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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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詩모음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 시부문 수상작

휘수 Hwisu 2006. 4. 18. 10:14

4인용 식탁 / 정민아 (동덕여자대학교 문창과 4학년)

 

아침 6시 30분

사마귀 같은 의자가

식탁 위에 아침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체크무늬 교복에 담겨진 고3 아들이

식탁 위에 차려진 밥상을 보고

의자에 앉는다

 

첫번째 의자가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부장 손이 들어오는 팬티에 걸쳐진 딸이

두번째 의자에 앉는다

두번째 의자가 딸을 먹기 시작한다

 

가슴 한복판에 퇴직서가 꽂힌

아빠도 앉는다

이혼서류의 엄마도 앉는다

배고픈 의자들

삐그덕대며 씹기 시작한다

 

식탁 위에 오고가는 말 하나 없이

네 식구가 조용히 사라져 간다

끄윽, 의자가 트림을 한다.

 

 

사춘기 / 정민아  (동덕여자대학교 문창과 4학년)

 

 

   나를 불어줘요! 비눗방울처럼 당신의 입술에서 나는 다시 투명하게

 부풀어오르고 싶어요 당신의 입김은 새 엄지발가락을 튀어 오르

게 하고 그러면 몸 구석구석에서 발가락같은 작은 돌기들이 버섯처럼

솟아오를 거예요     내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요! 내 겨드랑이

에선 나물들이 돋아나요! 나는 꼼지락거리며 나를 일으킬 거예요 날아

갈래, 요 다듬어지지 않는 까칠한 말들 사이로 '하지만'은 없어요 '그러

나'도 없어요 내 가슴팍에는 가슴이 봉긋 솟아오르고, 나는 남자할래요

 흰 뼈들은 옆구리에서 발라내 그냥 버려요       나를 빗장뼈로 닫지 말

아요         쉼표로 날 열어요     나를 일간지처럼 읽지 말아요     할 수

없으면 그냥  덮어요

 

 

스물 셋 / 이지우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3학년)

 

오랜만에

모두가 모이기로 했다

서울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놈과

내일도 시험이라는 의대생 녀석과

급작스럽게 그럴듯한 일이 생긴 놈과

얼마 전부터인가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 녀석을 빼고서,

그런, 그러므로, 모두가 모인 것이었다

 

몇 년 만이지

3년

 

우리가 놀란 건

3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벌써 3년이 지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누군가의 집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누군가의 집에는

가압류가 들어왔고

누군가의 집에는

예전부터 말 안 듣던 동생 녀석이 사람을 찔렀고

나이가 들었을 뿐

아무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사실은 모두가 건너 들어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과

2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

대학을 가지 못한 놈

대학을 등록했어도 가지 못하는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는 놈들이 모여

어릴 때의 기억들만을 꺼내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 각자가 어떤지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껏 웃었다

오십대의 동창회처럼 녹이 슨 웃음이

맥주잔 옆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스물셋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미친 듯이 경쟁하고 있고

커트라인은 날마다 승천하는

지극히 자유로운 시대를 생각하니,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한 녀석이 시뻘건 얼굴로 내 어깨를 잡고

뭐가 이리 힘드냐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모두가 관심이 있었던

예쁘장한 여자아이의 이름을 내뱉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 캐어버리고서

빈 광산의 텁텁한 공기를 맡은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 모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바쁘기 때문에

무엇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바쁘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악수를 했고

꼬인 혀로 서로의 앞날을 성축해주었고

제대로 된 전쟁 한번 없었지만

패잔병처럼 지친 몸으로

할증 붙은 서로 다른 택시에 올라탔고

길은 저마다의 곳으로 한없이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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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부 문

수 상 자

학교 및 학년

작 품

이 지 우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3학년

청춘, 사랑하겠다, 스물 셋

정 민 아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4학년

사춘기, 4인용 식탁, 그녀의 노래

소 설

정 한 아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나를 위해 웃다

희곡

김 지 훈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3학년

양 날의 검

시나리오

이 한 나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휴학

지독한 초록

평 론

임 태 훈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 4학년

 비디오 파놉티콘의 죄수 - 백민석론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