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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매트릭스]신의 구원과 약속은 불변한다 / 시안 본문
매트릭스(Matrix)
영원히 꾸는 꿈이 있다면 그건 또다른 현실이다.
감독: 앤디 와쵸브스키 / 레리 와쵸브스키
배우: 키아누 리브스 / 캐리-앤모스 / 로렌스 피시번 / 휴고 위빙 / 조 판토리아노
<매트릭스>는 네트웍 게임과 같은 단순한 구조이지만 개념을 엄청나게 확대시킨 매우 어려운
영화이다. 인터넷과 컴퓨터와 게임을 모르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깊이에 이르기는 힘들 정도로 종교적인 믿음과 철학적인 사유를
요구한다.
필자도 처음에는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그 공중전화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드는 여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던 대형 트럭이 성난 투우처럼 부스를 깔아 뭉개버린다. 그러나 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여기서부터 의문은 시작된다.
왜 구식 전화벨이 울리고, 멍청한 바보처럼 생긴(아마 다른 영화에서는 좀 코믹하고 우스꽝스럽거나 아니면 선글래스를 끼고 폼만 재다가 금방 죽거나 사라지는 엑스트라 수준)요원이라는 알 수 없는 세 명의 남자가 스토리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자주 등장하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영화적 요소 외에 또다른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는 더욱 쉽지가 않다.
인간과 현실의 조건
브라질( 한국개봉명 '여인의 음모') 이 테크노크라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독재 체제 시스템의 오류와 의심에서 출발한다면 <매트릭스>는 테크노 사회에 있어서 인간과 현실의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영화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것, 만져지고 느껴지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어지는 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의 정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틀리기 시작했다. 존재하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영원히 꾸는 꿈이 있다면 그건 또다른 현실이다. 테크노 사회에 있어서 인간과 현실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테크노 사회의 구원자
영혼이 존재한다면 육체의 죽음은, 물질의 조합이 해체되는 하나의 과정이고 다른 조건 속에서 계속되는 삶의 연장일 것이다. 영화에서 선지자 모피스는 네오에게 '오감은 뇌가 느끼는 신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꾸만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뇌가 느끼는 신호가 데이터로 저장되어지고 프로세서 과정을 거쳐 또다른 신호를 재생산한다면 인간의 영혼은 0과 1의 무수한 조합으로 형성되어질 수 있다. 육체는 컴퓨터의 터미널 기능을 가진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거대한 슈퍼컴퓨터가 바로 현실의 세상이고 그것을 지배하는 CPU는 신 또는 악마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유전자 조작, 인공수정 등 당신이 만든 질서를 거부하다 태양과 빛의 세계 마저 파괴하고 가상 현실 세계에서 비참하게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또다시 예수그리스도를 보낼 것인가. 깨달은 선지자 모피스는 메시아를 찾아나서고 예언자 오라클(성경의 나단: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은 하느님께서 일찌기 예언자 나단을 통해서 인류에게 주신 약속의 실현이다)은 메시아가 곧 올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그가 누구인지 모를 뿐이다.
네오는 질문이자 스스로 답이 되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매트릭스 시스템이 정한 룰을 깨닫고 그것에 접근하려는 해커로 등장한다.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과 빌딩과 빌딩 사이를 뛰어넘는 시험과 믿음, 고난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동료 사이퍼의 약속에 대한 의심과 배반, 죽은 네오의 부활 등 예수 시대의 배경을 그대로 미래화시켰다.
SF 장르를 빌렸을 뿐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흐름은 매우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신은 역사의 시초에서 종말까지 관장하기에 사이버 세계 또한 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 속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
네오가 요원들의 총알을 피할 때 트린이 '당신은 그들과 똑같은 능력을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하고 말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네오는 해커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흐름을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비오듯이 쏟아지는 총알을 귀신같이 피하는 컴퓨터 게임의 고수를 상상하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서서 걷게 한 예수처럼 전지능한 능력을 보이는 증거이자 메시아에 대한 트린의 믿음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신은 사이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프로그램 전사를 보내기 보다는 네오라는 해커의 몸으로 또한번 육화했으며 인간과 똑같이 전화선을 통해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이타가 되어 구원과 믿음에 대해서 약속했다. 결론적으로 매트릭스는 미리 쓴 사이버 영상 성서(聖書)인 셈이다.
얼마 전에 디지틀 조선일보에서 외국 이벤트를 흉내내어 인터넷만으로 인간이 얼마나 버티는가 하는 행사를 했다. 갖힌 공간에서 인터넷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은 컴퓨터 터미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자체이다. 우리는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인간과 현실의 조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1999/12/13
황인철
영원히 꾸는 꿈이 있다면 그건 또다른 현실이다.
감독: 앤디 와쵸브스키 / 레리 와쵸브스키
배우: 키아누 리브스 / 캐리-앤모스 / 로렌스 피시번 / 휴고 위빙 / 조 판토리아노

필자도 처음에는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그 공중전화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드는 여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던 대형 트럭이 성난 투우처럼 부스를 깔아 뭉개버린다. 그러나 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여기서부터 의문은 시작된다.
왜 구식 전화벨이 울리고, 멍청한 바보처럼 생긴(아마 다른 영화에서는 좀 코믹하고 우스꽝스럽거나 아니면 선글래스를 끼고 폼만 재다가 금방 죽거나 사라지는 엑스트라 수준)요원이라는 알 수 없는 세 명의 남자가 스토리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자주 등장하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영화적 요소 외에 또다른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는 더욱 쉽지가 않다.
인간과 현실의 조건
브라질( 한국개봉명 '여인의 음모') 이 테크노크라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독재 체제 시스템의 오류와 의심에서 출발한다면 <매트릭스>는 테크노 사회에 있어서 인간과 현실의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영화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것, 만져지고 느껴지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어지는 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의 정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틀리기 시작했다. 존재하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영원히 꾸는 꿈이 있다면 그건 또다른 현실이다. 테크노 사회에 있어서 인간과 현실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테크노 사회의 구원자
영혼이 존재한다면 육체의 죽음은, 물질의 조합이 해체되는 하나의 과정이고 다른 조건 속에서 계속되는 삶의 연장일 것이다. 영화에서 선지자 모피스는 네오에게 '오감은 뇌가 느끼는 신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꾸만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뇌가 느끼는 신호가 데이터로 저장되어지고 프로세서 과정을 거쳐 또다른 신호를 재생산한다면 인간의 영혼은 0과 1의 무수한 조합으로 형성되어질 수 있다. 육체는 컴퓨터의 터미널 기능을 가진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거대한 슈퍼컴퓨터가 바로 현실의 세상이고 그것을 지배하는 CPU는 신 또는 악마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유전자 조작, 인공수정 등 당신이 만든 질서를 거부하다 태양과 빛의 세계 마저 파괴하고 가상 현실 세계에서 비참하게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또다시 예수그리스도를 보낼 것인가. 깨달은 선지자 모피스는 메시아를 찾아나서고 예언자 오라클(성경의 나단: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은 하느님께서 일찌기 예언자 나단을 통해서 인류에게 주신 약속의 실현이다)은 메시아가 곧 올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그가 누구인지 모를 뿐이다.
네오는 질문이자 스스로 답이 되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매트릭스 시스템이 정한 룰을 깨닫고 그것에 접근하려는 해커로 등장한다.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과 빌딩과 빌딩 사이를 뛰어넘는 시험과 믿음, 고난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동료 사이퍼의 약속에 대한 의심과 배반, 죽은 네오의 부활 등 예수 시대의 배경을 그대로 미래화시켰다.
SF 장르를 빌렸을 뿐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흐름은 매우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신은 역사의 시초에서 종말까지 관장하기에 사이버 세계 또한 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 속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
네오가 요원들의 총알을 피할 때 트린이 '당신은 그들과 똑같은 능력을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하고 말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네오는 해커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흐름을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비오듯이 쏟아지는 총알을 귀신같이 피하는 컴퓨터 게임의 고수를 상상하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서서 걷게 한 예수처럼 전지능한 능력을 보이는 증거이자 메시아에 대한 트린의 믿음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신은 사이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프로그램 전사를 보내기 보다는 네오라는 해커의 몸으로 또한번 육화했으며 인간과 똑같이 전화선을 통해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이타가 되어 구원과 믿음에 대해서 약속했다. 결론적으로 매트릭스는 미리 쓴 사이버 영상 성서(聖書)인 셈이다.
얼마 전에 디지틀 조선일보에서 외국 이벤트를 흉내내어 인터넷만으로 인간이 얼마나 버티는가 하는 행사를 했다. 갖힌 공간에서 인터넷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은 컴퓨터 터미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자체이다. 우리는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인간과 현실의 조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1999/12/13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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