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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악 이야기 - 뉴에이지 음악 이야기

휘수 Hwisu 2006. 1. 14. 00:12
새천년의 소리: 뉴에이지 음악 이야기


♪ 새로운 시대(New Age)

'물병자리 시대'의 개막을 나타내는 천체운행도
출처: http://www.technosophy.com


우리들은 통용되는 연도수의 가장 앞자리인 천단위가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큰 숫자가 바뀌는 순간을 목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단지 해가 가면서 산술적인 연도가 더해지는 것일 뿐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해전 떠들썩했던 밀레니엄 신드롬을 겪으면서 우리는 '새로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20세기 말이 격동의 시대였다는 것은 누구나 동감하지만,

어느 시기의 역사인들 또 그보다 덜 역동적이었다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사건의 다사다난함이란 것이 이런 '새로운 천년' 이라는 변화의 크기를 의미할 수는 없을 듯 하며,

 다른 시대와 구별되는 근본적인 의미가 있어야 '밀레니엄'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어울릴 것이다.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 역시 새로운 밀레니엄에 이러한

"근본적인 새로운" 의미를 부과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천년 단위의 변화에 가장 상응한다 볼 수 있다.

이 운동은 극단적으로 물질화·탈종교화하여,

정신적 가치 및 인간과 자연의 상생의 이치를 외면해버린 현대사회에서 태동한

영적·종교적 신문화 운동으로서,

기존의 체계·문화·가치에서 탈피하여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영성을 계발하고 고양함으로써

궁극적 실체에 이르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 물병자리의 시대(Age of Aquarius)

'뉴 에이지(New Age)'라는 말은 본래 점성학에서 유래하였다.

태양의 황도(黃道)가 한 주기의 운동을 마치는 데 걸리는 세월은 약 2만 6천년이고,

우주는 12좌(座)로 나뉘며 하나의 좌에서 다른 좌로 옮겨가는 데 2,100년이 걸리게 되는데,

이 시간의 단위를 '에이지(age)'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현대는 물고기자리에서 물병자리로 옮겨가는 과도기로,

이전 에이지에서 황폐화된 인간의 정신을 채운다는 의미의 '물병'으로 상징화되는

새로운 영성의 시대라고 본다.



새 천년이 도래하기 약 100여년 전부터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예견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1900년 '피오다'는 스위스 아스코나의 유토피아적 공동체인 평신도 수도원을 창설하여

반제도적, 반권위주의적 영성을 창조하기 위해 새로운 종교와 문화의 만남을 시도하였다.

또한 1875년 'H.P. 블라바츠키'는 신지학(theosophy) 이론을 정립하여

<시크릿 독트린 Secret Doctrin>을 저술하고 미국에 신지학협회를 창설하였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이 전대미문의 현상은 아니다.

동양적 정신에 대응되는 서양의 전통은 늘 있어왔지만 비주류로서

근근이 그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으나, 이른바 '새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전통이 세계사의 전면으로 당당히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 새로운 예술, 새로운 음악

뉴 에이지 운동의 맹아가 태동할 무렵 19세기말의 서구세계는

전쟁과 분열의 극단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문화예술은 모더니즘을 대표로 하는 갖가지 사조들의 범람으로

바야흐로 해체의 시대를 맞게 된다.

문학에서는 T.S 엘리엇,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등이 극단적인 탐미주의와 난해한 상징,

의식의 흐름을 통해 인간내면의 구석진 그늘에 천착하였으나,

헤르만 헤세와 리차드 바크 등은 인간정신의 영적인 측면과

신성에 깊이 공감하는 구도자와 같은 인간상을 제시하여

뉴 에이지 사상과 영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한편 음악에서도 세계대전과 궤를 같이하는 음계 및 조성 파괴의 시대를 거쳐

우연과 실험에 의해 창조되는 아방가르드와 같은 '시험관' 음악을 통해,

최소한의 음의 재료마저 파괴하는 해체의 극단을 향해가고 있었다.



전후 기술과 매체의 발달로 미국 대중음악은 널리 확산되어갔다.

미국 음악은 스콧 조플린(Scott Joplin)을 위시한 뉴올리언스 재즈와,

서부개척 시대의 향수를 담은 백인우월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낙관주의로 치장한

20세기 전반의 뮤지컬과 같은 초기 대중음악에서, 반문화적이며

비트가 강한 60년대의 록 음악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여 간다.

근본적으로 다른 음악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때는 바로 이 즈음이다.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

 

 

 

 

 

 

 

 

 

 

 

 

 

 

 

 

미국의 자본주의가 세계의 질서를 장악하며 황금기를 구가하던 60 ~ 70년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안정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정신의 빈곤이 부각되었다.
기존의 사회질서, 체계화된 종교는 물질적 팽창에 대응되는

정신의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대중문화는 기성질서에 저항하는 반문화 운동의 성향을 띠게 되고,

월남전은 이런 사회적 경향에 큰 명분을 실어주게 된다.



월남전을 전후하여 록 음악이 점차 하드 록 내지는 헤비메탈과 같은

점점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형태가 되는데,

이는 뉴 에이지 운동이 태동할 무렵 20세기 초 유럽의 정세나 문화예술의 경향과 흡사하다.



이 와중에 몇몇 음악인들은 인공적인 소리보다 자연적인 소리를 추구하고

비트가 전혀 없거나 선율을 뒷받침하는 정도로만 유지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시도하게 된다.



고전음악의 복잡한 화성을 버리고,

그러나 세미클래식 혹은 경음악에서 나타나는 경박하고 딜레당뜨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하나의 선율이 담담한 노래를 하듯 소박하면서 편안한

이 음악을 사람들은 이른바 '뉴 에이지 음악'이라고 일컫기 시작하였다.



♪ 명상과 치유 - 신비의 음악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뉴 에이지 운동과 뉴 에이지 음악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인가?

뉴 에이지 음악은 뉴 에이지 사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인가?

이 물음에는 '예'와 '아니오' 두 가지의 대답 모두 가능하다.



뉴 에이지 음악에 대한 접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음악적 맥락에서 그 특성을 구분하여 하나의 장르로 이해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명상이나 심리치료와 연관지어 바라보는 입장이다.



뉴 에이지 음악의 원류는 비틀스가 60년대를 풍미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존 체계의 환경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작태에 환멸을 느낀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은

동양의 사상, 특히 인도의 요가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에 이르고,

음악계에서는 토니 스코트, 폴 혼, 폴 윈터 같은 인물들이

동양의 철학과 종교 등의 사상을 담은 음악으로 정서 치유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뉴 에이지 음악' 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형편이라

이러한 음악들은 요가나 명상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후 80년대에 들어와서, 조지 윈스턴, 윌리엄 에커맨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뉴 에이지 음악 전문 레이블 '윈드햄 힐(Windham Hill)'의 성공은

뉴 에이지 음악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오늘날의 뉴 에이지 음악은 매우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가장 모호한 장르가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두 가지의 맥락에서 살펴보았을 때,

뉴 에이지 음악은 명상과 치유에 그 사상적 기반을 둔 다분히 '뉴 에이지'적 음악이고,

또 한편으로는 다양성과 장르파괴라는 현대 대중음악의 대세를

충실히 반영하는 시대의 유행인 것이다.



오늘날의 뉴 에이지 음악은 본래의 취지와는 좀 멀어진 감이 있는,

'듣기 편한' 연주곡이라는 이해가 지배적이지만,

명상을 통해 새로운 영성으로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뉴 에이지 음악은 하나의 '신비'적 체험이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건강, 즉 웰빙(well-being)의 동반자가 된다.



♪ 내게 어울리는 뉴 에이지 음악은?

뉴 에이지 음악은 그 역사가 불과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다양한 특색과 인접 장르와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그 구분에 있어 다소 혼란을 야기한다.



실제로 뉴 에이지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록, 클래식, 재즈 등

다른 분야의 음악가들이 장르파괴의 시도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혹은 그들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음악이 뉴 에이지로 분류되는 일이 빈번하였고,

그렇게 다른 음악요소가 흘러 들어와 본래 뉴 에이지 사상을 고수하는 음악과 공존하게 되면서

뉴에이지는 매우 폭넓은 장르로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뉴 에이지 음악이 이렇게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만큼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특색을 잡아 분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장르 구분'이라고 할만한 작업도 아니고,

이런 작업에 분명한 체계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유통이나 검색의 편의상 나눈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다음에서는 뉴에이지 음악에 입문하고자 하거나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아마존닷컴(amazon.com) 에서 사용하는 분류 방법에 기초하여

뉴 에이지 음악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 알아보고,

각 부문에서 뉴 에이지의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대표적 앨범들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왼편부터)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마이클 존스의 After the rain, 데이비드 란츠의 Cristoforis Dream


General   뉴 에이지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80년대에,

주로 '윈드햄 힐'레코드사의 카달로그에서 볼 수 있었던 음악이다.

보통 서양 악기인 피아노, 플룻, 색소폰, 기타, 하프 등

어쿠스틱 악기의 독주나 간단한 앙상블로 연주한다.

서정적이며 편안한 선율에, 자연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청아한 음색의 표현을 위해 약간의 울림효과를 주기도 하고,

피아노의 경우는 페달사용을 자제하며 음에 여운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음악가로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 pf.), 데이비드 란츠(David Lanz, pf.),

마이클 존스(Michael Jones, pf.), 윌리엄 애커맨(William Ackerman, guitar),

안드레아스 폴렌바이더(Andreas Vollenweiger, harp), 폴 혼(Paul Horn, flute),

폴 윈터(Paul Winter, saxphone) 등이 있다.

 

 

 

     Ambient   

 

      통상 전자음악을 칭한다.

      본래 뉴 에이지 음악으로 불리지는 않았고,

      클래식이나 프로그레시브 록과 연관성이 많다.

      장 미셸 자르(Jean Michel Jarre), 반젤리스(Vangelis),

     클라우스 슐츠(Klaus Shulz)등의 음악가들은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의

     경력이 있거나 때때로 그 분야로 분류되기도 한다.

 

반젤리스

Heaven and Hell

 

이들의 음악은 신디사이저라는 기계음으로 차갑거나 온화한 감정을 자유롭게 자아낸다.

자연이나 일상의 소재를 통해 익숙하게 다가가기보다는,

추상화된 내면, 소음과 같은 혼란스러운 정서,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는 까닭으로 초심자에게 조금은 난해하게 들릴 수 있다.

일단 음악의 길이가 보통 10분이 넘고 좀 긴 경우엔 음반 한 장에 2곡만 들어있기도 하다.

 

빌 더글라스, Deep Peace

World Music  

 

팝 음악에서 말하는 비영어권 음악이라는 뜻과는 다르게,

뉴 에이지 음악에서는 민족적 특색을 가진 음악을 말한다.

특히 켈트(celt)풍의 음악은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켈틱 celtic'이라는 분류를 따로 두기도 한다. 북구의 신비를 담고

새벽녘 깨어나는 자연의 생명을 경외하는 고요한 정취는

어떤 측면에서 가장 뉴 에이지적이라고 할 만하다.

엔야(Enya), 빌 더글라스(Bill Douglas), 존 휠른(John Whalen) 등이

이에 속한다.

 

 



Environmental Music   

 

자연의 소리를 채취하여 재구성하는 음악이다.

맑은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시냇물 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등을 모아 사람들의 정신을 정화하고 마음을 편하게 한다.

사무엘 라이드(Samuel Reid)가 유명하다.

도이터, Budda Nature

 

 

Meditation   

 

명상음악으로 인도, 동양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이다.

6, 70년대 뉴 에이지 음악의 원류가 명상음악이었으니

가장 본령에 가까운 뉴 에이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도이터(Deuter)의 음악이 느리고 긴 호흡의 전형적인 명상음악이다.

처음 듣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Crossover(fusion)   

 

뉴 에이지 음악이라고 부르기가 상당히 곤란한 음악이다.

장르파괴 음악 중 뉴 에이지 음악으로 편입되는 경우는

주로 클래식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음악으로,

정통 클래식의 보수성 때문에 그 범주에 속하지 못할 때

종종 뉴 에이지 음악으로 분류되곤 한다.

(왼편부터) 앙드레 가뇽의 Monologue, 김영동의 禪 II, 김도향의 蘭(사군자 시리즈 중)


위의 분류에 따르자면, '제너럴' 쯤에 속할 수 있는,

경음악 같은 뉴 에이지 음악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앙드레 가뇽(Andre Gagnon)의 음악이 그 선두주자쯤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악을 기반으로 한 명상음악도 뉴 에이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김도향과 김영동 등의 음악이 이에 속한다.



이제, 위에서 열거한 뉴 에이지 음악의 성격과 유래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뉴 에이지 음악을 한 번 선정해보자.

자신이 고른 뉴에이지 음악과 함께 나만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음악이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새로운 영성을 기르는 데 영감과 활력을 주는 것이라면,

음악적 장르를 뛰어넘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뉴 에이지' 음악일 것이다.


 


Claude Choe

출처 : poet ... 휘수(徽隨)의 공간
글쓴이 : rainsp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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