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김승희 시집 ‘냄비는 둥둥’ 삶에 바퀴를 다는 음악같은 시편 본문

OUT/詩관련

김승희 시집 ‘냄비는 둥둥’ 삶에 바퀴를 다는 음악같은 시편

휘수 Hwisu 2007. 2. 8. 06:46

시인 김승희(54)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가 6년 만에 펴낸 아홉번째 시집 ‘냄비는 둥둥’(창비)은 시가 음악이 되는 길목을 서성거린다. 그동안 페미니즘이다 민중주의다해서 여성성의 원초적 비애와 현대문명의 비인간성을 통찰하는 높은 전압의 시풍에서 훌쩍 벗어나 일상에 숨어 있는 생의 율동을 포착해 내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사랑은 움직인다/사랑이 동그란 바퀴를 타고 있기 때문에,/당신밖에 할 수 없는 일,/사람에서 ㅁ을 깍아서 ㅇ을 만들어서/…ㅇ…ㅇ…ㅇ…ㅇ…ㅇ…/동그란 바퀴는 구르고 움직이며 때로 미끄러지기도 한다,”(‘사랑은 ㅇ을 타고’ 중)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뮤지컬 영화의 경쾌함이 패러디되면서 사랑의 ‘ㅇ’이 빗방울처럼 또르르 굴러간다. 검은 보자기를 덮은 시루에서 자라나는 콩나물을 아예 오선지 위에서 춤추는 음표에 비유한 시편도 있다.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긴 기간 동안/꼭 감은 내 눈 속에 꼭 감은 네 눈 속에/쑥쑥 한시루의 음악의 보름달이 벅차게 빨리//검은 보자기 아래-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사이였다.”(‘콩나물의 물음표’ 중)

이처럼 시가 음악처럼 들리고 물처럼 만져지는 까닭은 그가 여성 해방이라는 거대담론에서 한 발을 빼 소소한 삶의 세목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일 터다. ‘냄비는 둥둥’이라는 표제시는 장마철 물난리에 가난한 사람들이 냄비를 두드려대는 아르헨티나의 소요 장면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지켜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시집 전편에 걸쳐 흐르는 생의 율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 내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며/묵묵히 밥을 먹는다/다리 하나 부러진 개다리밥상/아무도 그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다/냄비 밑바닥만 우두커니 들여다본다”(‘냄비는 둥둥’ 중)

시인은 밥을 지어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아들의 운동화를 빠는 등 일상적인 삶의 행위를 시적 사유에 녹여낸다. 그렇게 발화된 시어들은 고통을 견디고 곧 음악과 웃음이 되어 흘러나와 마침내 삶의 바퀴로써 세상을 굴려나간다. “새벽에 너무 어두워/밥솥을 열어 봅니다/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별이 쌀이될 때까지/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새벽밥’ 중) 살아간다는 일을 찌그러진 냄비를 두둘겨대는 비의 음악으로 듣는 일이야말로 구원이 아닐까.

정철훈 전문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