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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쓰리고 매운 것들이 고추 속에 잔뜩 들어가 있다
저 고추 빨갛게 익으면 맵고 독한 성질 풀어질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살갗 속에서
달가닥거리며 즐거워하는
노란 고추씨앗들의 노랫소리 들을 수 있을까
칠월 땡볕 퍼붓는 날,
밭머리 하얗게 일어서는 억새꽃 속에서
빨갛게 온 몸 익어가는 고추들,
보리밥에 쑥갓, 김치 쓱쓱 비벼
어머니가 키운 독하고 매운 고추 원 없이 맛보고 싶다
--유진택 시집 ‘환한 꽃의 상처’(시와에세이) 수록작 ‘칠월 땡볕의 고추’ 뒷부분
칠월 땡볕 고추는 독해야 제맛. 팔월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는 순해야 또한 제맛. 릴케는 잘 익은 포도를 보고 “지난 여름은 위대했다”고 신에게 경배를 드렸던가. 한국의 시인은 고추를 보며 자연을 찬미한다. 게다가 한국의 고추는 어머니가 키운 것이니, 고추 예찬은 신성함에 가 닿는다. 한국의 고추는 급기야 육체성까지 획득한다. 추억의 힘에 의해 고추를 보면 입 안에 침이 고이고 배가 고파진다. 그 시인과 함께 양푼에 꽁보리밥 가득 퍼담고 쑥갓과 김치도 아낌없이 넣어 쓱쓱 비벼서 퍼먹고 싶다. 매운 고추를 매운 고추장에 찍어서 입가심을 하고. 그 고추는 이번 폭우에 과연 안녕하신지.
〈김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