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소월시문학상 수상자 박주택 시모음
박주택(朴柱澤) 약력
1959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
1978년 대학 주최 백일장에서 수상하여 경희대학교에 문예특기생으로 입학
1982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충청남도 송악고등학교 교사로 잠시 근무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꿈의 이동건축」이 당선되어 문단 활동 시작
1987년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
1991년 시집『꿈의 이동건축』 출간
1995년 시집『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출간
1997년 계간《한국문학평론≫기획위원 역임.
1998년 월간《현대시≫사무국장 역임
1999년 경희대학교에서『백석(白石)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취득
1999년 시집『사막의 별 아래에서』출간
논문집 『낙원 회복의 꿈과 민족정서의 복원』출간
2000년《시와 시학≫편집장. 인터넷《포엠토피아≫편집위원 역임
‘편운(片雲)문학 신인평론상’ 수상
2002년부터 현재, 월간《현대시≫편집위원
2001-2004년 경희 사이버대학교 미디어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2004년 시집『꿈의 이동건축』복간
제5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 ‘경희문학상’ 수상
2004년 평론집『반성과 성찰』『붉은 시간의 영혼』출간
2004년 시집『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출간
2004년 현재,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
2005년도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소월시 문학상 수상작품
시간의 동공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말 한 마리
아주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들이 그 위를 비추면
창백한 호흡을 멈춘 새들만이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쉰다
꽃들이 어둠을 물리칠 때 스스럼없는
파도만이 욱신거림을 넘어간다
만리포 혹은 더 많은 높이에서 자신의 곡조를 힘없이
받아들이는 발자국, 가는 핏줄 속으로 잦아드는
금잔화, 생이 길쭉길쭉하게 자라 있어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의 동공들
때때로 우리들은 자신 안에 너무 많은 자신을 가두고
북적거리고 있는 자신 때문에 잠이 휘다니,
기억의 풍금 소리도 얇은 무늬의 떫은 목청도
저문 잔등에 서리는 소금기에 낯이 뜨겁다니,
갈기털을 휘날리며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말 한 마리
꽃들이 허리에서 긴 혁대를 끌러 바람의 등을 후려칠 때
그 숨결에 일어서는 자정의 달
곧이어 어디선가 제집을 찾아가는 개 한 마리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을 토하며
어슬렁어슬렁 떫은 잠 속을 걸어들어 간다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그 무렵 잠에서 나 배웠네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복록을 찾기엔
너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을, 잠의 해안에 배 한 척
슬그머니 풀려나 때때로 부두를 드나들 때에
쓸쓸한 노래들이 한적하게 귀를 적시기도 했었지만
내게 病은 높은 것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것 때문이었다네
유리창에 나무 그림자가 물들고 노을이 쓰르라미 소리로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꿈의 이동건축
1
목재를 실어 나르는 화차(貨車)를 타고
숲으로 가네
수맥을 짚어 한 모금의
물을 마시는 동안
구름이 어둡게 어둡게 몰려오지만
풀밭에 제비꽃 몇 장 숨기고 있겠지
훠어이 훠어이 부는 바람같이만
처음인 곳으로 가는 나중의 하늘
숲 속으로 들어서면 푸른 잎맥의 바다
물레를 잣는 어머니처럼 부드럽게
하늘이
내게로 내려와 물을 주시고
마을의 풀밭에 씨앗을 뿌리시고.
아하 바람은 한사코 내 머리 위에 머물러 있다.
끌로 땅 끝을 깎아 나무들 사이의 행적(行蹟)을 깎아
햇살을 모아 두면서, 바람의 옆모습을 지켜본다.
세계는 옆으로 열리고 열린 창문처럼
쑥 뿌리가 내 겨드랑이 털까지 휘감아 돈다.
2
뽑힌 노을은 동쪽 하늘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창포 꽃잎이 티눈처럼 손바닥에 퍼지고
귀에 잡힌 푸른 공기, 푸른 목숨이 서럽게 느낄 무렵
가슴속 얽혀 있는 내 생애를 점치리라.
별을 보며, 넓적다리에 진득거리는 절망을 떼어다오.
어제처럼 노을 위에 누울 때
까마귀 떼 내 발밑으로 돌아와 눕고
무릎 사이로 말할 수 없이 많은 강물이 빠져나가 시방,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랑 앞에 서면 반딧불보다 더 빛나는
나뭇잎들. 산이 되는 바람에 의해 숲을 건너온 강물은
팽팽한 슬픔을 만드는데
나는, 흡반처럼 길고 먼 바다를 빨아들인다.
한 마름의 비단으로 아버지가 가슴을 껴안네.
이 손바닥에 비쳐지는 단 하나의 바다. 우수의 불꽃.
안개 표지판 없는 생애의 채찍을 몰아
서녘 하늘 굽이굽이 돌아 모두
빈 집으로 불러들이는
내 뒤를 밟던 새 떼.
3
손수 나의 흉금을 떨어놓자
화살 모양의 안개는 지평선 밖으로
과녁을 찾아 떠나가고,
나는 집 구조와 가구들을 이동시킨다.
높낮이의 생애를 닮아가도
나는 다시는 태양을 찾지 않는다.
처음으로 약속받은 땅의 일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이것은 바꿔지지 않는 것이므로.
다만, 나무들이 지평 위에서 나를 지켜보기 위하여
날마다 까마귀 알을 받아낼 뿐이므로.
그러면서도, 생명을 낳고 뜨거운 혈맥을 찾아 계곡을
건너온 물소리가 굽이굽이 천장을 울리고, 허물을 벗는
바람을 얼러 등 굽은 회양목 아래서 또다시 깊은 잡을
자리라. 그때는 겹겹의 사랑이 땅 끝에서, 살아 있는 나를
눈물겹게 껴안아 주리라.
내 입의 불, 어두운 저녁녘에 그려내는 내 눈의 태양.
꿈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아름다운 약속.
지평을 밝히는 꿈으로 새는 날아가고
머리에 불꽃을 이고 아침.
나는 잠을 깬다. 일찍이
내가 화차를 타고 이주해 온 숲의 아침에
맑은 햇살이 거미줄을 투명하게 비춰주고
보물과 곡식들이 가득 찬 나라에서, 말하리라.
깊이를 숨긴 고독 속 새로 남아
내 굴레가 무엇이며
어떤 속박으로 죄어드는가를.
그때, 사과나무에서 꽃이 피고
양떼들의 풀밭에 양떼구름이
어떻게 순례하는가를.
정육점
완벽한 육체를 이루었던 소는 칼에 찢겨
피에 젖은 갈고리에 걸려 있다, 가끔씩 날파리들이
핏물을 빨다 냉동고 위로 날아가 버리면
몸에서 쫓겨나간 영혼만이 갈고리 주위를 맴돈다
바닥에 핏물을 떨어뜨리는 기억의 몸뚱이
마치 남은 말이라도 쥐어짜듯이 팽팽한 얼룩들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거푸 숨을 몰아 내쉬며
한 방울의 핏빛 눈물을 짜낸다
진열대 속 자동 분쇄기에 가지런히 썰려 있는
살점들, 한 그루 시간의 붉은 잎사귀처럼 서로 몸을
포갠 채 지독한 적막 속에 끼어 들 때
일생을 캐묻듯이 유리의 깃털들이 펄럭인다
게으른 책임을 두 눈 속에 퍼부었을 소
그러나 이제, 시간에게 상속받은 것이 얼룩뿐이라는 듯
붉은 燈을 바닥에 하나 둘씩 켜 놓는다
겨울 저녁의 시
사위가 고요한 겨울 저녁 창 틈으로 스미는
빙판을 지나온 바람을 받으며, 어느 산골쯤
차가운 달빛 아래에서 밤을 견딜 나무들을 떠올렸다
기억에도 집이 있으리라, 내가 나로부터 가장 멀듯이
혹은 내가 나로부터 가장 가깝듯이 그 윙윙거리는
나무들처럼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에서 나에 대한 나의 사랑도
추위에 떠는 것들이었으리라, 보잘 것 없이 깜박거리는
움푹 패인 눈으로 잿빛으로 물들인 밤에는 쓸쓸한 거리의
뒷골목에서 운명을 잡아줄 것 같은 불빛에 잠시 젖어
있기도 했을 것이라네, 그러나 그렇게 믿는 것들은
제게도 뜻이 있어 희미하게 다시 사라져 가고
청춘의 우듬지를 흔드는 슬픈 잠 속에서는
서로에게 돌아가지 않는 사랑 때문에
밤새도록 창문도 덜컹거리고 있으리라
박주택(朴柱澤)의 시세계 /
불협화음의 미의식과 열반의 정적
문학평론가 홍용희(洪容憙)
신화적 미분성과 격정의 파토스
박주택 시 세계의 원적은 신화적 미분성이다. 인간과 자연, 주체와 대상간의 위계서열적인 문명의 질서가 열리기 이전의 전일적인 신화적 상상력이 그의 시세계의 출발이며 궁극적인 종착으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편들은 잠시도 일상의 현실원칙에 적응하고 안주하지 못한다. 그의 시세계의 음조는 대체로 실낙원의 상처와 현실과의 불화로 인한 불안, 우울, 방황, 격정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다. 그래서 그의 시적 체온은 늘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열은 그의 서로 다른 계열의 시적 질료들까지 용해시켜 한 자리에 수평적으로 병치, 배열, 응축시킨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에는 세속과 신성,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 현재와 과거 등이 동시적으로 엇섞이어 서로 몸바꿈을 하며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그의 시적 양상은 세계의 존재성에 대해 가시적인 영역뿐만이 아니라 가시적인 영역을 생성, 규정, 반사하는 비가시적 심연의 무한까지 동시적이고 입체적으로 묘파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의 시적 방법론에 해당하기도 하는 이러한 다성적인 동시성과 입체성은 우리 시사의 주류를 이루는 단정하고 단일한 서정의 정제미와는 뚜렷한 거리를 둔다. 그의 시 세계가 한편으로 매우 깊고 신비한 울림을 주면서도 비교적 낯설고 난해하면서 달뜬 모습으로 다가오는 주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꿈, 방랑, 별, 잠의 숲
그의 시세계의 이와 같은 존재론적 특성은 4권의 시집 『꿈의 이동건축』(1991),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1996),『사막의 별 아래에서』(1999),『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2004)등에 걸쳐 일관되게 관류하고 있다. 이점은 시집 제목에서도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꿈/방랑/별/잠” 등의 어사에서 볼 수 있듯, 공통적으로 현실원칙의 지배질서가 비교적 이완된 밤의 시각과 몽상의 공간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첫 시집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신화적 상상력의 활력이 전면에 분출되었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집에서는 신화적 원시성의 역동이 침잠하면서 각각 세속 도시에 대한 배회와 “존재하는 것들의 사이”(『사막의 별 아래에서』<자서>)의 안과 밖의 풍경을 헤집고 있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물론 여기에서 배회란 일상성의 주변을 맴도는 허랑한 걷기가 아니라 현실세계의 견고한 질서체계를 태연함을 과시하는 몸짓으로 외면하고 부정하는 “아픈 휴식”이다. 한편, 네 번째 시집은 “생애의 지도”가 자연의 이미지와 깊숙이 어우러지면서 활달한 신화적 상상력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그의 시 세계는 비교적 근자에 오면서 오히려 첫 시집의 신화적 역동성과 한층 가까워지는 면모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독특한 시적 개성은 1986년 데뷔작 「꿈의 이동 건축」에서부터 이미 분명하게 전언되고 있다.
뽑힌 노을은 東쪽 하늘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창포 꽃잎이 티눈처럼 손바닥에 퍼지고
귀에 잡힌 푸른 공기, 푸른 목숨이 서럽게 느낄 무렵
가슴 속 얽혀있는 내 生涯를 점치리라.
별을 보며, 넓적다리에 진득거리는 절망을 떼어다오.
어제처럼 노을 위에 누울 때
까마귀 떼 내 발밑으로 돌아와 눕고
무릎 사이로 말할 수 없이 많은 강물이 빠져나가 시
방,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랑 앞에 서면 반딧불보다 더 빛
나는 나뭇잎들, 산이 되는 바람에 의해 숲을 건너온 강
물은 팽팽한 슬픔을 만드는데
나는, 흡반으로 길고 먼 바다를 빨아들인다.
-「꿈의 이동건축」일부
8연의 장대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시편의 시상의 흐름은 장엄하면서도 분주하고 유려하다. 그것은 제목에서도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정태적인 건축물까지도 동적인 이동의 대상으로 치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박과 이동, 고정과 변화의 이항대립적 변별이 완전히 무화되어 있다. 시인이 “식물들, 그들은 한 마리의 물고기로 헤엄쳐 왔다.”(「아침나무 그림자가 나의 오른손 부위를 지날 무렵」)라고 어느 시편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코스모스의 분별과 계열화이전의 카오스적인 신화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위의 시편에서 시적 화자와 자연은 일원론적인 연속성, 순환성, 관계성의 그물망 속에 놓인다. 시적 화자가 자연스럽게 “푸른 공기”의 느낌에서 자신의 운명을 읽고 있고,(“내 生涯를 점치리라”) “흡반으로 길고 먼 바다를 빨아”들이기도 한다. 또한 자연과 자연의 관계 역시 이와 동일하여서 “바람”이 “산”으로 몸바꿈을 하는 장관을 펼쳐내고 있다.
이러한 신화적 상상력은 궁극적으로 시적 대상의 존재성을 우주적 근원 동일성 속에서 지각하고 감각화하는 견성의 자세와 연관된다. 박주택의 시 세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사물의 외양에 대한 관찰이 돌연 사물의 존재의 뿌리와 근원의 아픔에 대한 직시와 그 주변의 시공의 어우러짐을 파지해 나가는 점은 바로 이와 같은 근원적이고 전일적인 견성의 시적 인식과 방법론에 해당한다.
비선형적인 다시점의 입체적 양식
그의 시 창작의 방법론에 대한 좀 더 실감 있는 이해를 위해 잠시 시차를 건너뛰어 최근의 시 한편을 읽어 보기로 하자.
하늘은 푸르고 제비꽃이 왕릉 잔디에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뿌리들은 어느 마음의 끝 땅 속에 내려
이토록 질긴 목숨으로 얽혀 있을까
바람이 지나가면 그 흔들림만큼 흙 속을 엉켜드는
목숨들 두 번의 생이 있다면 아름다움이 다투어 묶이는
창문에 나가 동터오는 집의 입구를 바라볼 것이다
어머니 자욱히 뿌리를 뻗어 풍경들을 바라보신다
꽃과 나무 사이 긁힌 정적의 모퉁이를 도는
아버지 그림자 바라보신다
- 「헌인릉 가서」일부
“헌인릉”의 풍경에 대한 소묘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심미적 구도의 통일성 속에 배열된 풍경화가 아니라 소실점이 흩뿌려져 있는 입체화이다. 왕릉 주변의 푸른 하늘과 무리지어 피어있는 제비꽃의 경관을 묘사하던 시인은 돌연 “어느 마음의 끝 땅 속에 내”린 뿌리들의 얽힘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목숨”과 “생”의 이면과 그 속성에 대한 지각을 파생시킨다. 이러한 시적 묘사는 이를테면, 관찰하는 풍경이 아니라 “뿌리를 뻗어” 통찰하는 풍경이다. 그래서 시적 대상에 대한 감지 역시 시각뿐만이 아니라 온몸의 통감각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 그림자의 배경에 대해 “꽃과 나무 사이 긁힌 정적의 모퉁이”란 표현에는 주관적 대상화가 아니라 몸성의 감득의 어감이 배어 있다. “꽃과 나무 사이 긁힌” 모습의 묘사가 감각적 심상의 산물이라면 “정적의 모퉁이”란 몸성으로 느끼는 정서적 반영물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비선형적인 다시점의 입체화에 해당하는 창작 방법론은 박주택 시세계의 중심지대를 관류하는 존재원리로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러한 시적 방법론을 좀 더 상술하면 신화적 미분성의 시적 원형성이 다시점의 입체적 양식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으로 정리된다.
치열한 생의 욕망과 열반의 정적
그렇다면, 그가 신화적 미분성 혹은 다성적인 구상화의 방법론을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시적 지향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적 방법론에서 이미 암시되고 있는 것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위계서열에 대한 부정과 함께 내밀한 연속, 합일, 통합의 생명적 본능과 충동에 대한 열망으로 정리된다. 박주택에게 현실계의 이성적, 합리적 가치의 위계서열화는 사물의 다채로운 차이의 소멸에 바탕을 둔 비동일성의 동일화의 억압기제로 인식된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는 “주체할 수 없는 억압의 도도함”(「벽」,『꿈의 이동건축』)에 대한 피해의식과 「악신의 계절」혹은「악령의 도시」(『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와의 지난한 불협화음의 기록물이며 동시에 그로부터 출발하는 간절한 신생의 욕망이다. “너와 나는 금지의 팻말이 붙어 있는/ 이 구역에 들어와 있다”(「모반의 사랑 1」,『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는 감금과 닫힘의 인식이 팽창할수록 그의 생의 충동은 무한 극단으로 솟구치게 된다.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일부
“삶을 열고자 할 때”, 지금 이곳에서는 흐르는 “물”마저도 “붙잡혀” 감금되고 응고되고 경직되고 있음을 새삼 발견한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낸다. 이때 “새”의 지저귐이란 감금으로부터 해방의 숨통을 향한 시적 화자의 응축된 삶의 절규와 몸부림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물”마저 “붙잡혀 있는” 감금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 앞에 시적 화자는 “다시 잠에” 든다. 잠은 그를 신화적 무한의 세계로 인도한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린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질주하는 말의 가속도는 생의 욕망의 열도를 가리킨다.
이때 생의 욕망의 극단은 역설적으로 죽음이다.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 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는 지경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적만”이 존재하는, 절대 무(無)의 세계에 이를 때, 감금과 속박의 현실계로부터의 완전한 초탈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적”이란 탈속의 열반을 가리킨다. 열반의 경지는 현실계의 외적 억압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기 검열, 통제, 번민으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난 자유자재의 지대를 가리킨다. 실제로 박주택 시세계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열반의 “정적”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시적 어조의 전반을 물들이고 있는 불안, 우울, 방황, 격정의 파토스는 그 자체로 절대 무의 “정적”을 향한 역동적인 에너지로서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열반의 정적은 어떤 단절, 고립, 불연속으로부터도 자재로운 영역이란 점에서 그의 시적 원형성을 이루는 신화적 미분성과 직접 상통한다.
한편, 이와 같은 원초적인 “정적” 혹은 죽음 충동은 역설적으로 현실원칙의 다채롭고 내밀한 억압상과 불온성을 극명하게 반사시키는 역할을 감당한다. 이점은 우리 시사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의미부여 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적 사항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시 세계는 주제론적인 층위에서 리얼리즘적 저항의 담론을 구사하지 않고 있지만, 누구보다 우리의 주변 일상에 산재하는 미시적 권력으로부터의 억압상을 내밀하게 추적하여 충격하고 있으며, 생태적 담론을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누구보다 극명하게 반생명적인 요소에 질식하는 인간과 사물의 고통을 정서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그의 시적 언술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사물화로 치닫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주제론적 전언이 아니라 화법과 소재 및 형식 충동을 통해 우리의 삶의 일상을 살아 있는 그대로 민감하게 포착하고 정서적 파문으로 충격하는 미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은 우리 시의 미학적 지평을 새롭게 확장하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환기시킨다.
홍용희(洪容憙)
1967년생.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 박사 졸업
저서, 평론집 『꽃과 어둠의 산조』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학술서 『김지하(金芝河)문학연구』등
현재, 경희 사이버 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한국의 <소월시(素月詩)문학상>
시인, 번역가 한성례(韓成禮)
2006년도 <소월시문학상> 수상식이 2005년 11월 1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금년도 제2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大賞)은 박주택 시인이 수상했다.
소설문학상인 제29회 <이상문학상>도 함께 수여되는데, 둘 다 (주)문학사상사에서 주관한다.
한국에서 가장 권위와 전통이 있는 대표적 시문학상은 <소월시문학상> 외에도 <현대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이 있다.
이 상의 상금은 약 150만 엔. 다른 시문학상은 이 보다 월등히 많은 상도 여럿 있는데, <미당문학상> 같은 경우는 약400만 엔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실은 수상자들의 이 상금은 수상 턱을 내는데 대부분 쓰인다. 수상식 날, 수상식이 끝나면 수십 명의 문인들이 2차, 3차 자리를 옮겨가며 수상자와 함께 밤새워 마시고 얘기하며 즐긴다.
나는 상금을 받기도 전에 수상자가 발표되자마자 벌써부터 박주택시인에게서 거나하게 얻어 마셨다. 그의 시세계의 해설을 썼으며 박시인의 친구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홍용희 교수와 함께였다.
많은 문학인을 배출한 경희대학교의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주택 시인의 시는 “모색과 사유가 깊고, 생의 의미를 탐색하는 철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심사위원들의 평이었다.
나는 일본 최고의 시문학상인
그러다 보니 시학사에 자주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인연으로
기회를 봐서 다른 시문학상도 소개해나갈 계획이다.
한성례(韓成禮)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세종대학교 일어일문과 졸업
1986년 ‘시와 의식’ 신인상 수상. 1994년 ‘허난설헌 문학상’ 수상
시집으로는 『실험실의 미인』, 일본어 시집 『감색치마폭의 하늘은』등
번역서로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1.2.3권)
『은하철도의 밤』『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을』 『1리터의 눈물』등 다수
일본현대시인 시 선집 시리즈『일곱개의 밤의 메모』,『나를 조율한다』,
『잠자는 거리 혹은 가라앉는 지층』. 아시아 시선집 시리즈 『비명』
일본어 시집 『안도현 시 선집』『최영미 시 선집』(도쿄 세이주 사 출간) ,
고형렬 시인의 『리틀보이』(도쿄 COAL SACK 사),
안도현 에세이집『외롭고 작고 쓸쓸한』(후쿠오카 칸칸보 사) 등
기획번역서 『푸른 그리움』(한일 전후세대 100인 시 선집, 1995년)과
‘21세기 한일 신예시인 100인 시 선집’『새로운 바람』(한일 신예시인 100인 시 선집, 2001년)을
한일 양국어로 번역, 동시 출간
출처, 일본에 소개된 내용,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