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정끝별 시모음 2

휘수 Hwisu 2006. 12. 14. 02:50

전남 나주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와 동대학원 

1988년 <문학사상>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시론집, <패러디 시학>

평론집,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시선평론집 <행복>

산문집, <여운>

 

지루한 누수(漏水)


마음 원했던 길

예나 지금이나 몸 따르지 못해
깊은 구멍
뱅그르 빠지는 나뭇잎
나 거기 사네

문 밖 지친 몸
아홉 구멍마다
손자욱 선명한 누수(漏水)소리
찌르 찌르 찌르르

누가 알았을까
술김에나 화해하고
마음 밖 몸 엿보며
거울처럼 서로 가여워할 줄

몸 밖 마음이 엿보는
굶주린 폐허

한 줌 흙으로 메울 수 있다면


옹관(甕棺) 1


모든 길은 항아리를 추억한다
해묵은 항아리에 세상 한 짐 풀면
해가 뜨고 별 흐르고 비가 내리는 동안
흙이 되고 길이 되고
얼마간 뜨거운 꽃잎
또 하루처럼 열리고 잠겨
문득 매듭처럼 덫이 될 때
한 몸 딱 들어맞게 숨겨줄
그 항아리가 내 어미였다면,
길은 다시 구부러져 내 몸으로 들어오리라
둥근 길
길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내가 길의 어미가 될 것이니,
내 안에 길이 있다
내가 가득찬 항아리다

 

자작나무 내 인생 
                             
속 싶은 기침을 오래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길래
저리 흰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놓고
뼈만 솟은 저 서릿몸
신경줄까지 드러낸 저 헝큰 마음
언 땅에 비껴 깔리는 그림자 소슬히 세워가며
제 멍을 완성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숯덩이가 된 폐가(肺家) 하나 품고 있다
까치 한 마리 오래오래 맴돌고 있다


 시인의 일식

 

네 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비명처럼 소름처럼
불꽃 튀는 네 아가리 속을
내가 기어들어간다
내 옆구리가 탄다 용광로처럼 활활
내 허리뼈가 네 화수분 속에서 꽃가루가 되고
내 두 무릎이 네 허방 속에서 안개가 된다
한 가닥 속눈썹이
아득한 재로 남을 때까지
내 살들이 무너지면 집인 줄 알라
내 뼈들이 부서지면 농인 줄 알라
네 전부에 내 전부를 밀어넣고
두 전부가 엉겨 몸 부비며 타는
쓸쓸한 소리들
내 백태의 혀가
천길 목젖 네 지옥불 속에서
순하디순한
세상 여명을 끄집어낼 때까지

 
삿대 저어가네


눈먼 나뭇가지 꺾어 저어가네
가지가 물에 잠기면
물살을 가지고 노는 배의 몸
잠기면 나아가고
나아가며 들어올려 미끄러지듯 길을 열고

봄의 배가 힘겹게 몸 가누는 동안
간신히 뻗어 강의 마음을 받쳐드는 저 삿대의 손
봄의 배가 힘겹게 제 몸 견디는 동안
묵은 강의 바닥을 어루만지는 저 삿대의 마음

구르는 강바람에 살끝이 닳아버린 안개는
눈물 자욱 깊은 강기슭에서 웅크려 떨다
강 건너 청미래 덩굴숲을 눈멀게 하고

세월아 네월아 오뉴월을 건너는 눈먼 배야
강 건너 푸른 방 한 칸을 향해 저어가니?
삿대 저어 나를 저어가니?

 

소금호수

 

거꾸로 뿌리를 쳐든 바오밥나무가 웃는다

 

칼라하리사막 언저리의

거대한 보츠와나 소금호수는

일 년 중 열 달이 건기여서

바람이 모래를 쓸어올려 세운

끝없는 신기루들이 아른아른 웃는다

 

보아구렁이가 인간을 삼키면서 웃는다

 

소금호수를 향해 가는 길에는

맨발자국이 바다거북처럼 파여 있곤 한다

온통 소금밭이 씨앗처럼 빨아들였을까

수천 년 전의 바다를 기억하는

바닥이 젖지 않는

온 생의 물기를

소금호수를 나오는 맨발자국이 쭈글쭈글 웃는다

 

기억해보면

반짝이는 소금껍질을 우두둑

우두둑 부수며 달려온 것도 같다

맨발이었다

 

벗어놓은 신발이 웃는다

 

다리는 달리고 있다

 

운동회날부터 나는 달리고 있다
너를 지나
집과 담벼락을 지나
어둔 밤길을 지나
전신을 활처럼 제끼고
두 눈을 감고 가슴을 치며
가로막는 횡단보도를 넘어
달릴수록 에워싸는 빌딩숲을 넘어
내 나이를 넘어 달리고 있다
입술을 깨물며 재앙의,
넘어지는 것보다 처지는 일이 더 무서웠다
허파꽈리에 가득 차는 검은 연기
과거는 넝마 미래를 훔치며
화살보다 빠르게
달린다 내 열망의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난파할 그 순간까지
발바닥이 점점 가슴이 머리가
텅. 텅. 텅.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며
삶이 빠르면 죽음도 발정난 고양이
예기치 못한 골목에서 튕겨 달겨드는

 

저무는 서해에서


서쪽으로 난 세상 비탈에
허물어지는 해의 살빛으로 세운 계단
백만 갈래의 길을 품은 채
백만 골의 이랑을 물들이고

어두워지는 뭍의 풍경을 등에 지고 걷다보면
일렁이는 불길 층층이 젖은 길들이 밟히고
화근의 해가 지면 바다의 주름을 잡아당기자
뭍의 기다림들은 아코디언 소리를 내며 퍼진다

연하디연한 기억 안쪽이 아프게 접힌다
미끈, 발밑이 습곡처럼 주저앉는다
또 내일이면 바다의 계단이 하나 늘어나고
검게 탄 뭍의 길이 하나 떠오를 게다

찌걱이며 빠져나가는 길의 무덤에서
쓸쓸한 서해에서 저 붉은 소멸의 사원에서
소년들은 타오르는 시간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흥건하게 비린 길들을 캐고 있다

 

천생연분 


후라나무 씨는 독을 품고 있다네 살을 썩게 하고 눈을 멀게 한다네 그 짝 마코 앵무는 열매 꼬투리를 찢어 씨를 흩어놓는다네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멀리, 흩어진 씨를 배불리 쪼아먹은 후 어라! 독을 중화시키는 진흙을 먹는다네

베르톨레티아나무 열매는 이름만큼이나 딱딱해 너무 큰 데다 향기도 없어 그 열매를 좋아하는 건 쳇! 토끼만한 아고우티뿐이라네 앞니로 껍질을 깨 속살과 씨를 먹고 남은 씨를 땅 속에 숨긴다네 다른 짐승이 찾기 어려울 만큼 깊이, 싹이 돋아나기 쉬울 만큼 얕게, 잊어버릴 만큼 여기저기

너에게만은 독이 아니라 밥이고 싶은
너에게만은 쭉정이가 아니라 고갱이고 싶은
그리하여 네가 나를 만개케 하는

 

가지에 가지가 걸릴때

 

쭉쭉 뻗은 봄솔숲 발치에 앉아
솔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자니
저 높은 허공에
부러진 가지가 땅으로 채 무너지지 못하고
살아있는 가지에 걸려 있다

부러진 가지의 풍장을 보고 싶었을까
부러진 가지와 함께 무너지고 싶었을까
부러진 가지를 붙잡고 있는 저 살아있는 가지는
부러진 가지가 비바람에 삭아 주저앉을 때까지
부러진 가지가 내맡기는 죽음의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살아있는 가지 어깨가 처져 있다

살아있는 가지들은 서로에게 걸리지 않는데
살아있다는 것은
제멋대로 뻗어도 다른 가지의 길을 막지 않는데

한 줄기에서 난
차마 무너지지 못한 마음과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얼마 동안은 그렇게 엉켜 있으리라
서로가 덫인 채
서로에게 걸려 있으리라

엉킨 두 마음에 송진이 짙다

 

속 좋은 떡갈나무


속 빈 떨갈나무에는 벌레들이 산다
그 속에 벗은 몸을 숨기고 깃들인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버섯과 이끼들이 산다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딱따구리들이 산다
그 속에 부리를 갈고 곤충을 쪼아먹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박쥐들이 산다
그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올빼미들이 산다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깐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오소리와 여우가 산다
그 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는다

속 빈 떡갈나무 한 그루의
속 빈 밥을 먹고
속 빈 노래를 듣고
속 빈 집에 들어 사는 모두 때문에
속 빈 채 큰 바람에도 떡 버티고
속 빈 채 큰 가뭄에도 썩 견디고
조금 처진 가지로 큰 눈들도 싹 털어내며

한세월 잘 썩어내는
세상 모든 어미들 속


 고집

  

참새는 천적인 솔개네 둥지 밑에 몰래 집을 짓는다
무덤새는 뜨거운 모래 밑에 제 몸 수백 배 집을 짓는다
고릴라는 잠이 오면 그제서야 숲속 하룻밤 집을 짓는다
너구리는 오소리 집을 슬쩍 빌려서 잔다
날다람쥐는 나무의 상처 속 구멍집을 짓는다
꿀벌과 흰개미는 집과 집을 이어 끝없는 떼집을 짓는다
수달은 물과 물 중간에 굴집을 짓는다
물거미는 물속에 텅 빈 공기집을 짓는다
바퀴벌레는 사람들 집 틈새에 빌붙어 산다
집게는 소라 껍데기에 들고 다니는 집을 짓는다

세상 모든 짐승들은
제 몸을 지붕으로 덮고
제 몸을 벽으로 세워
제 몸에 맞는 집을 짓고 산다
제 몸이 원하는 대로
제 몸이 기억하는 대로

큼직한 집을 짓는다 살아 있는 하루가 끔찍하다
하나 더 들여놓고 한 평 더 늘리느라 오늘도 나는


미라보는 어디 있는가

                            

미라보
하면 파리의 세느강 위에 우뚝 선 다리였다가
옥탑방 벽에 붙어 있던 바람둥이 혁명가였다가
물리학자였다가 정치가였다가
당신이었다가
퐁네프의 연인들이 달리는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하면 신촌이나 부산 어디쯤 호텔이었다가
파리젠느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였다가
벗은 다리를 감춰주던 침대시트였다가
영등포동에 있는 웨딩타운이었다가
당신 사는 상계동이나 대전의 아파트였다가
엔티크한 삼인용 소파였다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보낸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미라보
하면 세면대에서 놓쳐버린 은반지였다가
간곡히 비어 있는 꽃병 속 그늘이었다
꼭꼭 숨어사는 누군가의 ID였다가
마른하늘에 살풋 걸리는 무지개였다가
문득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미라보, 미라보는 얼마나 격렬한가
이 얼마나 멸렬한가


왼손의 사랑


        버린 사랑 왼손으로 쓰네
        나는 사랑의 왼손잡이


CLOSE UP (느리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권태로운  방 쪽으로  열려진  창문 밑  반대로 놓인  수
화기와 쓰다만 엽서  왼쪽에 거꾸로 깎다만 사과 물끄러
미 왼손 끝에서 덧나는 희망 보이네  물고기뼈처럼 금지
된 그녀


        내가 희망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네 그의 사랑도
        단지 나를 향한 사랑
        위태롭게, 내가 빠져들었네
        나는 나의 노예
        나는 금지되네


   LONG SHOT (무미건조하면서 지루하게)
   길 밖으로  상실한 그녀 흘러가네  지하철을 타고 쇼핑
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설겆이
를 하다 뜨거운 두 손에 이마 묻네 털어내지 못한 사랑이
발목 적시네 차가운 그녀


        내가 멀리 있네
        내 사랑 피어 혼자서 젖고 있네
        잊혀지고 싶은 나처럼 그를 잊고 있네
        나는 나의 노예, 용서하라

 

날아라! 원더우먼

 

뽀빠이 살려줘요-소리치면
기다려요 올리브! 파이프를 문 뽀빠이가 씽 달려와
시금치 깡통을 먹은 후 부르르 알통을 흔들고는
브루터스를 무찌르고 올리브를 구해주곤 했어
타잔 구해줘요 타잔 - 외칠 때마다
치타 가죽인지 표범 가죽인지를 둘러찬
타잔이 아- 아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와
악어를 물리치고 제인을 번쩍 안아들던
아 정글 속의 로맨스
베트맨-. 슈퍼맨- 외치면
망토자락 휘날리며 날아와 조커와 렉스로더를 해치우고
마고트 키더나 킴 베신저의 허리를 힘차게 낚아채던
무쇠 팔 무쇠 다리 육백만불의 사나이들

그때마다 온몸이 짜릿했어, 헌데 말야
문 프린세스 헐레이션-
세일러문 요술 봉을 휘두르는 딸아이를 붙잡고
날 좀 풀어줘- 날 좀 꺼내줘-
허우적댈 때마다 기억나는 이름은 왜
어떻게든 살아나가 물리쳐야 할 악당들뿐일까
왜 난 부를 이름이 없는걸까, 꿈에조차, 왜

 

동백 한 그루

                                   

포크레인도 차마 무너뜨리지 못한
폐허(肺虛)에 동백 한 그루
화단 모퉁이에 서른의 아버지가
우리들 탯줄을 거름 삼아 심으셨던
저 동백 한 그루 아니었으면 지나칠 뻔했지 옛집
영산포 남교동 향미네 쌀집 뒤 먹기와 위로
높이 솟았던 굴뚝 벽돌뿌리와 나란히,
빗물이며 미꾸라지 가두어둔 물항아리 묻혀 있었지
어린 오빠들과 동백 한 그루 곁에서
해당화 밥태기꽃 함박꽃 알록달록 물들다
담을 넘던 이마에 흉터가 포도넝쿨처럼 뻗기도 했지
동백 한 그루 너머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버지 밥상 내던지셨지 그릇들 깨졌지 아버지 서재 오래 비어 있었지
영산포 이창동 소방도로 되기 직전
포크레인이 아버지 대들보를 밀어붙이고
콜타르와 시멘트가 깨진 아버지를 봉인해버렸어도
탯줄 끝에 손톱만한 열매를 붙잡고
봄볕에 자글자글 속 끓고 있었지 저 동백 한 그루
오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가까스로 서 있었지
나 쉬하던 뿌리 쪽으로 고개를 수구(首邱)린 채

 

첫눈


날선 삿대질을 되로 주고 말로 받던 그날밤의 창가에
느닷없는 점령군처럼 함박눈이 내렸것다
서로의 눈이 부딪치고 쨍그랑 겨누던 무기를 놓쳤던가
그랬던가 어둡던 창밖이 우연의 남발처럼 환해지는
저건 대체 누구의 과장된 헛기침이란 말인가
그러자 핸드폰을 귀에 댄 남자가 검은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우산을 옆으로 든 여자가 흔들리는 네온싸인에 사뿐사뿐 제 얼굴을 비춰보고
오토바이를 세운 폭주족 크라운 베이커리 앞에 서서 환한 라이터를 지피고
달리던 자동차가 멈칫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는 천천히 미끄러져 가고
그렇게 무섭게 굴러가던 것들이 일제히 제 둥근 모서리를 쓰다듬고 있었더란 말인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내려앉으며
누군가의 어깨가 누군가의 어깨에 쌓이며
생애 첫눈을 뜬 장님처럼 서로의 눈을 맞추고 말았더란 말인가
염치를 잊고 손을 내밀고 말았더란 말인가, 용서라는
보고 또 보고도 물리지 않는
아 저건 누구의 신파였고
누구의 한물간 낭만적 연출이었던가
그리하여 창밖에 펼쳐진 단막의 해피엔딩이 끝날 즈음
뜨겁게 내리는 저 첫눈에게
그리고 또다시 속아넘어가버리고 말았더란 말인가

 

지나가고 지나가는 2


  미끌하며 내 다섯 살 키를 삼켰던 빨래 툼벙의 틱, 톡, 텍, 톡, 방망이 소리가 오늘 아침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와 수챗구멍으로 지나간다 그 소리에 세수를 하고 쌀을 씻고 국을 끓여 먹은 후 틱, 톡, 텍, 톡, 쌀집과 보신원과 여관과 산부인과를 지나 르망과 아반테와 앰뷸런스와 견인차를 지나 화장터 길과 무악재와 서대문 로터리를 지나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을 지나간다 꾹 다문 입술 밖에서 서성이던 네 입술의 뭉클함도 삼일 밤 삼일 낮을 자지도 먹지도 못하던 배반의 고통도 끝장내고 말거야 내뱉던 악살의 순간도 지나간다 너의 첫 태동처럼 틱, 톡, 텍, 톡, 내 심장 한가운데를 지나 목덜미를 지나 손끝을 지나간다 지나가니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웃고 울고 입을 맞추고 쌀을 사고 종이와 볼펜을 사고 모자를 사고 집을 산다 한밤중이면 더욱 크게 들려오는 틱, 톡, 텍, 톡, 소리를 잊기 위해 잠을 자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틱, 톡, 텍, 톡, 날카로운 구두 뒤축으로 나를 밟고 지나가는 그 소리보다 더 크게 틱, 톡, 텍, 톡, 기침을 하고 틱, 톡, 텍, 톡, 노래를 하고 틱, 톡, 텍, 톡, 싸운다 틱, 톡, 텍, 톡, 소리가 들리는 한 틱, 톡, 텍, 톡, 나는, 지나가는 것이고 틱, 톡, 텍, 톡, 살아 있는 것이다 틱, 톡, 텍, 톡, 틱, 톡, 텍, 톡, 틱, 톡, 텍, 톡……

 

출처, 시전문지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