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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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모음

휘수 Hwisu 2006. 7. 29. 01:58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현재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2004년 세계사

  
와리바시라는 이름

 

젓가락과 사타구니 사이
여자라는 상징이 있다
벌린다는 것, 좋든 싫든 벌려야 하는
그런 구조가 있다
여학교 때 체육선생은
개각(開脚)하는 아이들 등을 꾹꾹 눌러
나무젓가락 가르듯 기절시키곤 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간혹 젓가락이 반듯하게 나뉘질 않고
삐뚤어지거나 엇나가는 건
젓가락의 저항이다
말 못하는 다리의 저항이
삐긋 다른 길로 들게 했을까
와리바시란 이름 딱지 영 못 떼고
생을 마감하는 불운처럼
사타구니 불안을 영 마감할 수 없는
여자이야기,
참 길고 질긴 이야기

  

  정전기

 

  내가 겨울에 뜨겁습니다. 집중 때문이지요. 열 개의 손가락에 퍼져 있는 삼천

오백  볼트의  전류를 지니고  칩거하는 날은 바람이 맵지요. 반 작용을  아십니

까. 뚜껑을 덮으면 맹렬해지는 주전자 속의 끓는 물처럼 생각은 수위를 넘고 내

언어가 없는 곳에 당신이 있습니다. 말이 닿지 않는 곳, 하여 내가  검지를 펴서

당신을 지목한다면 삼천오백 볼트의 전류가 순식간에 늑골을 관통해  한 마음을

지우겠지만 그냥, 깜짝 깜짝 놀라며 나는 여기 더 살아있을게요 당신을 탁 놓고

 

커튼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래서 사실 비밀도 아니지만

가리면서 다 보여주는 것도

전략이다

봐라,

모텔 입구 세차장 천막같은 커튼들은

해답 달린 문제지 같다

조급한 승용차

비닐커튼 아래로 파고 들면

미끈덩 들어온 물체의 낯짝을

더러워진 자락이 쓰윽 쓸어준다

덕지덕지 묻은 묵인의 무게

두 눈의 무게,

언제가 김 서린 고속버스 차창을

때 묻은 커튼자락으로 슬쩍, 얼른 닦은 적 있다

훔쳐본 것처럼 끈끈한 풍경들

눈감은 채

커튼을 통과해 들어간 곳, 천국인가

말인즉슨

얼른 닦아내야 할 천국

떠들어 댈 일 아니나

들어간 뒤 나오는 걸 못 봣다

나오는 길을 잃을 정도면

얼른, 슬쩍이라도

저 우렁이 속 지금 성업 중이겠다

 

예쁘기를 포기하면

 

TV에서 본 여자 투포환 선수나 역도 선수는 예쁘지 않다

화징기 없는 그 얼굴들은

예쁜 것을 뭉쳐서 멀리 던져 기록으로 바꾸었다

미모의 탤런트가 예쁘기를 포기하니 단박 연기에 물이 오르고

예쁜데 신경 쓰지 않는 라면집 아줌마가 끓이는 라면은 환상적이다

그런데 왜 여자는 예쁘기를 포기하지 못할까

그건 누가 가르친 게 아니다

아버지 돌아 가시고 상복 입은 상주가 되어서도 나는

여러번 거울을 보았다

표시날 듯 말 듯 입술도 그렸다

뒷태까지 살피다 문상객과 눈이 맞쳤을 때

그 부끄러움 아직 화끈거리지만,

모전자전, 여든 내 어머니도 아직 노인정 갈 때

입술을 몇 차레 그렸다 지웠다 한다

아무도 여자로 봐주지 않는데도 여자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놓으면 편한데 결코 놓지 못하는

그 힘도 말릴 수 없는 에너지라면 에너지다

세대를 건너오는 발그스럼한 불씨다

 

수평선 
 

세상에서 가장
긴 자가 수평선을 그었으리라
허리나 목을 백만 번 감아도
탱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푸른 현


내 눈에도 수평선이 그어졌다
바다를 떠나와서도 자꾸 세상을 이등분하는,
저 높낮이와 명암들


수평선 건져내어 옥상에 걸면
오래 젖어온 생각도 말릴 수 있겠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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