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김광선 시모음(2003 창비신인시인상수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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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선 시모음(2003 창비신인시인상수장)

휘수 Hwisu 2006. 9. 9. 22:43

조리사의 일기

 

소 한 마리분의 내장을
부위별로 정리해놓고 가을도 끝난
나무 아래 섰다
아직도 그 선명한 빛이 가시지 않은
고기를 담근 통
한껏 흘려보낸 물빛처럼 노을이 피었다
물컹거리는 비린내보다도 허리의 통증
씻어내려 삼킨 막소주 한잔으로 모자라
담배연기 폐 깊숙이 밀어넣는다

풀풀 날린다 흩날릴 것도 없는
시푸르딩딩 겨울 초입 저녁나절
민망한 듯 잎새 몇 개 겨울나무 뜨악하다
몸짓만이 남았구나
바람 앞에서 초연할 수 없었던 의지
맨가지로 빈 하늘 받치고 섰구나

찬물에 퉁퉁 불은 손을 쓰다듬는다
이 손끝에서
많은 사람들 포만하여 행복했을까
내 아직 푸른 수액은
어떤 혈관으로든 타고 흐를 수 있을까
찬밥덩이처럼 굳은 가슴 언저리
떨림도 없이 또 몇잎
떨구는 까칠한 줄기 쓰다듬으며
다독이듯 내내 쓰다듬으며

 

비수

 

거울을 깨트렸다, 오래도록
나만을 우려낸,
잘 닦디 않아 희부옇던
거울을 닦다가 고리를 놓쳤다

순간, 벚꽃이 무더기로 지는 소리
그 흐벅진 함성은
섬광처럼 맹수의 눈빛으로 제각각 빛나고
온 바닥 질펀하게 흐르는 아 정적
차마 발을 뗄 수도 없는,
맨살 같은 봄날의 낙화여

그저 모서리겠거니, 서툰 균열마다
날을 세운 마음의 마디들
겨울 호수처럼 맑던 고요는
격한 손가락 한 매듭처럼 파문이 거칠다
굴절의 흔적마다
서로를 겨누는 빛의 난반사
햇살 한줌 훔쳐보다 반짝,
은회색 피를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