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시모음
1952년 충남 연기
수도여고와 고려대 독문과
계간 『문학과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시선집, 『주변인의 초상』 등을 상자했다. 그 밖에 번역 시집 『죽음의 엘레지』
역서,『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 『자살 연구』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니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Y를 위하여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 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그릇 똥값
노량진 어느 거리 그릇 세일 가게
쇼윈도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그릇 똥값"
순간 충격적으로, 황금색으로
활짝 피어나는 그림 하나.
신성한 밥그릇 안에 소중하게 담겨 있는
김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똥 무더기 하나,
아니 쇼윈도 안 모든 그릇들 안에 담겨
폴폴 향기로운 김을 피워 올리는 똥덩어리들.
그 황금색의 환한 충격.
입과 항문이 한 코드로 연결되듯
밥과 똥이 한 에너지의 다른 형태들이니,
밥그릇에 똥을 퍼담은들,
밥그릇에 똥을 눈들 어떠랴,
산다는 것은 결국 싼다는 것인데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