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장혜승 시모음 / 현대시학

휘수 Hwisu 2006. 5. 12. 08:28

<신인공모 당선작>

(제8회) 2003년 10월호 : 장혜승,손창기

 

 

십자수 뜨다

 

덫에 걸린 물들이 눌러앉은 연못
소금쟁이들 머리 맞대고 수근수근 떠 있다
작은 기척에도 온몸 떠는 물살 앞에
허겁지겁 내려온 황소바람 못둑을 당긴다
못속 팽팽해진다

억장 무너진 삭정이 시끌시끌한 나무들 데리고
들어간다 뒤틀린 숲이 따라간다
소금쟁이들 솜털발 꽂아 십자수 뜬다
가위표 하나씩 수면에 박힐 때마다 내 몸이 따갑다
가위표 드러찬 못 속으로
먹장구름 낙관으로 내리박히자
못속 활딱 뒤집어진다

바깥 세상이 물구나무 선 채 끄떡인다
시퍼렇게 소리치고 싶은 내 몸 사방팔방으로 열려
소금쟁이들 띠줄로 진을 치고
나는 못물 한 장씩 포를 떠
갈라진 행간으로 꾸역꾸역 밀어넣는다

 

굴렁쇠

 

내 몸은 모두 발이다
피리소리도 신명나는 춤도 버린 나는
텅 빈 동그라미다
걸림돌 널려앉은 가파른 길
어디쯤서 끊어질지 모르는 이 길 아닌
다른 길 나는 모른다

들녘 새파란 심장 송두리째 파먹고
외발로 가는 나를 패대기치고 달아나는
너, 돌개바람

가파른 언덕 또 하나 으릉대며 다가온다
마저 끌어낸 울음으로 더 높은 벽을 쌓고
솟구치는 너를 꺾는다

나는 지금 가장 힘든 평지를 가고 있다
내 걸음에 실려오는 피리소리들
춤출 수 없는 어긋난 장단
너무 올라간 울음벽 헐고 용서 무성한
이곳에 절뚝이는 나를 감히 세우고 싶다
내 몸은 모두 무릎이다

 

탱자나무 위 메꽃

 

녹꽃 울창한 함석집 울타리에
서슬 퍼런 정의로 똘똘 뭉친 한 무리
하늘 향해 당당하게 섰다
─접근 금지
감히 실낱같은 넝쿨 하나
가시울타리 깡알깡알 기어올라
저런! 저런?

소나기 사태진 땅을 두드리고
천둥 터지는 소리에 일어난 하늘
눅눅한 세상을 털어 널 때 누가
찢어발기는 소리로 나팔 분다
너, 맨발로 가시넝쿨 오르던 메꽃

팽팽하던 허공이 함성으로 쪼개진다
황금덩이 좍 울타리를 둘러싼다
찢어진 입 귀에 건 햇덩이 함석지붕에 앉는다
지붕 뚫고 차오르는 갓난아이 탄생소리

 

오래 앉았던 언덕 버리고

 

작은 지붕이 전부인 교회 나무십자가 외롭다
열애중의 고추잠자리 스스로 못 박아 더 붉다
나는 오늘도 어제같은 누더기로
이 언덕에 앉아
벗은 십자가를 내려다 본다
서쪽으로 팔 벌린 십자가 피를 말리고 섰다
온몸 불덩이 된 고추잠자리
힘센 날갯짓으로 시퍼런 하늘 휘젓는다
하늘이 끓기 시작한다
십자가에 박혔던 구름들 뭉텅뭉텅 타오른다
나는 오래 앉았던 언덕 버리고
십자가 꼭대기로 나를 던진다
내 몸 속 깊숙이 날아든 교회당
아맨 아맨 아맨
나를 친다

 

소리, 그 소리에

 

중부지방 대설주의보에 놀란 영남 눈떼들 쏟아붓는다. 욕심껏 터잡은 저 오거리의 차량들 과거를 묻으며 앞으로 앞으로 밀려든다 뒷자리에서 오래 침묵하던 낡은 트럭 고래고래 매연 쏘아대며 헛바퀴 굴린다 문구점에서 달려나온 나침반 귀머거리 하늘에다 삿대질 해보지만 드세지는 묵비행렬로 난장판 된 오거리

마침, 하교길 초등학생들 시위대처럼 몰려나온다 아이들 들쳐 업은 책가방들 신호등 발자국따라 달려간다

하늘 고막 여는 필통소리
달그락 달그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