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 전경린 본문
「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 중에서 / 전경린
서른 살, 나는 무엇인가가 몹시 두려웠다.
달이 구름 속으로 잠행하는 밤처럼 나의 생은 어두워 보였다.
나의 욕망은 어디에 있는지, 깨어나기도 전에 생은 노파의 배처럼 싸늘하게 주름지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온 것인지도 몰랐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양부이며, 모든 교훈은 양부의 교훈이었는지도 모른다.
비가 왔으면......
그날 밤 우리는 거실 소파에서 건조한 섹스를 했다.
건조한 섹스란 나이프와 포크 부딪치는 소리만 나는 식욕 없는 식사 같은 것.
남편은 부드럽지만 집요하다.
그는 절대로 욕망을 가진 채로 잠들지는 않는다.
남편이 침실에서 잠들어갈 동안, 나는 오래오래 비가 내리지 않는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나의 욕망은 어디에 있나......눈물이 계속해서 흘렀다.
나쁜 양부의 거짓말 속에서 길러진 여자애처럼 나는 이제 머리에 쓴 비단수건을 풀고,
하나뿐인 검은 구두를 꺼내신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서른 살의 여자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른 살의 여자에 대해서는 들은 적도 없었다.
삶은 서른 살의 여자를 비밀에 붙여놓고 있다.
봉인된 시간, 유예된 시간. 아이가 낮잠든 동안 나는 거실에서 서성댔다.
그것이 유일하게 혼자인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쥐고 은행 창구에 줄을 서 있었고,
아이의 손을 쥐고 아파트 앞 상가의 장난감 가게나 빵 가게,
수예점이나 비디오 가게나 중국집을 갔고 시장에서 푸성귀나 생선 따위를 흥정했으며
아이와 둘이서 햇볕이 쏟아지는 한낮에 점심밥을 먹었다.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퍼즐게임을 하고 인형놀이를 했으며,
둘이서 목욕을 했다.
아이가 놀이터나 옆집에 놀러라도 가고 나면 나는 거실에서 서성댔다.
거실에서 서성댈 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세탁기를 전자동으로 바꾸어야 할 텐데, 정말 꼴사나운 장롱이야.
요즘은 아무도 저런 장롱을 사용하지 않아. 새로운 스타일의 장롱은
수납공간이 완전히 달라졌어.
다리미도 바꾸어야 할 것 같애. 벽지라도 바꾸면 좀 살 것 같은데,
옆집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로 바뀔 수는 없을까.
내일은 좀 다른 일이 생겼으면......
바뀌지 않은 채 버티는 지리멸렬한 모든 것들에게 견딜 수 없는 원한이 생긴다.
그리고, 삼류 극장의 필름 끊긴 화면처럼 하얗게 일어서는 공백. 생각이 뚝 끊겨버린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거실 천장과 바닥과 벽들을 휘둘러본다.
이곳은 어딘가. 나는 왜 이곳에 있나. 나는 너무 오래 이곳에 앉아 있었다.
혼자서 필름이 끊긴 어두운 극장에 앉아 있는 나.
어디엔가 주인공이 실종된 공백의 필름이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울한 날들은 불치의 병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다.
사층에서 오랫동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바닥이 나의 다리를 끌어당긴다.
뛰어내리라고, 별일 아니니 다리를 벌리고 단숨에 뛰어내리라고,
시멘트 바닥이 이스트를 푼 빵 반죽처럼 부풀어오르며 잔인하게 속삭인다.
내 인생의 벼랑 아래에 끊임없이 버려지고 있는 날들,
날들은 폭포수처럼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서른 살이란 아무도 돌아나간 적이 없는 긴긴 동굴 같다.
모두 각자의 통로로 더 깊숙이 발이 빠지며 걸어간다.
기생들이 퇴기가 되고, 논리적인 여자들이 자살을 하고 착한 여자들의 몸이 부어오른다.
알을 품고 있는 닭들의 시간. 일곱 마리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누운 개와 돼지들의 시간,
젖내와 수마와 자기분열의 시간. 성스럽게 파멸해가는 육체의 시간, 쑥과 마늘의 시간.
웅녀는 그 동굴에서 무엇을 했을까. 곰의 마법이 풀리는 혹독한 밀폐의 시간......
나와 내 친구들은 결혼을 해 낯선 도시로 흩어진 후,
세 번쯤 이사를 했고 두 번쯤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처음엔 몇몇 친구가 짝을 지어 나를 방문했고
나와 몇몇 친구가 또다른 친구집을 방문했었다.
맞벌이하는 친구들의 집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복도처럼 휑덩했고,
주부가 된 친구의 집엔 인형의 드레스처럼 레이스 장식이 너무 많아 거추장스러웠다.
그리고 모든 친구의 남편은 어쩐지 그녀들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불편한 존재였다.
그 뒤 우리는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적어서, 분유 얼룩이나 아이의 묽은 침 따위가 떨어져,
흡사 눈물로 얼룩진 것 같은 편지를 몇 번 교환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번인가 편지가 돌아오고 전화가 불통되었다.
한동안이 흐른 후, 명절의 뒷날쯤에 친정 도시에서 갑작스럽게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다시 연락하자고 말하며 바뀐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고 애매한 얼굴로 헤어졌었다.
그러나 누구도 곧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한동안이 지나면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리고 다시 주소가 바뀌고 또 전화가 불통, 부치지 못한 편지가 읽다가 만 책 속에서
툭툭 떨어지곤 하던 시간......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아무 호기심도 없었다.
심지어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서로의 삶이 혐오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나의 스물아홉 살 생일엔 의류 브랜드의 회원관리과에서 꼭 한 통의 카드를 보냈고
시가의 큰형님이 축하전화를 해온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어가고 모두에게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아이를 하나 더 낳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동굴은 깊고도 깊었으니까.
'웅녀는 그 동굴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럴 때면 나는 가끔 웅녀를 떠올렸다.
웅녀는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에서 백일 동안을 보내고 여자로 변신했다.
'변신, 무엇가로 변신할 수 있다면, 아주 흉한 색깔의 털과
커다랗게 울부짖는 목소리를 가진 곰 같은 것으로라도 변해서
이 생을 활짝 열어젖히고 나갈 수 있다면.
망가진 구식 세탁기처럼 잡초 우거진 공터에 내버려져서 실컷 비를 맞았으면......
소설가 전령린 프로필
전경린은 제 3회 21세기 문학상 수상자이다. 전씨는 1999년<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21세기 문학상 소설상을 수상하였다. 이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는 서커스라는 특이한 상황 속에서 부단히 방황하고 방랑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소외와 단절 그리고 사랑과 저항을 뛰어난 감수성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전씨의 작품은 가족소설의 범주를 벗어나 우리 소설의 격조를 한단계 높혀놓았으며 우리 삶의 비극성과 잔혹성을 절조되고 간결한 분장으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일그러진 권력의 횡표에 맞선 메시지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값진 작품이라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또한 전씨의 새로운 감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전경린은 필명이고 본명은 안애금이다. 작가 전씨는 1962년 경남 함안에서 1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경남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한 후에 마산 KBS에서 음악담당 객원 PD와 방송 구성작가로 근무했다.성장기 내내 지독한 허무주의자였다고 말하는 전씨는 주어진 삶의 일회성과 전씨가 열망해 온 영원성 사이에서 글쓰기를 발견하였다고 얘기한다.
1993년 부터 여섯편의 중단편을 완성하며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사막의 달> 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1996년 단편 <염소를 모는여자>로 제 29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어 1997년 장편< 아무곳에도 없는 남자> 로 제 2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함으로써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떠올랐다.
전씨의 작품으로는 소설집<바닷가 마지막집>(1998), 어른을 위한 동화<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1998),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1999), <난 유리로 만든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2001),
<열정의 습관>(2002)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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