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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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금 시모음

휘수 Hwisu 2007. 2. 3. 07:39

강원도 영월

1994년 청구문학 대상
199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 당선 
2003년 <현대시>로 등단
'별 줍는 아이 글쓰기 교실' 지도

2007년 시집 <봄날 불지르다> 문학세계사

 

어머니의 뜰

 

밥그릇에 독약을 뿌리고
어머니 집으로 뿌리를
옮겼다 싱싱한
꽃잎 달고 환하게 폈다
어머니를 부르자 아리도록 흰 모시나비 한 마리
꽃잎 위를 빙글빙글 돈다
우물가에 두고 온 사십 년 전 어머니
등에 업은 나를 재우며 흥얼흥얼 우물가를 돈다
날개에 바람이 묻어날 때마다
꽃 이파리 위로 떨어지는 어머니 분 냄새
어머니는 치마폭 수북이 봉숭아를 뜯는다
거미집만 가물가물 졸던 절구통에
백반을 섞어 찧는다
무명실 꽁꽁 동여진 내 열 손가락 틈으로
손톱 빛의 해무리 서둘러 사라진다

 

어머니 마당엔 짐승스런 통증 따위는 없다

 

내가 나를 꺾어 어머니 손톱에 물들이며 살 거다

 

봉숭아 보다 짙은 청,산,가,리,꽃,꽃,물,

  

수인번호 5705번, 그녀는 애벌레를 키운다


그녀는 감옥 안에서 노래한다
노래하는 자유만 있을 뿐이다
노래는 자폐를 살해하는 힘을 숨기고 있다
간수의 눈빛이 그녀를 옥죄일수록 흑빛
노래가 애벌레처럼 쏟아져 나온다
다른 수인들도 노래를 부르며 견딜 것이다
견딤보다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아름다움의 끝에 닿으면 노래에게서 버려질 것이다
노래로부터 버려지고 싶은 그녀를 위해
누더기같은 수인번호를 가위로 자른다
자르는 순간 다시 엉겨붙는 속성을 지닌
더러운 번호, 징그럽게 알을 깐다,오글거린다
그녀는 알았다, 감옥 안의 노래가 감옥 밖의
노래보다 살인적으로 자유롭다는 걸
 

나, 게으름뱅이 이 산에서도 제일 행복하다

- 천상병 새가 되어

 

한 숟갈의 가난을 모과차에 풀어 넣던
아내의 손가락은 인사동 귀천 찻집에
기르던 새 세 마리는 텔레비 옆에
'시끄럽다- 잠 좀 자자' 던
장모님 목소리는 옆방 문고리에 걸어두고
게으름뱅이 나는 소풍을 마쳤다
언젠가 한 번 놀러갈까 했던 먼 산으로 돌아왔다
사월 꽃잎들 부셔 눈 뜰 수 없다
나는 이산에서도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버지는 막걸리 한 되와 오이를
지훈이, 수영이, 계락이는
풀새에게 받은 고료를 아껴
맥주 두 병까지 사 놓았다
밥인 술을 수락산에서처럼 종일 마실 수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천 원의 용돈을 받을 수 없어 조금 슬프지만
내가 좋아하는 女子, 순옥아
찻집 쪽문 사이에 끼워두면
지붕 위에 앉아 목청껏 노래 부르다
쪼아 물고 날아 오르리라
아름다웠다고 다시 증언하리라

                                                                                                                                  

꽃 기증 등록증

 

                  이름 : 청산가리꽃
피기 전 등록번호 : 570***-*****48
            기증번호 : 669
                  주소 : 수락산 모롱이 시와 술 익던 골방
                  전화 : 끊어짐
                  가족 : 사라짐

 

 위의 꽃은 '98년 4월 21일, 꽃의 뜻에 따라 최초로 활짝 피는 날 꽃은 물론. 꽃뿌리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기증하기로 서약한 꽃입니다 누구든 이 증서를 발견하는 대로 아래의 연락처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연락처 :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28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의 : 김**
주간에 피었을 때 : 02-740-8213
야간에 피었을 때 : 02 -740-8100

 

이 등록증은 꽃이 필 때까지 항상 휴대하시기 바랍니다

 

손목에 관한,

 

처음 패를 돌릴 때는 잘 굴러갔다
잃는 것도 따는 것도 없이 본전을 유지하면서
가끔은 서로에게 개평꾼이기도 했다
그 짓이 깊어지면서
작살나무 이파리들이
기형적인 가을을 끌고 오던 날
눈 깜빡하는 사이 나는
도끼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아무도 모른다 그 맛을
맛보지 않고 아는 척 하지 말라
나는 오른 쪽 손목을 잘라냈다
뒤통수 얻어맞은 그 도끼로,
잘려나간 손이 빈자리를 혼자 봉합했다
오랫동안 피가 솟구쳤지만 시간을 덧바르는 사이
죽지않았다 나는
손목을 을 자르고도 죽지않은 나를 보며
그 가을 눈이 멀었다
비루悲淚한 꽃잎이 가을마다 벙그러져도
잃어버린 서른아홉 장의 인생을 힐끔대지 않는다
물론 지랄 같은 투전판엔 다시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그곳에서 본전 생각하는 자들아
손목을 요주의하라,
그러나 잘려나간 손목으로 밥숟갈 뜨는 일도
꽤 즐길 만하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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