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짧은 여름밤을 끄다 / 강미정
휘수 Hwisu
2007. 7. 3. 08:05
1994년 <시문학> 등단
1996년 시집 < 타오르는 생 > 도서출판 빛남
2001년 시집 <물 속 마을> 도서출판 전망
2003년 시집 <상처가 스민다는 것> 천년의 시작
짧은 여름밤을 끄다 / 강미정
가로등 불빛 아래 들깨밭
숭숭 뚫린 깻잎 구멍을 불빛이 막아주고 있다
깻잎이 바람에 흔들리자 불빛은
놀라 펄쩍뛰며 허기의 구멍을 보여준다
허겁지겁 주워먹은 배고픔이
숭숭 뚫어놓은 구멍,
저 배고픈 구멍 속에서 나도
절망을 벼리며
내 문장의 푸른 문맥 위에
핏발 선 붉은 눈을 얹고
슬피 울고 싶었던 날이 있었던 것처럼,
너를 던져보고 싶었던 날이 있었니? 있었니?
짧은 여름밤을 다 갉아먹고 나방이 날아오른다
생의 진창을 튀기며 불빛에 몸을 던지는
나방은 푸른 배고픔을 깻잎 뒤에 슬어놓았다
아직 뚫리지 않은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저 푸르고 줄기찬 문장을 숭숭숭 뚫는
절망도 모르는 우멍한 구멍,
서글퍼라 이 놈의 세상 온통 구멍뿐이네,
들깨밭을 바라보던 아낙이 가로등을 끈다
저 많은 구멍을 막아주고 있던
불빛이 툭, 발길에 채여 넘어진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