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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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낱말 / 정 경 사람들은 갖지 못했거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모임에 갔더니 특별히 좋아하는 낱말 찾기를 하고 있다. 갑자기 받은 질문임에도 개성이 드러나는 대답이 흥미롭다. 먼저 30대 새댁이 말한다. “‘부엌’입니다. 꿈과 사랑이 있거든요” 아직도 젊음이 한창인 나이에 특별히 좋아하는 낱말이 겨우 부엌이라니.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서에 멈칫했다. 부엌이라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부엌을 벗어나는 해방감 때문에 여행을 떠난다는 주부들을 여행지에서 자주 본다. 하기야 나도 그 나이에는 멋모르고 부엌일에 열심이었다만. “저는 어쩐지 ‘기다림’이 좋습니다. 공원 벤치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요” 이번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단발머리를 한 40대 아주머니의 대답이다. 그녀야말로 지금 한창 살림에 재미를 붙여야 할 나이가 아닐까. 남편은 중년의 문턱에서 직장에서 밀려날 두려움에 허덕일 수 있고, 자녀들은 이제 막 성인이 되는 길목에서 방황과 갈등으로 몸부림칠 수 있다. 아직도 공원 벤치에서 가슴을 두근거릴 처지라니 뜻밖이다. 언젠가 독일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낱말이 ‘고향’이라는 글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은 듯 해서다. 그러나 지금 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삭이며 사는 것 같다.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좋아지는 낱말, 내게 그것은 무얼까 생각해 본다. 전율과 관능, 그렇다.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갖지 못한 것이 그것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나는 이들과 가깝지 못했다. 아니 관심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어머니의 교육부터 그랬다. 스로 태생적 양반임을 자처하는 그녀의 가장 큰 칭찬은 언제나 “그 사람은 양반이야”였다. 양반은 바로 감정의 절제와 자제에 능한 사람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지 않고 눈밖에 나지 않으려면 얌전한 척, 다소곳한 척 흉내라도 낼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순탄하게 기복 없이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업도 결혼도 고민할만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말썽을 부리거나 지탄받을 일을 될수록 경계하며 멀리했다. 감정을 노출시키는 일이나 본능에 충실해지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경멸했다. 이를테면 현실 인식과 대응에 빨랐던 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금기로 삼았던 것이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순수한 감각의 전율과 관능이 아니었던가. 출근을 준비하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고 응급실에서 열흘만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어도, 나는 고백하거니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남의 일처럼 느끼고 행동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정작 의미 모를 눈물이 ‘와락’ 쏟아진 것은 한참 지난 후였다. 그것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와락 쏟아졌을 뿐 전율은 아니었다. 한때 나는 이‘와락’이라는 단어에 무작정 매료된 적이 있다. 독일 뮌헨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남편이 편지에 이렇게 썼다. “가장 괴로운 순간은 식탁에 홀로 앉아 숟가락을 들 때라오.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와락 치밀어 오르고는 하지요. 달빛 같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한결 더 심하구려” 하지만 나는 어떤 외로움이 이 ‘와락’으로 표현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저 이국 생활이란 게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드는가보다 싶었다. 오히려 찰나적이고 낭만적인 ‘와락’이란 표현에 더 흥미가 있었다. 그 말의 주인공이 없어진 지금에야 그 진의가 제대로 전달된 것일까. 투명한 달빛처럼 쏟아져 내리는 순백의 눈속에서 와락 느껴지는 절절한 고독이야말로 진정한 전율일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토록 혹독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율은 내 것으로 오지 않는다. ‘와락’은 언제나 와락으로 끝날 뿐이다. 걷잡을 수 없이 와락 쏟아지는 눈물도 가장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 슬픔이요 아픔일 뿐 온몸이 떨리는 전율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것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기보다는 차라리 선천적, 체질적인 능력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정복되지 못하는 단어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어쨌든 전율과 관능은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낱말로 남는다. 그런 것을 갖지 못하는 내 인생은 배우만큼 열정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도 된다. 갖지 못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 용(龍)도 봉황도 마찬가지 일 듯 싶다. 어쩌면 인생사 모두에 해당되는 말 같기도 하다.
출처 : 블로그 > 거울 | 글쓴이 : 거울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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