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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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전개의 몇 단계 - 나의 시작과정 / 김춘수

휘수 Hwisu 2007. 3. 18. 07:46

이미지 전개의 몇 단계 - 나의 시작과정 / 김춘수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내 시 「분수1」이다.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진다는 묘사(이미지)와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진다는 묘사(이미지)는 모두 [그리움]에 걸린다. 위 두 행의 이미지는 그러니까 [그리움]이라는 심리현상(관념)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들이다. 여기서는 이미지가 목적이 아니고 그것들을 통하여 형상화된 관념이 목적이다. 이렇게 관념을 위한 이미지는 자기 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으니까 이미지로서는 순수성을 잃고 있다. 이런 따위 이미지를 나는 비유적 이미지(metaphorical image)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런 따위 이미지로 구성된 시를 랜섬은 관념의 시(Platonic Poetry)라고 하고 있다. 50년대에 나는 릴케투의 관념시를 쓰고 있었다.

쥐약을 먹었는지 쥐가 한 마리
내장을 드러내고 죽어 있다.
내장이 하얗게 바래지고 있다.
한 달을 비가 오지 않는다.
제주도로 올라온 저기압골은
다시 밀리어
남태평양까지 갔다고 한다.
웃통을 벗은 아이가 둘
가고있다.
그들의 발뒤꿈치에서 먼지가 인다.
먼지도 하얗게 바래진다.
흙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금잔화의 노란 꽃잎둘레가
한결 뚜렷하다.

내 시 「작은 언덕」이다. 시종일관 외부 정경묘사로 돼 있다. 주관이 전연 개입하지 않고 있다. 코멘트가 배제되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따라서 관념이 일체 배제되고 있다. 철두철미 사실적이고 감각적이다. 이미지가 제 스스로 완결돼 있다. 이미지가 관념의 수단이 돼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런 따위 이미지는 순수하다. 나는 이런 따위 이미지를 서술적 이미지(descriptive image)라고 부르고자 한다. 랜섬은 이런 따위 이미지로 된 시를 사물시(Physical Poetry)라고 하고 있다. 나는 다르게 순수시라고 부르고 있다. 이미지즘 계통의 시는 이런 차원에서의 순수시다. 코멘트가 끼이지 않는다는 것은 작자가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된다. 객관세계를 그대로 제시해 보여 주는 데 그치고 있다. 후설투로 말을 하자면 판단중지를 뜻하는 것이 된다. 에포케 상태를 말함이다. 아주 건조한 분위기를 빚는다.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이 젖어있었다고 한다.

내 시 「눈물」이다. 비사실적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현실성을 잃고 있다. 심리적으로 굴절돼 있다. 심리적이다. 그러니까 환상적이다. 이런 따위 환상은 존재론적 세계에 닿아 있다. 이 시는 인간의 한계성(유한성)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이미지가 환기시켜 주는 뉘앙스나 암시로 하여 그렇다는 것이지 코멘트처럼 논리적은 아니다). 인간된 비애가 여기(한계성)서 온다.
이 단계에 와서 나는 이미지를 버리게 됐다. 이미지는 의미의 그림자를 늘 거느리고 있다. 특히 독자는 이미지를 통하여 의미(관념)를 보려고 한다. 나는 이미지의 이런 따위 속성을 경계해 왔다. 시는 의미(관념) 이전의 세계, 아주 소프트한 세계가 아닐까 하는 인식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불러다오
멕시코는 어디 있는가
사파타는 사파타 멕시코는 어디 있는가
사파타의 누이는 어디 있는가
말더듬이 일자무식 사파타는 사파타
멕시코는 어디 있는가
사파타의 누이는 어디 있는가
불러다오
멕시코 옥수수는 어디 있는가

내 장편 연작시 「처용단장」의 「제2부 4」다. 이미지를 배제한다고 이런 따위 주문 같은 시를 쓰게 됐다. 누가 이 시를 두고 <실존의 현기증>이란 말을 했다.

김춘수
1922년 경남 충무에서 태어나 1948년 『구름과 장미』를 출간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거울 속의 천사』 등 다수가 있으며,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현대문학, 10

재출처, 간이역에이는시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