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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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사포 해수욕장은 오늘도 물결무늬를 만든다

휘수 Hwisu 2006. 7. 10. 01:03
▲ 해무가 잔뜩 낀 수평선 너머가 눈물나게 그리워진다.
ⓒ 유진택
고사포 해수욕장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7월의 첫 토요일, 선운사를 빠져나와 한 식당에서 장어를 안주삼아 들이켰던 술이 벌겋게 취기가 오를 무렵, 관광버스는 고사포 해수욕장에 닿았다.

전북 부안에 위치한 고사포 해수욕장은 변산 해수욕장에서 격포 쪽으로 약 3㎞를 가면 나타난다. 변산 해수욕장, 격포 해수욕장과 함께 변산반도 3대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원광대 임해수련원과 울창한 방풍림 사이로 환하게 비치는 해변은 광활한 모래밭을 가슴에 쓸어 앉고 멀리 아른대는 수평선까지 보여주었다. 답답하던 속이 확 트였다.

쏟아지던 빗줄기는 거의 가라앉았지만 수평선 멀리 들어찬 해무가 내 마음을 더욱 적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해변으로 달려온 물결이 연신 철썩거릴 때마다 광활한 모래밭은 섬세한 물결무늬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규칙적인 배열로 아로새겨진 무늬들, 꽃게가 지나가도 그 흔적을 남길만큼 곱고 부드러운 모래밭은 내 눈길이 닿는 어디나 온통 물결무늬뿐이었다.

▲ 주인을 기다리는 고기잡이 배 한 척이 더욱 쓸쓸함을 안겨준다.
ⓒ 유진택
▲ 물결이 그려놓은 무늬들.
ⓒ 유진택
그것은 수평선 너머 아련한 그리움의 흔적이기도 했다. 아득한 곳까지 갈 수 없어 마음으로만 동경하다 꿈을 꾸고 그 꿈처럼 아로새겨진 무늬들. 그리움이 너무 깊어 미칠 것 같으면 다시 물결이 몰려와 그 무늬를 지우며 물러가고….

해변은 그렇게 하루 종일 무늬를 만들고 지우며 포말을 몰고 와 철썩거렸다. 방금 모래밭을 핥고 지나간 물결을 따라 드문드문 찍힌 내 발자국, 바닷물만 아니라면 수평선 저 멀리 아른대는 섬에도 가 닿을 수 있을 텐데. 잿빛구름이 꿈틀대는 하늘 아래 희뿌연히 모습을 드러낸 섬, 홀로 떠 있기가 적적해 나를 향해 손짓을 하는 섬은 잘게 부서지는 빗속에 묻혀 그렇게 아련히 떠 있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해변에서 물장난을 칠 때마다 들려오는 웃음소리, 까르륵 해변이 무너질 듯 퍼져나가는 저 웃음소리도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묻혀버렸다. 더구나 해변의 한쪽 구석엔 고기잡이배 한 척이 주인을 기다리듯 잠시 쉬고 있어 더욱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움으로 해변을 향해 손짓하는 하도

새우를 닮아 하도(鰕島)인가. 연꽃을 닮아 하도(遐島) 인가. 외자 이름이라 더욱 적적한 하도는 고사포 해변을 마주보고 그리움의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 손짓이 너무나 애절해 바라볼 때마다 울컥하고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아올랐다.

해무가 끼어 더욱 더 희뿌연하게 다가오는 하도는 고사포 해수욕장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는 섬이다. 그러나 해변과 하도의 그리움이 너무나 강렬했을까. 음력 1월과 15일, 사리 무렵엔 공교롭게도 바닷길이 열려 둘이 서로 손을 잡는다고 한다.

그리움으로 손짓하다가 해변과 하도가 서로 손을 마주잡고 깍지를 끼면 사람들은 우르르 바닷길로 몰려들어가 해산물을 딴다고 한다.

▲ 규칙적인 배열로 아로새겨진 무늬들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유진택
▲ 해변을 철썩이는 물결이 오늘도 섬세한 무늬를 만들고 있다.
ⓒ 유진택
사람들은 이것을 '모세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이집트 군들에게 쫒길 때 모세가 홍해바다를 갈라 유대인들을 구출했다는 모세의 기적, 지금 하도는 음력 정월, 바다가 열릴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그리워도 어차피 그 날만을 기다려야 하기야 저토록 그리움이 사무쳤나 보다.

족구로 마음달래며 외로움을 씻는 일행들

일행들은 바닷물이 철썩이는 해변과 광활한 모래밭을 배경으로 렌즈를 맞추기에 바빴다. 모처럼 달려와서 바라다본 해변의 풍광이 너무나 고적해서 나도 카메라를 꺼내 그 풍광을 렌즈 속에 담았다.

집에 돌아가면 생각날 때 꺼내보리라. 땡볕이 쏟아지고 무더위를 피해 사람들이 강과 산으로 떠날 때 난 선풍기 바람을 끓어않고 고사포의 해변 풍광을 감상하리라. 그러면 해변을 찰싹이는 바닷물 소리가 내 귀청을 뚫고 마음을 타고 내려가 온몸을 시원하게 씻어주리라.
이 얼마나 즐거운 피서법인가.

이윽고 일행들이 모래밭에 줄을 긋더니 편을 갈라 족구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 웃고 떠도는 소리들이 해변의 적적함을 달래주었다. 조금 전까지도 바닷물에서 물장난을 치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소나무 방풍림 속으로 들어가 웃고 떠드는 바람에 그 넓은 바다는 이제 일행들의 차지가 되었다.

▲ 멀리 아른대는 하도를 배경으로 걸어가는 여자들
ⓒ 유진택
▲ 방풍림과 해변의 경계에 서식하고 있는 식물들도 바다의 주인이다.
ⓒ 유진택
바다를 온전히 품에 앉고 희희낙락 즐기는 일행들, 웃고 떠도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해변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난 그때 해변의 한 쪽에 서있는 경고문구를 분명히 보았다. 시끄럽게 떠들면 바다의 주인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그렇다. 해변이 텅빈 것 같아도 분명히 주인들이 있다. 바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수많은 물고기들, 조개들이 다 바다의 주인들이었다.

해변의 공기가 싫어 아예 바다 속에서 나오지 않는 주인들 대신 또 다른 주인들도 만났다. 울창한 소나무 방풍림과 광활한 모래밭 경계에서 터를 이루고 살고 있는 한 무리의 식물들이다.

잿빛의 바다와 수평선, 누런 모래밭에 초록의 잎과 꽃으로 잠시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식물들, 모래지치. 갯완두, 해당화주위를 빙빙 돌며 허공을 빨갛게 물들이는 고추잠자리도 보았다.

허공을 소리 없이 날아오르는 고추잠자리들이 일행들에게 이렇게 주의를 주는 것 같았다. 쉿 조용히 하세요. 주인들이 싫어해요.
출처 : 겟세마네
글쓴이 : 유진택 스테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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