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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창작의 힘’ 국내외서 인기 질주

휘수 Hwisu 2007. 11. 7. 09:19

‘집단창작의 힘’ 국내외서 인기 질주2007년 11월 6일 (화) 05:47   중앙일보



[중앙일보 최민우.김성룡]

연극을 하는데 극단이 아니란다. 연구소란다. 단원끼린 서로 연구원이라고 부른다. 연습때마다 ‘연구원’들은 치열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계급장 떼고 맞붙는 싸움처럼, 선후배나 위아래는 없다. 게다가 연구소내엔 여러 종류의 ‘스터디 그룹’이 있다. 사뭇 진지하고 탐구적이다. 이런 괴이하고 색다른 극단은 다름 아닌 사다리움직임연구소다.

올해로 창단 10년째.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이하 사움연)는 지금 사고(?)를 치고 있다. 이들이 만든 ‘보이첵’이란 작품은 세계 최고의 공연 축제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올해 최고 작품상에 해당하는 ‘해롤드 엔젤 어워드’를 수상했다. 내년 영국·크로아티아·이스라엘 등 순회 공연도 잡혀 있다. 깊이 있는 철학과 여운, 그리고 독특한 움직임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해외에서 ‘보이첵’이 선전하고 있다면 국내에선 ‘휴먼코메디’가 순항중이다. 1999년 초연 이후 ‘따뜻한 인간애가 스며 있는 코믹물’이란 평가를 받아온 이 작품이 올 가을부턴 아예 1년 장기 공연에 돌입했다.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다. 내년엔 상설관도 생길 예정이다.

 한 공연 단체가 만든 두 작품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무엇이 이런 성공을 가져오게 한 것일까. ‘사움연’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연출·배우 경계를 허물다

 작품을 완성해가는 이들의 방식은 독특하다. 우선 대본이 없다. 전체적인 방향만 설정돼 있다. 연출자는 일종의 가이드만을 내 놓는다. 이를 모든 연구원들이 서로 토의하며 수정 보완한다. 집단 창작은 ‘사움연’의 핵심이다.

 배역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배우의 특성을 살려 배역을 만들어 간다. 임도완 소장은 “특정한 상황을 놓고서 배우들에게 이를 연기하라고 한다. 그게 사실상 오디션이다. 그럼 배우들은 저마다 다르게 움직인다. 누군가는 수줍어 하고, 어떤 이는 덤벼들며, 또 다른 이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게 그 배우의 고유한 색깔이다. 이를 최대한 살려 캐릭터를 완성해 간다”고 말한다.

 ‘휴먼코메디’중 ‘가족’이란 에피소드는 이들의 집단 창작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가족애를 강조하기 위해 ‘죽음’이란 테마를 이들은 택했다. 그리곤 연습을 통해 한명씩 죽였다. 어머니가 죽었고, 큰아버지도 죽어 봤고, 며느리 뱃속의 아이마저 그래 보았다. 최종 결론은 배를 타는 아들의 ‘죽음’. 모든 죽음 중에서도 가장 찡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임소장은 “기본적인 시퀀스와 캐릭터를 정한 다음엔 다양한 실험이 필수적이다. 배우들이 스스로 발견해 나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살이 붙고 이야기가 정밀해져 간다”라고 설명했다.

 #“휴지의 비극성을 보라”

 집단 창작과 더불어 ‘사움연’의 큰 차별점은 ‘움직임’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움직임 자체에서 묘한 울림을 가져다 준다. 이를 위해 27명의 ‘사움연’ 연구원들은 일상적인 사물 관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수석 연구원에 해당하는 백원길씨는 “휴지의 비극성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꼬깃꼬깃 구겨져 있는 휴지엔 절박함·처절함·분노 이런 게 다 담겨져 있습니다. 이를 동작으로 표출할 수 있다면 어떤 언어보다도 더 강력한 느낌을 전달하겠죠.”

 그래서 연구원들은 평상시에도 컵·술병 등 다양한 물체를 여러 각도에서 응시하고 바라보는 습관이 배어 있다. 그리고 이를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연기를 새로운 차원의 ‘몸짓 언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사움연’엔 미술·사진·건축·디자인 등 각 파트별 스터디 그룹이 있다. 움직임과 연관된 시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것이다. 또한 최근엔 동작의 리듬감·호흡 등을 익히고자 기타·아코디언·바이올린 등 음악 부분에 대한 실습도 병행하고 있다. “정서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린 말이 아닌 움직임으로 나타내고 싶다”는 게 이들의 모토다. 연극과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의 경계선에 있는 이들의 도전은 한국 공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사움연’의 필살기 퀵 체인지

서울 대학로 틴틴홀에서 공연중인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휴먼 코메디’는 3부작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세번째 에피소드 ‘추적’의 퀵 체인지(Quick Change·빠른 배역 변환)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움직임의 극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추적’에서 6명의 배우는 14가지 배역을 소화한다. 일인다역도 어렵지만 더 눈에 띠는 건 배역을 바꾸는 횟수다. 무려 94번이나 된다. 즉 공연 도중 94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딴 배역을 한다는 얘기다. ‘추적’의 공연시간이 50분인 것을 고려하면 30초마다 한번씩 의상 교체를 하는 셈이다. 특히 박여사·점자·여관집 주인 등 세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이은주씨는 혼자서 28번 옷을 바꿔 입는다.

 어떻게 할까. 무대 중앙엔 검은색 설치물이 있다. 한 배우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 곧이어 다른 인물로 바뀌어 무대로 나온다. 가발·의상·소품 등이 달라져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속도다. 빠르면 0.5초, 늦어도 2.5초안에 딴 배역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같은 배우가 두 배역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다. 이 정도면 연극이 아니라 사실상 마술이다.

 속도를 내기 위해 연습시 스톱 워치를 써 가며 0.1초까지 쟀다고 한다. 혼자서 다 옷을 갈아 입기 힘들기 때문에 배우들간의 호흡은 필수 요소. 백원길씨는 “인간의 몸이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 말한다. 02-766-0570  

최민우 기자 ▶최민우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cmw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