은 저기에, 내 삶의 다른 쪽에 한데 합쳐져서 나를 기다린다. 나는 내려가거나 무너짐으로써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됨으로써 그것들에게 갈 것이다. 나는 내 삶 이상이 되려고, 내 움직임들 이상이 되려고 고정된 세계로 가겠다. 나는 흡족해지리라. 내 인간적 현실의 매순간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그 현실 쪽으로 향해 있다.

 

불완전하다고 여겨지기에 내 척도에 따라 어떤 목적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 실은 기막히게 완전했다. 각각의 대상에는 그것 나름의 태도가 있었고 그것 나름의 세계가 있었다. 그것은 벌써 창조의 어지러움 속에 빠져 있었다. 태어났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었지만 모순은 아니었다. 나의 삶은 그러므로 오직 거기에만 소용되었다. 항구적이었던 것의 덧없는 방식을 나에게 알려주는 데만 말이다. 신비는 해결할 대상이 아니었다. 진화, 전인는 완성할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들에게 어떤 목표를 부여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선택함으로써 그것들을 분리해내었으니 있는 그대로의 그것들을 불시에 목도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들 안에서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합쳐지고 분해할 수 없는 상태로의 그것들을 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본질로서, 그 존재의 파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서 그것들을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105
 
 세계는 세계 위에서 끝난다. 백색이었던 것은 백색으로 되돌아간다. 말이 없었던 것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나의 삶,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삶만이 화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향해 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어떤 성취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삶의 바깥에서는 ― 동시적으로 일어난 일인데 ― 세계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세계는 과거에도 혼돈이었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허무는 지금 존재하고 있다. 천년 전에 죽은 사람에게 허무는 지금 존재하고 있다. 우주의 저편에 속하는 사람에게 무한은 바로 이곳이다.

 

수백만 수천만의 존재들에게는 이 순간, 이 장소가 죽음인데, 언제 감히 내가 생은 바로 이 순간이요 이 장소라고 말할 수 있으랴? 인간이며 문명이며 대지란 모든 시간과 공간에 비교해 본다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내가 인간이나 문명이나 대지에 기반을 둔 체계를 세울 수 있겠는가? 인간은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그에게는 우주의 이름으로 말할 권리가 없다. 그에게는 상대적이 아닌 해답을 만들어낼 권리가 없다. 그는 수수께끼를 풀 권리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행하거나 사고하는 것 가운데서 그 어느 것 하나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더이상 투쟁하려 애써서는 안 된다. 그는 이제 정복하려 애써서는 안 된다. 그는 계속 살아남지 못하리라. 공허가 그를 부르고, 그를 가득 채울 것이다. 그가 물질과 다시 합쳐지고 그것과 한덩어리가 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 공허일 것이다. 그의 말이 귀로 들을 수 없는 말이  되고 그의 생각이 먼지 부스러기, 공기 중의 입자세계 속에 끼어든 미세한 한 토막의 낙서가 될 때, 그의 개체성이 얼음덩이들에 사로잡혀 버리게 될 때 그는 그 속에 여전히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거기에 존재하리라.    106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외형적인 것들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는 존재한다. 그것은 가면도 아니고 실속 없는 장식도 아니다. 그것은 상징도 아니며 무엇의 표시도 아니다. 세계는 <그것 자체의 영혼이다.> 오직 있는 것은 그 실체뿐이다. 현실적인 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없다. 인간이 감지하지 못했던 것, 지옥에서나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형태 ― 게다가 무형의 공간 속에 용해된 형태 ― 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겉으로 드러난다. 다양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물질 속에서 감촉될 수 있다. 무한·영원이 저기 존재하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들리지 않던 것이 펼쳐져 있다. 그런 것이 바로 죽음의 얼굴이다. 그런 것이 바로 생명이다. 죽음의 현실적인 생명들이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매일매일, 시시각각으로 우리가 우리로부터 분리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만지고 다시 느끼고 음미했던 것이다. 무한과 우리 사이에는 그러므로 ―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으나 ― 우리의 피부라는 칸막이밖에 없었던 것이다.     107

 

출처,네블,인드라의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