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제6회 노작문학상 수상작 / 김신용

휘수 Hwisu 2006. 12. 15. 19:29

제6회 노작문학상 수상작 중에서

 

도장골 시편

 

-부빈다는 것

 

안개가

나뭇잎에 몸을 부빈다

몸을 부빌 때마다 나뭇잎에는 물방울들이 맺힌다

맺힌 물방울들은 후두둑 후둑 제 무게에 겨운 비 듣는 소리를 낸다

안개는, 자신이 지운 모든 것들에게 그렇게 스며들어

물방울을 맺히게 하고, 맺힌 물방울들은

이슬처럼, 나뭇잎들의 얼굴을 맑게 씻어 준다

안개와

나뭇잎이 연주하는, 그 물방울들의 화음(和音).

강아지가

제 어미의 털 속에 얼굴을 부비듯

무게가

무게에게 몸 포개는, 그 불가항력의

표면 장력,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힐 때마다, 제 몸 풀어 자신을 지우는

안개.

그 안개의 입자(粒子)들

 

부빈다는것

 

이렇게 무게가 무게에게 짐 지우지 않는 것

 

나무의 그늘이 나무에게 등 기대지 않듯이

 

그 그늘이 그림자들을 쉬게 하듯이

 

눈부처

 

-佛家에서는 눈동자에 비쳐진 얼굴을 눈부처라고 한다.

 

그대 눈 속에 들어 있는 얼굴 하나
깊은 동굴 같은 얼굴 하나
슬픔이 석순(石筍)처럼 맺혀 자라나고 있는
그 돌고드름에 매달려 눈물처럼 그렁이고 있는 얼굴 하나
젖은 나뭇잎 같은 그 위조지폐를, 지갑 속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는
지갑 속의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어
마치 강철로 만든 잎처럼, 아무리 바람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얼굴 하나
하고 싶은 말들은 그 눈 속에 울타리처럼 두르고
너와집이라도 지어 살게 하고 싶은 것일까?
돌고드름에 맺힌 눈물을 삽처럼 쥐어주며
더 깊은 동굴을 파게 하고 싶은 듯, 눈꺼풀을 깜박이는 눈 속의 얼굴 하나
그 태초의 빛인 듯, 손에 쥔 삽으로
그대 눈 속에 어두운 동혈(洞穴)을 경작하고 있는, 그 위조지폐로 사는 건 슬픔뿐이지만
맺힌 돌고드름의 삽질로, 파헤쳐진 그대 가슴 속을 방으로 꾸며주고 있는
눈이여, 그 동그란 눈동자 속의 영어(囹圄)여.
한 줄기 슬픔에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눈사람 같은
땀방울들, 맺히고 맺혀 이제 가시 기둥 같은 돌고드름이 되어 매달려 있어도
그대 눈 속에 담겨 비로소 얼굴이 되는 얼굴 하나
그대 눈 속에 비쳐져 비로소 세계가 되는 얼굴 하나

 

재봉틀


풀밭 위에 재봉틀 한 대가 놓여 있다
365일 수의를 짓느라 낡아지고 칠 벗겨진 재봉틀
순한 눈망울의 맹인 안내견처럼 풀밭에 앉아 있다
그 푸른 지팡이에 이끌려온 내 만혼(晩婚)의 날들
된장독 이불 보따리 같은 가재 도구들의 곁에 부려놓고
신호등 앞에서 앞발을 모으고 있는 것처럼 앉아 있다
저 신호등의 색깔이 푸른 제비꽃으로 바뀌면
또 어디로 가나? 눈 깜박이는 나비 한 마리
재봉틀 위에 날아와 앉아, 낮선 길을 눈새김 하듯 날개를 접는다 풀로 만들어진 수의
풀의 실을 뽑아 지어진 옷을
매일 하루 하루에게 입히며, 그대 위해 옷 한 벌 지어본 적 없는
품삯, 풀에서 뽑아낸 실로 지어
풀처럼 깨끗이 삭아 갈, 또 하루를 꿈꾸는지
나비가 팔랑 나래를 펴고 울타리를 넘어 날아간다
풀의
옷은, 풀잎이듯
태우면 고운 재의 입자(粒子)만 남는, 눈길 거두고
몸 일으킨 맹인안내견, 목줄 내밀어 새로 이삿짐을 푼 집의 방으로
다시, 나를 데려갈 것이다
풀밭 위에
놓여있는 재봉틀 한 대,
황혼을 이끌고 온 해거름의 일꾼처럼, 순한 눈망울을 껌벅이며
마당 가에
앉아 있는, 내 만혼晩婚의
텃밭,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 14세의 나이에 부랑을 시작했다.

지하도나 대합실에서 노숙하며 매혈로 끼니를 해결했다.

더 팔 피가 없으면 걸식, 꼬지꾼, 하꼬치기, 저녁털이, 뒷밀이,

아리랑치기, 급기야 펠라티오 아리랑치기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소년원을 시작으로 해서, 감방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쯤으로 여기며 드나들었으며

재생원, 갱생원 등을 두루 섭렵하는 동안 별을 5개 달았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 읽어치운 독서량은 우리 교도소 문화를

비추어볼 때 가히 기적에 가까우리만큼 방대하고 놀라운 것이다.

그는 1988년 당시 무크지였던 『현대시사상』 1집에

「陽洞詩篇」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나이 사십이 넘어

시단에 등단.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을 내며

시단에 일대 충격을 주었으나, 출판사와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출간 두 달 만에 절판되는 곡절을 겪고,

재출간 되어(천년의시작) 호평을 받았다.

이어 두 번째 시집 『개 같은 날들의 기록』(세계사),

세 번째 시집 『몽유 속을 걷다』(실천문학사)

환상통』2005년 (천년의시작)

소설 '고백'(94년) '기계 앵무새'(97년) 

'기계 앵무새'(97년)  미당문학상 후보작 '환상통' 외 17편

제 6회 노작문학상 수상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