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육체의 창조를 위하여 / 이숭원 본문
육체의 창조를 위하여 / 이숭원
시를 쓰는 것은 일종의 창조행위다. 빈공간에 하나의 육체를 만들어 세우는 일이요, 육체에
호흡을 불어넣어 피와 살을 움직이는 일이다. 육체를 세우되 일찍이 본 일이 없는 새로운
모습이면 좋겠고 유사한 형상의 육체라 하더라도 피와 살의 움직임이 새롭다면 무방할 것
이다. 따라서 한편의 시를 구성하는 데 다른 사람들이 한번은 써먹음직한 상식적 언술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작품 중에는 산문시체를 즐겨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유행처럼 관례화되어 시의
긴장감과 응축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행 구분을 하지 않고 산문시 스타일로 이어가는
것이 병폐라 아니 할 수 없다.
시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 바탕이 되는 것이지만 일단 공적인 언술행위로 독자에게 제시될
때에는 개인적 사고를 보편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자신의 인식과 체험이 삶 전체와
공유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개인적 사고가 삶의 맥락과 연결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을 장황한 언술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형식과 정신의 절제가 필요하다.
긴 시행은 반으로 줄이고 시행의 수도 삼분의 이로 줄여보라. 시는 서정이지 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시상의 포인트를 중심으로 잔가지를 쳐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 있었다) 라든가 (~했네) 등의 과거형 어사를 남발하는 것도 시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문학은, 특히 시는 구체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술을 먹었으면
그것이 무슨 술이고 빛깔과 향은 어떠했으며 맛은 어떠했는가를 감각적으로 드러내서 술마시는
장면의 분위기와 정취를 충분히 살려야 한다.
-2003년 '시안' 신인상 심사평 중에서 발췌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
출처, 간이역에이는시노을
'OUT > 詩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를 잘 쓰기 위한 10가지 방법[2] / 이승하 (0) | 2007.04.02 |
---|---|
시를 잘 쓰기 위한 10가지 방법(1) / 이승하 (0) | 2007.04.02 |
시적 동기는 어디서 오는가? / 박이도 (0) | 2007.04.01 |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기 위하여 / 강은교 (0) | 2007.03.30 |
놀이로서의 시 쓰기 / 김기택 (0) | 2007.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