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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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순 시모음

휘수 Hwisu 2007. 1. 12. 09:40

경기 이천 출생
2001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목련나무

                 

목련나무는 

그 집에 일 년에 한 번 불을 켠다

사람들은 먼지가 쌓여 어둠이 접수해버린 그 집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목련꽃이 피어있는 동안만 신기하게 쳐다본다

 

목련나무는 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타고 놀던 목마와

버려지는 낡은 의자

플라스틱 물병과 그릇들

장난삼아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던 손과

방충망이 저절로 찢어지던 소리

늘어진 TV안테나 줄을 타고

근근이 피어오르는 나팔꽃을 뒤로하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아파트를 바라보는

기대에 찬 시선들을

 

드디어 두꺼비집 뒤에서

도둑고양이가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오고

집이 삭은 관절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우는 것을

제 그늘에 몸을 숨기고 다 보았을 목련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미친 듯 제 속의 불꽃들을 밀어 올려

저렇게 빛나는 불송이들을 매달았을 것이다

 

발굽들

                      

바람에 유리문이 닫히면서

은행나무 한 채를 끌고 들어왔다

비에 젖어 번들거리며 펄럭이는 잎사귀들

두 갈래로  갈라진

저 발굽들은 낯이 익다

 

발굽들을 앞세워 얼굴을 가린

그 배후를 본 적 없다

흰 갈기도 우아한 준마인지

혹은 半人半馬

황금소나기 메뚜기 떼였는지

다만 그 발굽아래

얼굴을 목덜미를 가슴을 내어줬을 뿐

 

장수한 거북이들과

만장일치의 깃발들

어린아이의 발자국들조차

촉수세운 혈관위에

통증 아닌 것들 없이

사랑할수록 더욱 사나워져서

즐겁게 당연하게

한 번 더 치명타를 먹이며

넘고 또 넘어오는 발굽들

 

춤추듯이 달려오는 수 천 수 만 의

저 푸른 발굽들

 

복숭나무

          

싸리비 비스듬이 세워놓은 나무대문

아버지 짐 자전거 검은 끈이 어질러진 마당가에

그 복숭나무 있었다

 

미닫이 방문앞  툇마루엔 노란 양은 주전자

깨어진 굴뚝 

납작해진 신발짝들

나나니 벌집의 작은 구멍이 촘촘한 기둥 아래

컴컴한 우물가


불룩한 배를 철사로 동여맨 항아리 옆에서

식구처럼 꽃피우고

열매 맺던 복숭나무

 

우리들

허기로 아득해진  여름 한 낮

진물흐르는 개복숭아 두어 개면

풍경이 바로 보이던,

 

지금은  엘지카센타, 프리미엄 부동산 옆에

찬찬찬 노래방 들어가는 입구

우리 집 없듯이

그 복숭나무 없다

복숭나무 따위 잊은 지 오래다

 

하필 오늘

켜켜이 매연 내려앉은 변두리 버스 정류장 길섶에 

계절 내내 잊혀져 있다가 봄이라고

생뚱맞게 꽃을 피운 복숭나무

 

점점이 켜든 분홍 꽃불들

흐릿한 기억을 뚫고

게딱지처럼 납작한 그 집

단 번에  

복제해 낸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