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이중기 시모음

휘수 Hwisu 2006. 3. 10. 00:56

1957년 경북 영천 출생

1992년『창작과비평』가을호에 시「莎里에 가면」외

2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식민지 농민』(도서출판 해성, 1992년)

『숨어서 피는 꽃』(도서출판 전망, 1995년)

[다시 격문을 쓴다] <2005년 6월 도서출판 작가마을>

현재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농민 시인

오랫동안 영천 농민회 회장을 지냄

현재 민주노동당 영천시지부 위원장

                                                 

 

 멸치 사냥


   우리 고모 땀봉고모 멸치 사냥법

   참 일품입니다

   영천 장날이면 땀봉고모 건어물전을 순례하지요

   어슬렁어슬렁 건어물전 순례하면서

   아따, 그 멜치 물때도 곱다

   이거 우예 하는기요?

   땀봉고모 멸치 한 마리 깨물어 보고

   어깨 으쓱 흔들며 옆 가게로 흘러갑니다

   그 사이 땀봉고모 손 잽싸게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옆 가게 멸치더미를 뒤적입니다

   이 멜치 몸피는 와 이래 터실터실 하노

   이건 얼멘기요

   일 바쁜 주인 건성으로 대답하고 등을 돌리면

   땀봉고모 손길 잽싸게 움직입니다

   그렇게 손끝에 묻힌 멸치로 주머니가 차면

   땀봉고모 건어물전 순례는 끝이 납니다

   혼자 사는 우리 고모 땀봉고모 멸치 사냥법

   일품이지요

 

 

꽃은 피고 인자 우에 사꼬


꽃은 피고 인자 우에 사꼬

문을 열면 능금밭 가득 능금꽃이 아찔하게 피어 있는

그 풍경 아득하게 바라보며 비명을 치는 노파

어깨 한쪽 맥없이 문설주로 무너진다

그 모습 힐끗 일별하던 네살박이 손주놈이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중얼거리며 나자빠진다

꽃은 피고 인자 우에 사꼬 

 

나는 기러기의 배후가 되고 싶다


슬픔을 무너뜨리며 기러기 떼 온다

푸른 문장의 시를 읽으며 기러기 떼 온다

더운 삶 시린 사랑을 찾아

그 모든 우여곡절 다 떼기장치고

북국의 얼음 감옥을 뛰쳐나온

기러기의 배후는 인간이다

등 굽고 옹이 많은 선산 소낭구 같은

나는 저 기러기에게 문장을 배우고 싶다

눈에 독기를 빼고 삶의 형틀을 벗고

옹색해도 넉넉한 도랑물을 끌어다

얼음 감옥을 지어야겠다

얼음장 밑에서 미나리는 독을 키우고

혹한의 가슴 빌어 동백은 소식 전하니

저 기러기 떼 푸른 문장을 받아

굽이굽이 환한 삶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더운 삶 시린 사랑을 찾아 달려오는

기러기의 배후가 되어야 한다                                                     

 

밑딱이에 대한 유감

 

요즘은 똥구멍도 호강하는 세월이라고
짜증 섞어 뭉텅뭉텅 신문지를 자르며
할마시는 많이 섭섭한 모양이다

 

빚진 애비 적에는 정낭 구석자리에
새끼줄 걸어놓고 돌려가며 밑을 닦았다
슬픔에 밥 말아먹던 시절 측간에는
물 뿜어 두드린 짚단 세워놓고
그 중 몇 개 겹겹 접어 뒤를 닦았다

할마시의 분기는 가위에 손을 다친다

 

오늘, 못자리하다말고 똥누러 갔다 온
네놈 짓거리는 가히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냇가의 그 많은 돌멩이 풀들 놔두고
버들치 지느러미 힘을 키우는 맑은 물이며
청개구리 혓바닥 같은 나뭇잎도 버리고
팬티 벗어 닦고는 버리고 왔다니……
참, 과타                                                     

 

파꽃

 

참 지독한 몸살이다

 

오욕칠정을 꾸역꾸역 게워 올린다

몇 날을 또 며칠을

저토록 환하게 몸살 앓더니

 

마침내 몸 다 비웠구나

 

홍역 앓는 자리마다

생의 정수리가 보인다

파꽃 정면으로 바라보아라

 

비워서 걸어 놓은 벼랑 참 가파르다

벼랑 위의 한 소리 아찔하다

 

파가 게워낸 오욕칠정을 아낙이 치마폭에 거둔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