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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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시모음 / 현대시학

휘수 Hwisu 2006. 4. 30. 00:21

<신인공모 당선작>

(제3회) 2001년 4월호 : 이수정,금기웅

이 수 정

 

비곗 덩어리

 

두 눈을 비벼도 맑아지지 않았다. 언제나 반투명의 유리가 앞에 있었다. 햇살은 비현실적이었다. 기형으로 투사된 햇살이 망막에 닿고 있었다. 입술을 대어도 기름이 뜨지 않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식은 땀이 났다. 무엇을 잡아도 미끄러웠다. 청명한 하늘을 보고 싶었다. 고추 잠자리 날개의 무늬를 만지고 싶었다. 댓잎을 헤치는 바람소리를 세밀히 듣고 싶었다. 정신의 끝자락에 비곗덩어리들이 허이옇게 붙어 있었다. 두 눈을 아프게 비벼야 한다. 비대한 나는 부들부들 식은땀이 났다. 관념의 살 저쪽에 허이연 지방이 쌓이고 있었다.

 

 

억새

 

수십 개나 되는 손가락들이
샅샅이 움켜쥔 머리칼에서
신경은 쉽게 끊어져 내렸어
검은 문이 닫혔어
아름다운 손들이 흔들렸어
무릎이 빠지는 습지 너머
아름다운 손들은 푸르르 날아올라
석양 쪽으로 날개를 펼쳤어
어둠과 끌어안은 노을 뒤로
나는 그림자가 흐려진 채
무릎이 빠지는 습지에 서있었어
뼈가 드러난 손들이 가득한 곳이었어
달은 하얗게 떨며 전화벨 소리를 냈어
벨소리가 날 때마다 별은 멀어졌어
가물거리는 별은 볼수록 구분이 되지 않았어
난 아팠어 유성처럼
달아나고 싶었어

 

 

아스피린 먹는 사람

 

비가 내린다 밤비가
나뭇가지를 스친다
일 만개의, 일만 오 천 개의
잎들이 앓는다
기침 소리가
어둠의 한 쪽을 찢는다
가는 비명이 비명을
끌어안는다 섞인다
어둠이 시야를 가리고
들판 하나가 비바람에
휘 몰리고 있다
기침 소리가 땀에 젖어 있다
열에 싸인 사람의
젖은 숲으로 하이얀
아스피린 한 알 녹아들고 있다

 

 

마른 날의 꿈

 

무릎까지
허벅지까지 빠지는 늪이었어
검은 문들은 작아지고 있었어
문밖에서 들려오는 이명이
끊어졌다 이어지곤 했어
무릎까지
허벅지까지 빠져드는 거기
검은 우렁이들이
달팽이관 가까운 빈터에
정신없이 자고 있었어
질퍽이는 습지 곳곳에
부레옥잠들은 흰 꽃을 환하게 피우고 있었어
꿈틀거리며 검은 거머리들이 기어가고
우렁 껍질 속 맨살이
보드랍고 따스한 양지를 꿈꾸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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