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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팔리는 책]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출판인의 고민) 펌

휘수 Hwisu 2006. 2. 24. 10:41
좋은 책과 팔리는 책]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출판인의 고민)

'출판인은 누구나 좋은 책을 내고 싶어 한다.' 이 명언은 사실일까? '출판인은 누구나 많이 읽히는(잘 팔리는) 책을 내고 싶어 한다' 이 명언도 사실일까? 그렇다면 '좋은 책은 항상 많이 읽힌다(잘 팔린다)'라는 말이 성립할까? 유감스럽게도 위 두 가지 명언은 사실일 수 있지만 세 번째 말은 성립하기 힘들다. 출판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비평가)로부터 좋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어도 초판(2천부 혹은 3천부)을 다 소화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또 설사 2쇄 이상 찍더라도 1만 부 넘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은 주관적일 수 있어서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전환시대의 논리>나 <분단체제의 역사인식>,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태백산맥>등과 같이 훌륭한 저작들이 많이 팔린 경우도 있으나, 비평가의 입에서만 극찬을 받은 뒤 독자들은 철저히 외면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이 출판계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문화수준, 그것도 인문학의 유지(발전이 아니라)를 위해 양서를 발간해 왔던 출판사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살아 남아 있는 그 모습을 보자면 가히 경탄스럽기 그지없다.(물론 문학작품의 선전에 힘입은 바가 크긴 하지만)

'살아 남아 있는', 이제는 중견출판사들이 된 여러 출판사들 말고도 얼마나 많은 출판사들이 당대의 고민을, 당대의 화두를, 당대의 학문적 성과를 활자화하여 세상에 알리고자 애쓰다가 스러져 갔을까. 아마도 단언컨대 '읽히는 책'보다는 '좋은 책'을 내고자 애썼던 상당수 선배 출판인들이 '좁은 길'을 가다가 그만 지치고 쓰러지는 일이 많았으리라고 본다.

적당히 독자의 구미나 취향을 좇아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선정적인 표현으로라도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살아 남지 않겠느냐는 절박한 현실의 유혹 앞에서 그 분들이 겪었을 고뇌와 번민들이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인문 사회 분야의 작금의 출판 현실은 절대 인구의 증가에 따른 시장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실용 처세 및 수험 학습관계 서적들에 비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살아 남기 위해 일제히 방향들을 선회하는 형편이 아닌가? 나 또한 그런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배들이 선택했던 그 고통스러운 '좁은 길'을 피해 '넓은 길'로 가고 싶은 유혹으로부터…때때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는 그럴듯한 기치를 내걸고는 실제 마음은 콩밭에만 가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 두려운 일은 '습'(習)이란 것이 무서워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러한 일에 익숙해지면서 갈수록 태연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홍승권

출처:크리스챤 뉴스위크 Book Life/발췌정리/신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