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천양희 시모음 1

휘수 Hwisu 2006. 7. 26. 10:14

1942년 부산 출생, 1965년 박두진 추천 시 ‘정원(庭園) 한때’로

‘현대문학’등단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

1983년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으로 작품활동 재개,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너무 많은 입」등이 있고,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등을 출간했다.
1996년 소월시문학상을, 1998년 현대문학상 2005년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비 오는 날


잠실 롯데백화점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괴테를 생각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그토록 사랑한 롯데가

백화점이 되어 있다.

그 백화점에서 바겐세일하는 실크옷 한벌을 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의 승용차 소나타Ⅲ를 타면서

문득 베토벤을 생각한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3악장을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소나타가

자동차가 되어 있다.

그 자동차로 강변을 달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은 여자

고흐의 그림 '슬픔'을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슬픔'이

어느새 내 슬픔이 되어 있다

그 슬픔으로 하루를 견뎠다

비가 오고 있었다.....


흐린 날

 

 생각이 먼저 기슭에 닿는다. 강 한쪽이 어깨를 들어올린다. 下
端이 저 아랜가. 문득 갈대숲에서 물떼새들이 달려나온다. 여름
이 가는군. 나보다 먼저 바다로 든 길이 중얼거린다. 언제 내가
길 하나 가졌던가. 물줄기를 한참 당기면 마음에 들어와 걸리는
수평선. 세상이 평등하기를 저것이 말해준다. 이런 날은 물가에
오래 앉을 수 있겠다. 물에도 길이 있다고 하였으나 물방개, 소
금쟁이, 물잠자리들, 물이 좋아 물 먹고 산다는 것일까. 나는 꿈
속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물고기들을 보았다. 물의 세계란 그런
것일까. 물까지도 한 잔의 물 속에선 흐르지 않는다. 나는 또 자
주 쓴풀 몇 포기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 산다는 건 자주 쓴맛을
보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

내 몸을 쳐 시를 쓰나

 

시집 <너무 많은 입> 2005년 창비

 

 

 


“누구에게나 고통이나 상처가 있다. 나도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고통이 나를 키워냈다. 고통을 견디고 이겨나가면서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됐다. 고통은 나의 선생이었다. 삶이란 돌에 맞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는 것이다. 돌에 맞아도 주저앉지않고 그래 날아와라, 나도 던지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복수가 아니라 극복이다. 그러면 눈물도 힘이 되고,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물론 나에게 시가 가장 큰 힘이 됐다.”

 


 천양희(63) 시인은 높이를 싫어한다. 그에게 높이는 곧 교만이다. 겨우 1m도 버겁다. “책상에 앉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아요. 높은 데 앉으면 평상심이 안 생기죠. 마음이 낮게 안가고 교만해지는 느낌이 들어서예요.”

 

 1988년 이래 그는 책상을 버렸다. 교잣상에서 시를 써온 게 18년째다. 절친한 친구의 모친이 보내준 교잣상. 1965년 ‘현대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첫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을 낸 것이 83년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시집 없는 시인이었다. 교잣상은 두번 째 시집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를 출간한 직후,집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올 봄에 낸 여섯번째 시집 ‘너무 많은 입’을 포함,네 권의 시집이 교잣상 위에서 씌여졌다. 앉은뱅이 교잣상은 하심(下心)의 처소다.

 천양희 시인은 3년전 ‘말이 뛰어놀던 들판’이라는 뜻의 마들평야에 이끌려 서울 상계동 13단지로 이사를 왔다. 전에 살던 상일동 인근에도 야산이 있었지만 지금의 자택에서도 수락산이 멀지 않다. “이사를 무척 많이 다녔어요. 유전인생인 것이죠. 하지만 언제나 나무가 우거진 변두리였어요. 한동안 수락산을 올랐는데 요즘은 좀더 한적한 강남의 청계산에 가지요.”

 

상일동에 살 때나 지금이나 그의 말(馬)은 예외없이 전철이다. 전철에서 시상이 떠오르면 그는 체면 불구하고 메모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다. 그는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우뚝 서서 메모장을 꺼낸다. “무슨 생각이 팍 떠오르면 생각이 떠날까봐 딱 멈춰 서 있는데,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가지를 못하니 짜증을 내지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에 잊어버리기도 해요. 한번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올라탈 차례가 되었어요. 뒤에 사람들이 서 있고 내가 타야 하는데 시상이 떠올랐지요. 연기처럼 날려보내기 보다는 눈총을 받는 게 차라리 낫지 싶어,버티고 서 있다가 겨우 한 줄을 건졌어요. 시쓰기는 괴로운 기쁨이죠. 좋은 시는 어떤 권력에도,명예에도,그리고 사랑에도 비할 수 없어요. 사랑도 사람을 살리는가 하면 죽이니까요. 시는 내가 운명을 바치면 나를 좀 봐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메모한 노트가 지금은 수십 권이다. 그는 메모된 시상을 교잣상에 펼쳐놓고 생각을 공굴린다. 그러다 시 한 편이 될 것 같으면 손부터 깨끗히 씻는다. “습관이지요. 늘 원고지 위에 손으로 글을 쓰니까. 글쓰기의 경건함이랄까. 마음끝에서 손끝으로 글이 오니까 손을 깨끗이 할밖에요.”

 

 수락산에 올랐다가 쓴 시가 ‘너무 많은 입’이다. “재잘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재잘댄다 잎들이 많고 입들이 너무 많다/(중략)그런데 어쩌면 좋담/쉰살이 되어도 나의 입은 문득 사라지지 않고 목쉰 나팔이 되어버렸다/어쩌면 좋담?”

 

시인은 다릅나무의 촘촘한 잎사귀가 바람에 떨리는 모습에서 헛소리나 재잘거리는 요즘 사람들의 가벼운 입을 보았던 것이다. 다릅나무는 교잣상에서 재잘나무로 변주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제 살아있다고 아우성치는 잎사귀보다 수평으로 놓인 교잣상의 침묵이 시인은 더욱 미덥다.

 

 근자에 쓴 시 가운데 그가 아끼는 작품이 ‘뒤편’이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저 소리 뒤편에는/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저 모습 뒤편에는/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시청앞을 걷다가 인근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곱추’가 떠올랐고 “종을 울리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상념으로 이어졌다. 이어 명동의 한 백화점을 지나다 앞 모습의 맵시를 위해 등에 수많은 시침을 꼿고 서 있는 마네킹을 보았다. 종소리와 마네킹을 하나의 시상으로 합체한 곳이 또한 교잣상이다. “교잣상 앞에 앉았으나 시가 씌여지지 않으면 베란다로 나가요. 오래된 풍경이 걸려 있지요. 풍경은 바람이 불면 뎅겅뎅겅 울지만 바람이 없으면 울지 않지요. 시가 안써질 때 손으로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를 건드려 봅니다. 내가 먼저 울지 않으면 시가 써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에게 교잣상은 눈물에 젖은 원고지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