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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휘수 Hwisu 2006. 9. 15. 07:28

 이런 사랑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시 더듬더듬 읽기> 사마귀 혹은 버마재비에 대한 시 2편
    안병기(smreoquf2) 기자 , 오마이뉴스   
 
 
우리 겨레와 친숙한 곤충 사마귀

사마귀는 조선 순조 때의 한글학자이자 <언문지>의 저자인 유희가 곤충, 나무, 풀 등 여러가지 사물들을 한글로 설명한 책인 <물명고>에 '연가싀'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만큼 우리 겨레와 친숙한 곤충이다.

 

사마귀는 사마귀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통상적으로 버마재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범의 아재비. 아재비란 아저씨의 낮춤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 버마재비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범 즉 호랑이의 아저씨 뻘이니 어찌 무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손이나 발 등에 작은 혹처럼 돋아나는 바이러스성 피부질환 역시 사마귀라 부른다. 어렸을 적, 비 오는 날이면 심심풀이 삼아 초가지붕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짚시랑물을 손바닥으로 받고 있다가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를 들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손등에 사마귀가 난다는 속설 때문이다.

곤충인 사마귀가 손등에 난 사마귀를 먹어치운다는 속설을 믿은 탓인지 손등에 난 사마귀에 살아있는 사마귀를 대고 먹어치우기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다.

 

사마귀의 생태

 

사마귀의 머리는 역삼각형이며 입에는 날카로운 이가 있다. 턱이 큰 반면에 목은 가늘어서, 머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데 눈은 겹눈으로 삼각형 머리의 양 모서리에 붙어있다.

몸은 부위에 따라 녹색이나 엷은 녹색, 짙은 갈색 등으로 색깔이 다르다. 몸 색깔이 보호색이라서 풀잎과 구별하기가 어려운 점을 이용해서 풀잎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덮치는 수법을 잘 쓴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낫처럼 생긴 앞발로 먹이를 다리에 걸어 정확하게 낚아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육식성 곤충이다. 그래서 '수풀속의 무법자'라는 별칭을 덤으로 얻었다.


 
▲ 호박잎에 앉아 있는 사마귀. 앞다리를 들며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중국영화에 나왔던 당랑권법을 연상케 한다. 통상적으로 버마재비라고 부른다.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를 위해 특이한 냄새로 수컷을 유혹한다. 그러면 수컷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암컷의 등에 올라탄 뒤 껴안고 짝짓기를 시도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

짝짓기를 끝낸 수컷은 재빨리 도망가야 살 수 있다. 기운이 빠졌다고 꾸물거리고 있거나 비틀대면 암컷은 지체없이 수컷을 앞다리로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맨 다음 잡아먹고 만다.

 

절간 마당 풀 섶에서
버마재비 한 쌍이
무아경의 내川를 건너고 있구나
소리와 빛이 잠시 멎었다
풀리며 만길 적막이 걷히자
각시가 신랑의 머리통을 아작.
어느 하늘 끝에서 소리없이 천둥 터지는구나
신랑은 참선중
각시 입안에서 가슴 배 팔다리 바수어지는
저를 바라보고 있구나

새끼발가락 끝에서 바르르 떨던
나머지 생(生) 한 터럭마저
허공으로 사라지고
붉은 입술 각시 유유히 자리를 뜨고
대적광전에서 염불소리 흘러와
참선하던 자리에 고여
한낮이 깊구나
막무가내로 깊어가는구나

 

-김정희 '어떤 사랑' 전문-

 

김정희의 시 '어떤 사랑'은 사마귀의 생태에 착안해서 쓴 시다. 내가 보기에 이 시의 제목은 <어떤 사랑>이 아니라 '못된 사랑'이라야 옳다.

숫사마귀를 다 먹어치운 '붉은 입술 각시'는 느릿느릿 자리를 뜬다. 혹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이동건처럼 "이 안에 너 있다"고 능청을 떨며 사라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컷을 먹어 치운 암컷은 이후, 나뭇가지나 풀줄기에다 알을 낳는다. 그리고 알 상태로 겨울을 난다. 사마귀는 번데기 과정을 건너뛰어 불완전탈바꿈을 하는 곤충이다. 절기상 망종 즈음에 이르면 바로 알에서 애벌레가 된다.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 되는 게 모든 사마귀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교미가 끝나자
방금까지 사랑을 나누던
수컷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암버마재비를 본 적이 있다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고 사라져버리는
뻐꾸기의 나라에선 모르리라
섹스를 사랑이라 번역하는 나라에선 모르리라
한 해에도 몇 백 명의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키는 나라에선 모르리라

자손만대 이어갈 뱃속의
수많은 새끼들을 위하여
남편의 송장까지를 씹어먹어야 하는
아내의 별난 입덧을 위하여
기꺼이 먹혀주는 버마재비의 사랑
그 유물론적 사랑을

 

-복효근 시 '버마재비 사랑' 전문-

 

치명적 팜므 파탈인 암 버마재비

복효근의 시 '버마재비 사랑'이 보여주는 풍경은 김정희의 시 '어떤 사랑'의 세계보다 더욱 구체적이다. 김정희의 시에서는 '참선'이니 '대적광전'이니 '염불 소리'니 하는 불교적 용어로 버마재비의 잔인한 생태가 은폐돼 있지만 복효근의 시에서는 '수컷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등 암버마재비의 행위가 훨씬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조금 아는 체 하자면 암버마재비는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팜므 파탈이다. 프랑스어로 팜므는 '여성'을, 파탈은 '숙명적인' '운명적인' 그런 뜻이다.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 등 치명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악녀나 요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을 타고난 암컷. 이런 버마재비의 사랑은 필름 누아르(Film Noir) 계열의 영화를 연상시키도 한다.

만일 지금 내게 닥친 사랑이 버마재비식 사랑이라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끝까지 사랑을 버리지 못한 채 아름다운 파멸을 기다려야 할까. 기대할 것을 기대하시라. '섹스를 사랑이라 번역하는 나라'에 사는 나 아닌가. 한 해에도 몇 백 명의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키는 '뻐꾸기의 나라'에 살고 있는 내가 아닌가.

 

으짜겠능가.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개벼. 싸게 싸게 피하고 볼 일이제. 아먼. 그래사 쓰고말고.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