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모음
본명 姜洪基
전남 순천 출생
1962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2년 『現代文學』으로 등단
시집,『林步의 詩들 59-74』『山房動動』 『木馬日記』 『은수달 사냥』
『황소의 뿔』 『날아가는 은빛 연못』 『겨울, 하늘소의 춤』 『구름 위의 다락마을』
『운주천불』 『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자연학교』 『장닭 설법』
논저,『현대시운율구조론』 『엄살의 시학』
충북대학교 교수 역임
‘우리시회’ 활동 중
마누라 음식 간보기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즈음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바보 이력서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남들은 명문세가를 좇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넘어
남으로 갔을 때
나는 산을 떨치지 못해 추운 북녘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사람들은 땅을 사서 값진 과목들을 심을 때
나는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세상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더디고
사물을 향한 내 예감은 늘 빗나갔다
그래서 한평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이다.
가시연꽃
가시연은 맷방석 같은 넓은 잎을 못 위에 띄우고
그 밑에 매달려 산다
잎이 집이며, 옷이며, 방패며 또한 문이다
저 연못 속의 운수행각, 유유자적의 떠돌이
그러나 허약한 놈이라고 그를 깔봐서는 안 된다
그를 잘못 건드렸다간
잎과 줄기에 감춰둔 사나운 가시에 찔려
한 보름쯤 앓게 되리라
그가 얼마나 매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는
꽃을 피울 때 보면 안다
자신의 육신인 두터운 잎을 스스로 찢어
창으로 뚫고 올라온 저 가시투성이의 꽃대,
그 끝에 매달린 눈 시린 보라색, 등대의 불빛
누구의 길을 밝히려
굳은 성문을 열고
저리도 아프게 내다보는가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새는 날개로 허공을 받치고 떠오를 때 새다
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 반짝이는 눈으로 지상을 응시할 때 새다
버려진 먹이를 찾아 인가의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먹다 남은 먹이를 얻으러 육식동물의 곁을 어정거리는 놈들은 이미 새가 아니다
철원에 가서 겨울 독수리 떼를 보았는데
인간들이 던져둔 고기에 취해 검은 쉼표들처럼 빈 들판에
날개를 접고 있었다
상원사에 가서 고운 멧새들을 보았는데
방문객들의 손바닥에 올라 스스럼없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새가 아니라 가금(家禽)
언젠가는 닭처럼 날개를 잃게 되리라
간악한 인간의 손들이여
새의 날개를 꺾지 말고
그들을 맑은 날개 위에 올려라
사람의 몸값
금이나 은은 냥(兩)으로 따지고
돼지나 소는 근(斤)으로 따진다
사람의 몸값은 일하는 능력으로 따지는데
일급(日給) 몇 푼 받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연봉(年俸) 몇 천만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한 푼의 동전에 고개를 숙이는 거지도 있고
몇 억의 광고료에 얼굴을 파는 배우도 있다
그대의 몸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은가?
그대가 만일
몇 백의 돈에 움직였다면 몇 백 미만이요
몇 억의 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몇 억 이상이다
세상에는
동장의 자리 하나에도 급급해 하는 자가 있고
재상의 자리로도 움직일 수 없는 이도 있다
사람의 몸값은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가 결정한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