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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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시모음

휘수 Hwisu 2006. 4. 6. 01:25


      1962년 경북 달성 출생
    1977년 성서중학교 졸업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 3집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 발표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에 희곡 <실내극> 당선
    1987년 제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1985년 시집 <성. 아침> [공저]  청하 
    1987년 <햄버거에 관한 명상> 민음사
    1988년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청하
    1988년 『세계의 문학』봄호에 단편소설「펠리칸」을 발표
    1989년 <길안에서 택시잡기>  열음사
    2005년 <주목>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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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삼중당문고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외국 소설을 독파했고, 군입대와 교련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핑계로 드디어 1977년 성서중학을 끝으로 학교와의 인연을 끊는다. 그러나 1979년 폭력범으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그는 학교와 군대의 나쁜 점만 모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몹쓸 지옥인 교도소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하얀몸」을 비롯한 그의 시의 바탕이 된다.

 

 오랜 정신적 방황을 겪은 그는 박기영을 스승으로 삼아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마침내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활동도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연이어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발표하면서, 지금껏 문단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던 '장정일'이라는 '불온한 문학'이 드디어 '중앙'에 입성했음을 알린다.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한 그는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1990),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4)를 연이어 발표하고 이 소설들이 모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장정일'은 드디어 우리 문화의 뚜렷한 코드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발간한 후 그가 파리에 있는 그의 아내인 소설가 신이현을 만나러 출국한 사이, 한국에서는 외설시비가 일어나고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포르노로 규정받고 있던 그해의 마지막날, 장정일은 파리에서 자진 귀국하여 당당히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론한다. 그러나 영화 <거짓말>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법원의 최종판결은 유죄. 그리고 또 한번의 구속.

 

 그 사이 한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일본에서 발간되는 등 해외에서 더 호평을 받고, 그는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중국에서 온 편지』(1999)와 자전적 소설 『보트하우스』(2000).  2005년 <장정일 삼국지>를 펴낸다  그의 '독자 후기'를 모은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5권까지 펴내며 그는 지금 대구에서 평생 소원인 책읽기와 재즈듣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머리같이 쓸데 없는 데서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모가 바리깡으로 직접 깎아주는 빡빡 머리와 헐렁한 골덴 바지 그리고 청색 면 티 차림을 하고. 
[예스24 제공]  
 

게릴라

 

 

당신은 정규군
교육받고 훈련받은
정규군.
교양에 들러붙고
학문에 들러붙는
똥파리들!
그러나 고지점령은
내가한다!
나는 비정규군
적지에 던져진 병사
총탄을 맞고 울부짖는 게릴라!

 

 
낙인 

 

티 브이를 켜니 서부극인 모양이다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카우보이가
밧줄 올가미를 휘휘 휘둘러
마구 뛰어달리던 야생마를 낚아채뜨린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뜨거운 부젓가락을
버둥대는 말엉덩이에 사정없이 눌러찍는다
양키들은 잔인하구나!
채널을 다른 방송으로 돌리자 광고가 흐르는데
말같이 튀어나온 한국 아가씨의 엉덩이에
리바이스 청바지 상표가 빨갛게 눌러찍힌다

 

                                                                       

당진 여자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 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
충남 당진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처음 입술 비빈 여자와 공들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입술 비빈 여자가 내 팔뚝에 안겨 주는 첫딸 이름을
지어 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 동안의 나의 소원
그러나 너는 달아나 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예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 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노란 택시를 타고 사라져 버렸지 빨개진 눈으로
뒤꽁무니에 달린 택시 번호라도 외워 둘 걸 그랬다
어디에 숨었니 충남 당진여자 내가 나누어 준 타액 한 점을
작은 입술에 묻힌 채 어디에 즐거워 웃음 짓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 없다고
후후 웃던 충남 당진여자 어린 시절엔
발전소 근처 동네에 살았다고 깔깔대던 충남 당진여자
그래서일까 꿈속에 나타나는 당진 화력 발전소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여자 얼굴 충남 당진여자 얼굴 그 얼굴같이
둥근 전등 아래 나는 서 있다 후회로 우뚝 섰다
사실은 내가 바랐던 것 그녀가 달아나 주길 내심으로 원했던 것
충남 당진여자 희미한 선술집 전등 아래
파리똥이 주근깨처럼 들러붙은 전등 아래 서있다
그러면 네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심으로 서로를 버린 건가 경우는 왜 그렇고
1960년 산 우리세대의 인연은 어찌 이 모양일까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편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천지간에 떠돌다가 소문은 어느 날 당진여자 솜털 보송한
귀에도 들어가서 그 당진여자 피식 웃고
다시 소문은 미래의 내 약혼녀 귀에도 들어가
그 여자 예뻤어요 어땠어요 나지막이 물어오면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 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 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추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 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추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아파트 묘지


홀린 듯 끌린 듯이 따라갔네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또박거리는 하이힐은 베짜는 소린 듯 아늑하고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엉덩이는
항구에 멈추어 선 두 개의 뱃고물이
물결을 안고 넘실대듯 부드럽게 흔들렸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그녀의 다리에는 피곤함이나 짜증 전혀 없고
마냥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점심시간이 벌써 끝난 것도
사무실로 돌아갈 일도 모두 잊은 채
희고 아름다운 그녀 다리만 쫓아갔네
도시의 생지옥 같은 번화가를 헤치고
붉고 푸른 불이 날름거리는 횡단보도와
하늘로 오를 듯한 육교를 건너
나 대낮에 여우에 홀린 듯이 따라갔네
어느덧 그녀의 흰 다리는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
공동묘지 같은 변두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네
나 대낮에 꼬리 감춘 여우가 사는 듯한
그녀의 어둑한 아파트 구멍으로 따라들어갔네
그 동네는 바로 내가 사는 동네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그녀는 나의 호실 맞은편에 살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며 경계하듯 나를 쳐다봤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낯선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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