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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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학 이야기 - 詩는 어떻게 쓸 것인가 16

휘수 Hwisu 2006. 1. 18. 00:44

 

III.시쓰기를 위한 몇 가지 유희



1.패러디를 통한 시쓰기



장정일의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작품이란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패러디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창조의 한 범주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와 영화, 문학과 문학 등의 동일 장르의 패러디는 물론

문학과 영화, 미술과 문학의 패러디가 성립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비판이 없지도 않으나, 탈장르의 확산적 의미를 담기도 한다.

 이러한 패러디는 전통의 현대화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창조의 양심과 독자성을 인정하는 패러디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디 방법이 원작이 가지는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여

원작을 해친다고 볼 수는 없다.

패러디한 작품은 그 원작이 이미 잘 알려져 있어 누구나 쉽게 원작을 떠올리면서

언어 유희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고, 기발한 착상에 경탄하게 된다.

이러한 패러디의 방법을 청소년들의 시창작 교육에 적극적으로 권할 수는 없겠으나

한 번쯤 해볼 만한 방법이다. 원작을 패러디 하는 동안에 원작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원작에 대한 비평적 이해까지도 겸할 수 있는 이중의 효과와 시창작 방법을 익힐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디의 방법은 자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새로운 형식적 개념을 가진다 하더라도

원작에 대한 모방이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의 형식이나 운율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이다. 한 번 쯤 해볼 만하다.







이같은 패러디가 때로는 아주 새로운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이점을 가지게도 한다.

다음은 오규원 시인이 역시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치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명사나 수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오규원 <'꽃'의 패로디>, <이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문학과지성사, 1981>



오규원 시인의 <'꽃'의 패로디>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김춘수의 <꽃>을 풀어놓고 있다.

마치 김춘수의 <꽃>에 대한 해석편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했다' 정도이다.

이름을 붙이고 싶은 욕망은 의미 부여라는 행위 속에 담긴 시인의 창조적 의지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김춘수의 <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패러디의 한계다.


출처 : poet ... 휘수(徽隨)의 공간
글쓴이 : 휘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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