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시와 세계' 여름호 신인상 당선작 / 안수아
2007 '시와 세계' 여름호 신인상 당선작 / 안수아
고양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막도 아니고 푸른 바다도 아닌 당신의 주머니 속에 웅크린, 방들이 빙빙 돌아요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나의 노래는 알록달록 즐거워요 주머니에서 제멋대로 빠져 나와 춤을 추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로 어우러지다 흩어지는 아침 공기 같은 이름의 고양이, 엉킨 스텝이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 출구를 찾는
인샬라! 부에노스아이레스
넌 몰라! 주머니 속의 고양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죠 검은 망막 안의 귀여운 유령 안녕? 보르헤스도 안녕?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진 광마우스는 왼쪽으로만 구부러졌어요 당신은 보았나요? 내 이마에 늘어진 생선 비린내, 마흔세 개의 계단이 헬륨 풍선처럼 콩,콩 튕겨 올랐죠
인샬라! 검은 고양이
속눈썹이 보풀거리는 아지랑이
퍼즐조각 햇살이 살고 있어요
사막을 횡단하는
코끼리의 다리가 어른거려요
재규어 가죽무늬에 씌어진 글자들
당신은 읽어보았나요?
그래도 난 고양일 뿐이죠
치터스1), 치토스
너는 치터스를 말하고 나는 치토스로 듣지
재빠르지 가면은 쓰지 않아
엽기와 선정을 버무린 매콤한 볼거리
껍질을 벗겨 연분홍 침실까지 공유하지
수다를 떨면서
이중의 홀로그램이 있는 카드도 치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간식
통점을 마비시키면 그 뿐,
화학조미료면 어때
“딱 걸렸어”
의뢰인의 부리가
비릿한 실루엣을 모조리 쪼아 먹도록
유쾌한 발톱을 세우지
"언젠간 잡고 말거야”
나는 치토스로 말하고 너는 치터스를 듣지
1) 현장고발 사건을 다룬 미국 TV물
피싱주의보
그것은 타이밍에 노련한
구름들의 몫,
모두가 고래를 본 것은 아니다
달의 그림자를 본 것도 아니다
폭풍우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타나고
나는 먼 바다로부터
저기압을 표현할 수 있다
당신들은 구름을 낚았다 직선으로 쏟아지는 구름의 뼈를 낚고 있었다 비 오는 날 천 개의 눈이 깜빡였다 그녀는 자신의 혓바닥을 감추는 안경을 보았다 그는 달이 뿌린 백만 도서를 이해했다 우리는 십 년 전에 얼룩진 접시 위에 매달려 있었다 고래 같은 이야기를 집어넣기 위해 나침반을 찾았다
선글라스를 끼자
길쭉한 소나무가 사라졌고
구름이 나타났다
시야가 길어졌다
한마디 예고도 없이
구름들이 일제히 타올랐다
책갈피가 끊임없이 넘어가고 있었다
프리즘
빛이 폭발해
산산조각이 나요
꽃잎을 만지지 마세요
어둠행 티켓 거울이 있어요
왼손에 빨강 핸드폰
양파링으로 떠있는 노랑 풍선
피크닉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거드름을 피워요
여름정원은 재잘거리고 있어
너털웃음이 춤을 춰요
피노키오의 코처럼 늘어나는
나무의 초록 구렛나룻
펼쳐진 주근깨에 돋보기를 들이대지 마세요
당신은 감염되고 있어
머그컵에 농담을 타먹으세요
물고기가 하품하는 파랑 모자
드럼소리는 잠들어
모퉁이 LG25시가 둥둥
끝없이 늘어나는 침대 어디에서 자를까요?
햇살이 잠수중인 검정 안경
감아올려봐요
사방에 방사된 거미줄처럼
투명한 날 깨트려줘요
별 그림자는 그대로였어
1008번째 반달이 펼치다 꺼져갔던가
시소(see-saw)
떠는 전화벨과 전화벨을 쫓는 눈동자
파도소리가 흘러나왔다 / 종이 울렸다
풍금이 소리치는 교실과 걸상이 누운 교실
바다가 넘실거렸다 / 문이 열렸다
날아간 풍금소리와 다가오는 나무 그림자
아픈 창들이 햇살을 삼키고 있었다 / 커텐을 밀쳤다
밀려온 바람과 흩어지는 머리카락
모래 위 발자국을 지우고 있었다 / 복도를 걸었다
들썩이는 모래와 운동장을 밀고 가는 축구공
파문이 떠나고 있었다 / 운동장에 서 있었다
머리 위에서 갈매기가 맴돌고 있었다
문과 문을 따라 자라나는 담,
담을 뛰어넘은 고양이 앞발과 붙잡힌 뒷발 사이
태양 한 점, 기우뚱거리는
<시와세계 신인상 심사평>
환상적인 유머와 종이 언어
구조는 우수를 모르고 우수의 파토스를 모른다. 환상을 낳는 건 구조가 아
니라 우수의 파토스다. 그런 점에서 환상은 구조, 이성, 논리의 억압에서 벗어
나려는 시도이고 안수아의 ‘고양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읽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그의 시가 보여주는 환상은 질병보다는 유머와 장난으로 번쩍이고
이것이 최근의 우리 젊은 시인들이 보여주는 환상과 다른 점이다.
유머와 장난은 우수, 절망, 고통의 극한에서 만나는 자유로운 공간이고
결국 시쓰기가 노리는 것은 이런 자유와 가벼움이다.
예컨대 이런 가벼움은 사막도 아니고 푸른 바다도 아닌 방들이 빙빙 돌아요 당신의 주머니 속에
웅크린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나의 노래는 알록달록 즐거워요 주머니에서 제멋대로 빠져나와
춤을 추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처럼 노래된다.
그의 경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고양이 이름이 되고.
그러니까 남미의 파리로 통하는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한 마리 고양이로 압축되고
이 고양이는 당신의 주머니 속에 웅크린 채 빙빙 돌고 주머니에서 나와 춤을 춘다.
이 춤은 고양이의 춤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춤이고 탱고이고 마침내 안수아의 춤이다.
안수아 속에는 안수아-아르헨-아이레스가 있다.
그는 치터스를 치토스로 듣는다. 이런 언어 착오, 소통 착오가 송지현의 경우엔 종이 언어로 발전한다. 종이 언어라 ? ‘껍데기의 오후’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진지성이 사라진 시대의 삽화지만
이런 삽화가 유머를 동반하고 이런 유머가 아이러니를 낳는다.
우리의 대화는 너무 질겨서 씹어도 씹어도 넘어갈 생각이 없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의 영어 교과서에 나온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분은 어때 ? 파인. 땡큐. 혹은 쏘 쏘.
그리고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기. 이 얼마나 멋진 피상적인 단어들인가 ?
언어는 표피에 부딪쳐 산산히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들 안녕. 고마워. 잘가.
대화 불능의 시대, 소통 단절의 시대에 그가 찾는 것은 중1 때의 영어 교과서식 대화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대화를 멋진 피상적인 단어들로 규정하고 이런 규정이 아이러니를 낳고 그것은 이 시대 언어의 표피성에 대한 아이러니와 통한다. 깊이, 의미, 진리를 상실한 언어는 종이 언어이고 그의 혓바닥은 낡아서 바스락댄다. 이제 그가 할 일은,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종이 언어를 날리며 웃는 일이다. 얼마나 기쁜가 ? 환상적인 유머와 종이 언어의 세계에서 논다는 것은.
심사위원 이승훈 <시인. 한양대 교수>
송준영 <시인. 본지주간>
출처, 시산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