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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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카메라속에 잔뜩 담아온 유등천 야생화들

휘수 Hwisu 2006. 5. 4. 17:47

조상들의 삶과 행적을 알고 싶다면 뿌리공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전의 변두리 안영동(행정구역상으로는 침산동)에 있는 뿌리공원은 현재 사람들로부터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효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만성산 자락 앞에 들어앉은 뿌리공원은 그다지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볼거리는 상당히 많다. 잔디광장 앞을 휘도는 유등천 푸른 물에서 오리보토를 즐길 수도 있고 산중턱의 솔숲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이것도 무료하다면 8각정에 올라 확 트인 유등천 물줄기와 산세를 굽어보며 심란한 마음을 달랠 수도 있다. 어느 봄산이나 똑 같겠지만 이 공원의 산자락의 꽃들도 유별나다. 산길을 타고 올라 보면 후끈히 밀려오는 꽃들의 향기에 취해 제대로 숨을 쉴수가 없다. 산성동의 우리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관계로 나는 뿌리공원을 가끔씩 찾을 때가 있다.

 

 

 그래서 뿌리공원을 뒤로 한 채 휘돌아 흘러내리는 유등천 물줄기를 타고 주차장에 들어섰다. 유등천은 주차장 앞에서 푸르게 넘실거렸다. 봄맞이를 하러 나온 승용차들이 듬성듬성 들어차 있다. 주차장 맞은 편은 대전에서 통영 간 고속도로 터널이 뚫려 있는 산자락이라 아주 가파르다. 그 산자락 중간에 피어있는 철쭉이 애잔한 그리움을 자아냈다, 많고 많은 자리 중에 왜 하필 저토록 위험한 곳에 뿌리를 틀었을까. 저 철쭉은 아마 홀로 제 아름다운 얼굴을 뽐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제 종족에 섞여서는 존재를 알릴 수 없을 것 같아 저토록 높고 위험한 곳을 선택했나보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함께 행차하던 수로부인이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다 천길 벼랑에 핀 철쭉을 보았다.

“누가 나를 위해 저 진달래를 꺾어 올 사람이 없소”

신하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자 그 때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옹이 벼랑에 올라 철쭉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헌화가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감히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한 여인 앞에 꽃을 꺾어 바치며 유유자적 노래를 불렀을까.  나 역시 아내 앞에서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스스로 발을 벗고  위험 속으로 뛰어든 저 노인의 용기를 눈곱만큼이라도 닮을 수 있을까. 어쩌면 만용 같기도 하고 객기 같기도 한 이 용기가 과연 필요한 것일까. 


밭둑길을 따라 꽃들은 허공을 물들이고  

뿌리공원 주차장과 유등천을 한 눈에 바라보는 도로변의 밭들은 휑하기 이를 데 없다. 말목도 박지 않고 돌무더기 몇 개로 경계표시를 해둔 밭들은 모두가 임자가 없는 것처럼 썰렁하다. 그나마 꽃을 환하게 피운 채소와 작물들로 들어차 있어 다행이다. 내가 대전에 발 딛기 전인 13년 전만 해도 이 곳은 거의가 쓸모없는 땅이었다.  그런데 뿌리공원이 들어서면서 적잖이 달라졌다. 도로가 뚫리고 덩달아 식당도 드문드문 들어서고 장수마을 관리원까지 생기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뿌리공원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썰렁하다. 뿌리공원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한 본격적인 피서철이 돌아오지 않는 까닭이다. 식당 앞 조경용 돌무더기 틈에서 고개 숙인 할미꽃에 한참 반해 있다가 텃밭 앞을 지나치는데 노란꽃이 참 곱기도 하다. 카메라를 챙겨들고 텃밭으로 들어서는데 주인인 듯한 할머니가 나를 흘금흘금 쳐다본다. 수상한 사람으로 알았나보다. 꽃 이름을 부르니 갓꽃이란다. 장다리꽃으로 알았던 나의 무지가 탄로 나는 순간이다. 노란빛깔로 물인 든 갓꽃은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허리가 휘청 꺾일 정도로 키가 껑충하다.


천변에 일렁이는 야생화들, 난리가 났네


텃밭너머 야산에서 봄나물을 뜯는 여인네를 보면서 둑 아래로 내려섰더니 여기에도 꽃들이 난리가 났다. 유등천 물살을 따라 달려온 부드러운 봄바람이 꽃잎의 속살에 화사한 빛깔을 입혔으리라.  분홍빛 꽃깔을 쓰고  오종종 모여 있는 광대나물이나 줄기를 꺾으면 노란즙이 스며 나오는 애기똥풀이나 꽃잎은 눈부실 정도로 곱다.

 

이름 없는 들꽃들도 초록의 풀 속에서 잘디 단 꽃망울을 터뜨렸다. 인적이 없는 외진 천변에서도 소리 없이 꽃빛깔을 드러내는 들꽃들이 어쩐지 더 애잔하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봄철 내내 제 소임을 다하는 인내 어린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지켜주는 것처럼 바로 옆에는 도꼬마리가 날카로운 가시를 송송 박고 사방을 쏘아보고 있다. 만지면 곧 찌를 듯 하다.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는 눈치다. 풀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한참동안을 함께 놀았다. 유등천의 잔잔한 수면위에서 한가하게 유영을 하는 오리 떼가 한 폭의 그림을 수놓고 있다. 언뜻 보아도 유등천변에는 꽃 말고는 볼 게 없다. 그래도 볼거리가 많은 뿌리공원을 제쳐두고 누가 인적도 없는 천변으로 오겠는가. 그것도 들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한 때가 즐겁다. 카메라가 묵직하게 알록달록 꽃물을 들인 초록의 봄을 찍어왔기 때문이다.


       






출처 : 겟세마네
글쓴이 : 유진택 스테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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