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시모음
전북 순창 출생
2003년 <심상>으로 등단
소금꽃
이제는 출렁임을 잃은 바다
균형을 잡으려고 평생을 흔들리며 살았지만
수만 년 바닷속 이야기가 지금은 염전에 갇혀
있다
뜨거운 여름 한낮
염불삼매(念佛三昧)
세상에서 흘린 눈물을 말리는 것이다
인연을 끊는 것이다
흘린 땀이 제 업보를
조이고 있다
마음 가둔 바다에서 사리들이 영근다
소금 속에 생활이 있다
한낮에 소금창고로 가는
절름발이 소금장수 어깨 위에서 생계 한 자루가 출렁인다
사람도 눈물을 가두고 살면
소금 한 섬 얻으려나
눈물 가둔 사람들도 출렁임을 잃은 바다다
섬
눈 내리는 세상은 하얀 섬
길모퉁이에 핀
주황색 나리꽃 속
나는 그 포장마차에서 하얀 국수를 먹습니다
국숫발을 들어올릴 때마다
뒤엉킨 실타래를 쓱쓱 자릅니다
밤새워 평생 육 남매의 실타래를 풀던 어머니는
줄 끊긴 연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고
나는 뒤엉킨 실타래를 쓱쓱 자릅니다
거미
그에게 모든 길은 한곳으로만 통해있다
잘 짜여진 방사형
그 속엔 콜로세움도 있다
사슬에 묶인 이들이 그와 결투를
벌인다
언제나 승자는 정해져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맨손으로 사자를 이긴 적이 없듯이
누구나 사슬에 묶인 채 맨손으로 저항하고
알몸으로 죽어야한다
그것이 규칙이다
한 생명이 쓰러질 때 경기장이 움쭉 움직인다
길들이 잠시 진동하고
주검은 저 검은
사자의 생존을 위한 먹이다
정복군처럼
로마로 통하는 길을 계속 늘려가는 그에게
모든 허공은 길이다
살육의 흔적들이 경기장에
늘어갈 때쯤
구 로마는 부서지고
그는 다시 또 단단한 신생 로마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다
유리꽃
앞차에서 튀긴 작은 돌멩이가 앞 유리창에 부딪힌다
작은 봉오리가 맺혔다
달리는 꽃이 핀다
작은 균열들이 방사형으로 꽃잎을
키운다
그 위에 테이프를 붙이며 따라가다 보면
차 안에도 꽃이 환하다
햇볕에 꽃의 그림자가 내 속으로 투영된다
꽃잎에 붙어있는 흰 반창고
정비공장 마당
해머소리
꽃들이 상처를 중심으로 되돌아 달린다
우수수 유리꽃잎들
정비공장 앞마당에서 바스러지고
있다
나무는 레코드판을 돌리고 있다
인사동 화랑 벽에 걸린 그 판화 속
나는 목향木香 내음 따라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네
나무가 보듬고 있는
동심원의
울림 위에서
나는 레코드판의 바늘, 그의 노래를 거꾸로 읽어가고
옹이에 음이 튀는 곳에서 발을 바꿔 왈츠리듬에
춤을 추며
가네
막다른 길목 탯줄같이 둥근 갈색파이프
흐르던 노랫말이 거기 굳어져 있네
아! 배꼽이다
전생에서 이생으로 쫓겨날
때 떨어진 배꼽
그래서 나무들이 걸어다니지 않고 붙박이별처럼 살았구나
그의 배꼽이 더 단단해지고 있네
레코드판이 지지직
지지직
한결 굳은 배꼽 위에서 전축바늘을 따라 돌고 있네
출처, 네블,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