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주먹만한 구멍 한 개 / 이영옥

휘수 Hwisu 2007. 12. 14. 12:18

1960년 경북 경주

제 5회 동서커피문학상 시 부문 금상 수상
제 22회 근로자예술제 문학부문 대상 수상

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방송대 문학상 시 당선
2004년 계간지<시작> 신인상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원 소설창작과 수료
한국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사라진 입들>2007 천년의시작

 

주먹만한 구멍 한 개 / 이영옥

 

겨울바람은

아버지 자전거의 녹슨 귀를 때렸다

강 옆구리에는

마른버짐이 허옇게 번져나가고

갈대에 감겨 있던 햇살이

연실처럼 풀려 나갈 때

아버지는 강바닥을 망치로 두드렸다

세상의 두께는 늘 이렇게 단단하지

얼음판은 금조차 쉽게 가지 않았고

한 떼의 쇠기러기들만 줄지어 날아갔다

겨우 주먹만한 숨통을 만든 아버지는

축축한 어둠을 엉덩이에 깔고 앉아

무료한 생애가 지나가길 기다렸고

나는 아버지 등 뒤에 쌓인

세월의 두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루해진 나는 나무토막을 주워 불을 피웠다

그때 튀어오르던 불꽃은

아버지 삶의 마디 부분이었을까

불은 이내 꺼져 버렸고

불 꺼진 자리만 검은 얼룩으로 드러누웠다

아버지가 뚫어 놓은 구멍은

헛것만 낚아 올리다가 결국 무너졌고

주먹만한 구멍 한 개는

혼자 남겨지는 일처럼

마침내 내 마음 속에 커다랗게 입 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