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오독(誤讀) / 홍일표
길가에 쪼그려 앉은 허리 접힌 노파,
옆을 지나다 팔고 있는 물건을 힐끔 바라본다
가물치, 가물치 새끼다
순간, 길이 꿈틀 한다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가서 본다
플라스틱 바구니엔 쪼그라든 가지 몇 개,
길가의 코스모스가
살랑살랑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가지와 가물치 사이를 오가는 동안
길은 저만치 흘러가고,
나는 사라진 가물치를 찾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 가지가 가물치로,
가물치가 가지로, 그렇게 전생과 후생을 다 살았다
산위에 걸터앉은 해는
취한
눈으로 이승 너머를 기웃거리고,
나는 어느새 개망초 위를 날아가는 한 마리 잠자리였다
<문학사상> 2006년 4월호
이달의 문제작(『문학사상』, 2006년 5월호)
경계를 지우는 인식과 감각
유성호(문학평론가/한국교원대 교수)
홍일표 시인의 시편은 거리에서 바라본 경계 해체의 순간을 담고 있다. 시인은 길가에 쪼그려 앉은 한 노파가 “가물치, 가물치 새끼”를 팔고 있는 것을 “힐끔 바라본다”. 무심히 가던 길이었는데 그 “가물치 새끼”의 풍경이 시인에게 “순간, 길이 꿈틀”하는 경험을 준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걸음을 멈추고 가가이 가서 본다”. 힐끔 돌아본 데 불과했던 무심한 풍경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다가가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플라스틱 바구니”에 놓여있는 것은 가물치 새끼가 아니라 “쪼그라든 가지 몇 개”가 아닌가. 결국 마른 가지를 “가물치”로 착각한 오독의 순간이었던 셈이다.
그 때 시인은 “가지와 가물치 사이를 오가는 동안”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라진 가물치를 찾는다”. 사라진 가물치를 찾는 그 장면이 공간적으로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오히려 시인은 “눈 깜짝할 사이 가지가 가물치로,/ 가물치가 가지로, 그렇게 전생과 후생을 다 살았다”는 경험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오독을 통해 시간 속의 오랜 유영(遊泳)을 경험하고 있는 시인은 그래서 자신을 “개망초 위를 날아가는 한 마리 잠자리”로 표현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가지’를 ‘가물치’로 오독하면서 생겨난 경험 곧 전생과 후생의 동시 경험을 ‘눈 깜작할 사이’에 상상적으로 치러낸 시적 전회의 순간을 담고 있다. 결국 홍일표 시인은 이러한 상상적 유영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궁극적인 시적 원리로 유도하고 있는데, 그 시적 원리는 풍부한 오독의 가능성 속에 담겨 있는 발견의 맥락을 강조하는 데서 찾아진다. 시는 그 점에서 유일무이한 정독(精讀)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풍부하게 읽음으로써 생의 형식을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는 오독 가능한 매개가 되는 것이다.
홍일표 시인
1958년생
1988년 심상신인상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안개, 그 사랑법> <순환선> <혼자 가는 길>,
산문집 <죽사발 웃음 밥사발 눈물>,
민담집 <산을 잡아 오너라>
<닭을 빌려타고 가지> 등 다수
시교양지 <시로 여는 세상> 편집장으로
재임
출처, 네블,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