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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스크랩] 험한 산도 가끔 스승 노릇을 할 때가 있다 본문
주말마다 대전의 변두리 산을 많이 찾는 편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일요일(14일)엔 산을 잘못 찾은 것
같다. 수통골, 이름을 들으면 시원한 기분도 들거니와 주위사람들이 좋다고 권유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무조건 좋다고 하면 기분이 들떠서 떠나놓고
돌아와선 후회를 하는 일은 앞뒤 생각을 하지 않는 내 성격 탓이기도 했다. 그런 성격이 급기야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처음엔 수통골이라고 하기에
그냥 계곡만 있는 골짝인지 알았다. 그것도 수통(물통)이란 이름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사시사철 맑은 물이 출렁일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계절
탓인지는 모르지만 계곡엔 물이 거의 말라붙어 졸졸거리면서 흘러갈 뿐이었다. 물론 이것까지는 좋았다. 물 마른 계곡이 어디 한 두 군데랴.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수통골 계곡은 우선 걷기가 편해서 좋았다. 계곡과 어깨동무하며 달리는 길은 비록 비포장이었지만 평평하고 넓은 것이 확
트인 전망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저수지의 해맑은 물을 보는 기분도 좋았다. 그러나 수통골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바싹 마른 저수지 바닥은
자갈과 돌뿐이었고 그나마 명경지수 같은 물이 조금은 출렁이고 있어 다행이었다.
물이 너무나 맑아 내 마음속까지 훤히 보일 것만 같았다. 깊지는 않았지만 저수지 바닥까지 내려다보였다. 한 여름이라면 그 물에 풍덩 하고 떨어져 물장난을 치고 싶었다. 계곡과 바싹 붙어 따라가는 길은 더 깊이 들어갈수록 숲 속 특유의 냄새를 뿜어냈다. 솔잎과 갈잎이 썪어 올라오는 흙 내음 같기도 하고 계곡에 고여 있던 안개 내음 같기도 했다. 더구나 바위에서 굴러떨어진 물이 고여 있는 소에서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보며 내 어린 시절의 추억에 젖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숲길을 걷는 맛이 이 맛인가 싶었다. 평소 여유를 갖고 완만한 산길을 타는 맛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이 수통골도 하나의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을 거라고 머릿속에 입력시킬 참이었다.
기회가 되면 여름철에 가족과 함께 찾아오리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수통폭포 삼거리에서 계곡 깊이 빠지는 산길이 꾹 끊기고 좌측으로 산길이 꺾어졌다. 이곳이 금수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러나 여기부터가 문제다. 그것은 내가 수통골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는 증거다. 그냥 계곡에 와서 일상의 근심을 내팽개치고 탁족을 즐기면서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것만 염두해 둔 결과였다. 계곡 아래로 걸친 산부리들이 수통골과 한 통속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왼쪽으로 금수봉이 있고 오른쪽으로 도덕봉이 능선을 이루는데 백운봉, 금수봉, 빈계산을 한 무리로 넣어 흑룡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가 지금 오르려고 첫발을 디딘 금수봉은 그 이름만으로도 비단결만치 곱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중에 금수강산 아닌 산들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금수봉이 이름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무너질 듯한 가파른 산길을 올려다보고 난 후였다. 금수봉, 이름치고는 너무 험하고 가파르다 금수봉 초입에서 몇 발작을 디디고 나서 내가 잘못 들어선 것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남자가 칼을 빼들었으면 호박이라도 찔러봐야 하듯이 남자가 한번 발을 디뎠으면 그래도 산중턱까지는 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말이 쉽지 중턱까지 오르는데 그야말로 내 젖 먹는 힘까지 모조리 다 내주어야 했다.
그만큼 산길이 거칠고 험하다는 걸 알려주듯이 산 아래부터 지그재그로 설치된 빗줄은 한마디로 내 구명줄이었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도 숨이 턱턱 차올랐다. 몇 발짝 떼다가도 맥이 빠져 올라가다 쉬고 쉬고 하기를 골 백번, 어느 듯 내 입에선 게거품이 질척거렸다. 가끔씩 숨을 훅 내 뿜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내 어릴 적에 들었던 우리 집 소가 밭을 갈다 내 뿜는 콧김 같았다,
아버지가 잡은 쟁기를 끌고 한 나절 밭을 갈던 소가 얼마나 지치고 힘든지 소가 한 번씩 푸르릉 하고 숨을 내뿜곤 했다, 그때 보았던 소의 주둥이에도 하얀 거품이 진득진득 흘러내렸다. 내가 그런 모습이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똑 같았다. 한 번씩 숨을 후 내쉴 때마다 산길 옆 나무들도 안타까워 시원한 바람을 뿜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산길엔 그렇게 흔한 꽃이나 그렇게 맑은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꽃에 눈을 팔거나 새소리에 귀를 열어 넣고 올라가면 힘이 더 샘솟을 것 같았지만 오직 돌과 자갈이 울퉁불퉁 깔린 산길 옆으로는 비탈을 딛고 울창하게 선 나무들뿐이었다. 마치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내려오면서 하는 말, “이제 중간 쯤 올라왔어요. 이 정도면 탈만 하지요. 이까짓 걸 뭐 가파르다고 하세요” 그러면서도 모두들 땀에 젖어 번들번들 했다. 내 뒤에서 올라오던 아저씨 한 분도 말을 걸었다. “ 이 산길 참 험합니다. 내 마누라도 전번에 왔다가 엉덩이 채 주저앉아 아직까지 힘을 쓰지 못해요. 까딱 잘못하면 다치지요. 아마 대전에선 이 산길이 가장 험할 걸요. 하산할 때는 저 건너편이 보이는 도덕봉 능선을 타지 말고 반대편 금수봉 정상을 지나 빈계산으로 가시면 더 쉬워요”
정상에는 새소리와 꽃들의 향연이 있다. 연세가 68세라고 하는 아저씨와 이런저런 대화에 파묻혀 오르다 보니 금수봉 삼거리에 닿았다. 금수봉 삼거리는 흠사 간이역 같다. 많은 등산객들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땀을 씻고 있었다. 더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를 보기 좋게 맛보고 있었다. 수통폭포 삼거리에서 여기까지는 불과 1킬로 밖에 되지 않는데 왜 이렇게 힘드는 것일까. 완만한 코스만 즐겨 찾던 내 허약한 체질 탓인가. 아니면 이런 길로도 한 번쯤은 올라오라고 자연이 넌지시 기회를 베푼 것인가.
이정표를 보는 등산객들이 새로운 코스를 찾느라 부산하다. 난 우측으로 방향을 돌려 금수봉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방금 나와 대화하며 올라왔던 아저씨는 우측으로 몸을 틀며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우측방향은 도덕봉 가는 코스다. 몇 킬로 산길을 타고 올라오니 금수봉이다. 금수봉 정상에는 팔각정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몸을 식히고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새소리도 들리고 꽃들이 빛깔을 담아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온 나를 마치 축하해 주는 분위가다. 구우욱 구욱 구슬픈 비둘기 소리와 분홍 빛깔을 내뿜는 산철쭉의 향연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들었던 내 육신도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금수봉이 던져주는 교훈 이름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는 산이 바로 금수봉이다. 이름은 비단같이 곱고 부드럽지만 산길이 저토록 힘들고 험난한 것은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는 것 같다. 바로 외유내강인 삶이다. 겉은 부드러워도 속은 강해야 세상을 살아가기가 쉽다는 말이다.
너무 마음만 좋고 부드러워도 안 되고 너무 독하고 강해도 안 되듯이 안과 밖이 조화를 이루는 삶,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비록 수통골에 들어와 금수봉을 탈 때 까지는 거칠고 험난한 산길에 후회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배울 점도 있다. 누구든 세상 사는 지혜나 삶을 배우고 싶다면 금수봉으로 오라. 비록 거칠고 험하지만 금수봉은 가끔은 스승 노릇을 할 때도 있다. |
출처 : 겟세마네
글쓴이 : 유진택 스테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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