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홍 시모음
1941년 전북 정읍 태인
1964년 전북대학교 국문과 졸업
시집 『칠석날』(2007년)
칠석날
해마다 칠석날이면 마을 잔치가 열린다
들쭉배미 앞 한디시암은
꼭두새벽에 동네 장정들이 일찌감치
울력해서 퍼버리고 덕석 멍석 내다놓고
호박잎 뜯어다가 윷판 그리고
대추나무 끊어 탁윷을 만들어 놓는다
며칠 전 두 표나 더 얻어서
이장으로 뽑힌 정만돌이는
어깨가 으쓱으쓱 궁둥이에 불이 붙어
고샅을 싸돌며 신바람이 났다
마을회관으로 얼른 가서 마이크를 잡는다
동네사람덜!
오늘이 칠석날 우리 마을 잔칫날이구만요
꺽중이네 개 한 마리 사정사정혀서
싸게 잡었응게 다들 후딱 모이시오잉
방귀대회에 나가서
방귀로 동해물과를 불러버렸더니
단박에 일등상을 주더라는
뻥쟁이 만덕이 시켜 개 끌어와서
거적불에 반질반질 윤나게콤
다듬잇돌같이 꼬실라 놓았다
삼손이 애비는
생솔가지 쳐다가 물 끓이고
또복이놈은 어찌 저리 야무지대여
백정놈같이 칼질도 잘허네
동네 아낙들이
주걱에 밥티 붙듯 모여 앉아서
서방들 흉을 보며 마늘도 까고
파도 다듬으며 히히득거리는데
용머리댁이 뜬금없이
머내머내 혀도 여럼엔 미역국에
닭괴기가 최곤디 어쩌고 두런거리더니
혼자서 온갖 아는 체는 다 한다
머웃대 가져와야지 순돌네야
들깨 갈었으먼 치에다 잘 바쳐라잉
서진멀댁은 저분짝이 쑥 백키는가 바서
불단속을 잘 히어야 헌다잉
풍장 치다가 늦게사 끼어든 또또새가
아직 채 익지도 않은 개의 거시기를
날쌔게 오려서는 누가 볼까 무섭게
왕소금도 안 찍고 그만 꿀꺽 삼켜버린다
저 임병할 인간 그 짓 허다가
오밤중에 그거시나 뿌러져뻐려라
아낙네들이 암탉의 그것 같은 입을 비쭉댄다
모두들 하하호호 웃으며 배꼽을 잡는데
점잖은 송영감은 웃음보를 참느라 진땀을 뺀다
심심한 날
오일륙 직후였다
태인 지서에서
칠보 가는 쪽에 봉황식당이 있고
그 바로 앞에 공회당이 있어
주로 극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지서 게시판에는
군사정부의 칙령으로 표어가 등장했다
술에 강한 자 두 홉
술에 보통인 자 한 홉
술에 약한 자 반 홉
통금위반으로
5일 동안이나 콩밥을 먹고 나와 보니
뒤도 하나 안 매랍더라는
우리 동네 걸물 연수는
화도 나고 심심했던지
귀신도 모르게 한밤중
「정읍경찰서 태인지서」의 간판을
「봉황식당」의 거시기와
감쪽같이 바꿔치기했고
도둑 굿 보려다 들켜 자주 다투었던
공회당 극장 앞에다는
두 눈이 다 있는 자는
돈 전부 내고
애꾸는 반액이고
봉사는 돈 안 받는다
붉은 뺑끼로 커다랗게 써놓곤 했다
장손의 집짓기
1
집짓기가 밥짓기라더니
시시콜콜 야금야금 하는 일도 많다
스무 해가 훨씬 넘게 훈장질해서
농협에서 빚도 조금 얻고
농가주택개량자금인가 뭔가도
손 비비며 얻어다가
삼십 평의 벽돌 슬레이트
장손이 살 집을 짓는다
내 복에는 아까운
남 주기는 더욱 아까운
촌에서는 보기 드물게 두둥실 날아갈 듯한
큰 집을 새로 짓는다
모든 걸 맡겨서 하는 일이건만
병신주인이 열 몫 한다는 말만 믿고
뒷짐지고 온종일 서성덤벙거리면서
콩이야 팥이야 상관해보는 일이
난생 처음으로 즐겁다
2
그립고 야속한 사람들아
모두 제 살 자리 찾아 떠나간 빈자리
텅 빈 울안에 내 일곱 동생들의 추억이
앉은뱅이꽃 접시꽃으로 피어나
열하의 몸살을 앓는다
집집이 개 한 마리씩은 다 키우고
집집이 노인들만 억지로 살아남아서
눈깜땡감 엉망진창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혼불 나간 마을
찾아가지도 돌아오지도 않을
옹기 속같이 폭폭하고 칙칙한
복장이 무너지는 한스런 세월인데
달 보름째 기별이 없는 가뭄
비는 오늘도 끝내 내리지 않는다
3
저 옥양목 빨래같이
홍두깨에 칭칭 감겨서
이냥 한 번 실컷 두들겨 맞아나 봤으면
맞아서 저같이 하얗게 바래지는 세월
안 풀리는 영 안 풀리는 세월을
다듬이로 다듬이질로 화풀이하던 아내가
유식한 문자를 써서 한 말씀을 건넨다
가진 것도 놔두고 다들 버리고 떠나는 고향에
무슨 말 못하는 혼이 씌워서
무슨 실성한 넋이 박혀서
병신 육갑하는 집을 짓는가
집을 짓는가
4
인동장씨 남산파
삼십이대 사대 장손
장 아무개 자손만강이라
소원성취 용호 상량
붓글씨로 크게 한 번 써본다
상량 못 하나 가장 실팍한 놈으로
오기로 골라서 침 발라 빼어 물고
못 떠나는 마음을 안 떠나는 마음을
고래 심줄보다 길고 질긴
날개 없는 장손의 먹피 같은 인종을
못 떠나네 땅땅
안 떠나네 땅땅
뚜드려 박고 있는데
몇 대째 같이 사는 늙은 은행나무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웃는다
건성으로 알은 체 측은한 체한다
출처, 푸른시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