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최승자 시모음

휘수 Hwisu 2007. 10. 15. 12:39

1952년 충남 연기

 수도여고와 고려대 독문과

계간 『문학과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시선집, 『주변인의 초상』 등을 상자했다. 그 밖에 번역 시집 『죽음의 엘레지』

역서,『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 『자살 연구』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니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Y를 위하여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 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그릇 똥값


노량진 어느 거리 그릇 세일 가게

쇼윈도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그릇 똥값"


순간 충격적으로, 황금색으로

활짝 피어나는 그림 하나.

신성한 밥그릇 안에 소중하게 담겨 있는

김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똥 무더기 하나,

아니 쇼윈도 안 모든 그릇들 안에 담겨

폴폴 향기로운 김을 피워 올리는 똥덩어리들.

그 황금색의 환한 충격.

입과 항문이 한 코드로 연결되듯

밥과 똥이 한 에너지의 다른 형태들이니,

밥그릇에 똥을 퍼담은들,

밥그릇에 똥을 눈들 어떠랴,

산다는 것은 결국 싼다는 것인데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