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 시모음 1
1966년 김천 출생
대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제6회 시산맥상 대상 수상
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조용한 가족>으로 시부문 당선
<난시> 동인, 인터넷 <창작노트> 동인, 부산 부일여중 교사
옹당이
변소에 앉아 똥을 한 무더기 내려놓으며
앞산을 바라보면, 앞 산 또한
하느님의 똥 무더기는 아닐까 상상하며
푸식푸식 웃던 때 생각난다 고얀 놈
하늘이 한쪽 눈을 찡그리고 내려다보는 모습
두려워 고개 살짝 돌리면
감나무가 이치를 깨달은 듯
나뭇가지마다 켜놓고 있던 붉은 동그라미들
감나무 아래 고인 옹당이가 정안수 같아
쪼그려 앉은 자세로 소원을 빌었었다
소원을 들어줄 것처럼 옹당이 속으로
무수히 뛰어내리던 별빛들, 보며
나도 자라 옹당이가 되어야지
무조건 받아내는 포용력을 배워야지 하다가
혹 저 옹당이가 소우주는 아닐까
우주 또한 작은 옹당이에서 발원한
더 큰 물웅덩이일 것만 같았다
나는 무슨 진리나 깨우친 수도승처럼
볼일 보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터진 홍시라도 되는 듯 내 몸을 빠져나간
똥 무더기에서 폴폴 단내가 난다
볼일을 끝내고 마당에 고이면
내 몸 속으로 뛰어 내리던 숱한 별빛들
나도 밤하늘을 비추고 있는 옹당이였을까
내 속에 우주가 넘칠 듯 고여 있었다
서쪽 산으로 잘 익은 홍시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여명이 구수하게
풍겨올 것만 같았다
거미의 습성
어둠이 주춧돌로 들어가서
폐가의 무너진 담벼락을 일으켜 세울 무렵.
거미는 암키와의 자궁 속에서 기어 나와
낡은 건물의 무너지거나
금간 곳으로 침입하는
허공을 먹어치운다.
건물 곳곳 달빛을 그어놓으면
뜻하지 않는 먹이가 날아와 걸려들지만
주로 걸려드는 것은 곤충이다.
거미는 곤충들의 날개 속에 숨어있는
허공만을 갉아먹는다.
거미는 폐가나 수풀 속에서 주로 살지만
인간 속에 공생하기도 한다.
건물 곳곳 함정을 파놓으면
뜻하지 않은 먹이가 날아와서
걸려들지만,
역시 잡식성이 아니다.
걸려드는 먹이가 주로 모기들이다.
모기가 사람들의 몸 속에서 빨아들인
핏속 공허감을 거미는
먹어 치운다.
계간, 시인광장, 2006년 가을호
누이의 지갑
학교 도서관에서 지갑을 잃었다고 허둥지둥
집에 돌아온 누이는 가방을 뒤지다가
1시간 전 발자국들을 찾아 떠났다.
잃어버린 지갑만큼 되돌아간 누이가
잃은 지갑 속 지폐처럼 파랗게 질려
다시 귀가했을 때,
지갑 속에 찰랑거리던 동전들이 반짝
누이의 눈가에서 투명한 액체로 허공에 뿌려졌었다고,
미세 입자가 되어 분해되고 다시 결합하여
별 모양의 발광체로 어둔 하늘에서 빛나더라고,
자꾸만 누이의 어깨가 끄덕거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가을꽃으로 시드는
누이가 안타까워 누이의 이불에다
내 위로와 다정함을 묻었을 때,
누이는 뺨을 비옥하게 만들며 내 가슴으로
들어와 누웠다. 살다보면,
우리가 잃는 것이 어디 지갑뿐이랴.
잃었다고 만원 권 지폐 다발 같은 침대에 누워,
마음을 촉촉이 적시던 지갑 속 같은
공허한 하루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도 모르게 어긋난 기억들을 조합한다고
온 밤을 불면증에 걸린 꽃처럼 울어도
언제나 하늘에는 달이 뜨고 지기를 반복한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다.
누이는 다시 돌아온 시간 위에서
잃은 만큼 성숙해진 표정으로
잠들었다.
애플 주스
부산행 무궁화호 4호차 8번 좌석에 앉아
7번 좌석의 그녀를 빨고싶었다
그녀는 지친 몸을 의자에 묻은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평소 풍만한 가슴을 좋아했으므로
그녀의 잠든 몸에 빨대를 꽂고싶었지만
그녀의 애인이 아니어서
혼자 안타까워져갈 무렵이었다
기차는 수원역을 지나고 조치원을 지나고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무들이 세상의 아랫도리에
뿌리를 꽂고 쪽쪽 빗물을
부끄럽게 빨아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대전이 기차를 멈추어 세웠을 때
그녀가 짐을 챙겼다
그녀가 내 생각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자꾸만 시선이 미끄러졌다
그녀는 한번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기에
내 속에서는 그녀가 넘칠 듯 출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벗어나 역사 앞에서
지금 누군가와 키스를 나누고 있을 터였다
질투가 단맛처럼 돋았다 그러나
신맛이 약간 도는 나의
아 사과 맛 그녀
보름달동네
한쪽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는 저 눈동자 속에 눈부처처럼 마을이 있다
늘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걱정이 많으셔서 한밤 내 유탈한 도시를 염려하듯 주 욱 둘러본다
나도 저 높은 곳에 집 짓고 살아보려 25층 아파트에 이사와 삼 년을 지내고 있다
창을 통해 늘 올려다보아야 하는 마을로 이어진 저 달빛
동아줄처럼 달빛을 붙잡고 오르기에는 내 욕심이 너무 무겁다
눈을 가늘게 떠야 겨우 읽을 수 있는 실타래처럼 얽힌 빛의 지도를 펼쳐 놓고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달 속으로 귀가하고 있다
온 몸의 근육을 풀고 흐느적흐느적 달 속으로 뻗은 길을 힘겹게 올라간다
길 끝에는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서치라이트처럼 눈을 켜놓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하늘 끝에 잘도
서 계신다
모기
내 몸이 장롱 밑에 잠복해 있던 놈의 밥이 된 것은 밤 9시, 귀 뺨을 때리듯 에프 킬러를 뿌려놓고 물린 자국을 긁적인다
부풀어오른 부위를 보며 꼭 작은 무덤 같구나 하던 차에 떠오른 생각이 그래 그놈 내 몸에 제 무덤을 파고 있었구나
흉측한 것으로 태어난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면서 언젠가 편안하게 묻힐 땅뙈기를 찾아 풍수지리하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너의 뾰족한 꽃삽을 보고 나를 해칠 무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 몸의 붉은 흙을 두어 삽 퍼내기도 전에 서둘러 너를 종료시켜버린 아, 나는 성급한 무덤이었다니
내 몸에 들어와 채 누워보지도 못한 너를
늑대
총포사 쇼윈도 앞 박제된 늑대를 본다
으르렁거리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카메라셔터라도 눌렀던 것일까
사진처럼 죽음에 걸려있는 늑대 한 마리
송곳니를 지나던 불빛이 너덜거린다
총신을 헝겊으로 닦고 있는
늙은 남자가 늑대의 주인은 아닐 것이다
야성은 함부로 길들일 수 없는 법
빈틈을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
그는 송두리째 목이 뜯겨져 나갈 것이다
적의 목덜미를 공격하는 것은
늑대다운 슬로건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목이 뻐근했던 것은
늑대의 저 살기殺氣 때문이었을지도
세상의 무수한 총구 앞에서
공격할 적절한 시기를 잡기 위해
죽음 속에 생명을 잠시 은폐시킨 늑대
지나가는 시간이 때가 아니길 바라며
사람들은 꼬리뼈라도 내리고
그 앞을 지나간다
계간, 서시, 2006년 여름호
열 매
창 밖 히말라야 시다 가지 위에 까치 한 마리
날아와 앉아 무언가를 쪼고 있다
나무 열매인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열매가 작은 독을 닮았다
까치는 자신의 단단한 부리로
장독의 뚜껑을 막 열고 있었다
어디선가 구수하게 된장찌개 냄새 풍겨와
배가 몹시 고파지는 저녁 무렵
나는 가난에서 잠시라도 삶을
뗄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열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까치가 한끼 배불리 잘 먹었다는 듯 끄윽끄윽
트림을 길게 토하면서 날아오른다
장독대라도 된다는 듯이 나무가 제 몸에
장독을 묻어 두었으니
제법 실한 가지를 통로로 내 어머니 걸어와서
고향 떠난 배고픈 아들에게 백반이라도
걸게 차려줄 것만 같다
손위의 지도
점쟁이는 마인드 맵 같은 손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손안의 지도를 펼쳐들고 있다
손안에는 수많은 갈래로 뻗은 한 때의 길들
산맥이었을 횡선과 계곡이었을 종선
큰 강이 그 사이를 흘렀다
강물 속에는 물고기들이 미래의 청사진을
궁금하게 읽고 있었다
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길이었던 그때
연어가 걸어다녔던, 조약돌이 굴러다녔던 흔적의
무수한 줄무늬 발자국들
길과 길이 만나서 또 다른 길을 만들었지만
그 길들을 모두 지나보았는지는 불분명하다
한번의 윤회 때마다 나는 손바닥에
한 갈래씩 길을 또 그려 넣었을 것이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어떤 등장인물로 살았을까
길이 길을 만들고 길이 또 여러 개의
갈래 길을 만들 듯
과거는 미래의 지도일지도 모른다
점쟁이는 독도법으로 지금 내 손금을 읽고 있다
억만 분의 일로 축적되었을 지도 모를 지도 위에서
길과 길의 간격,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거리를
측량하고 있다
詩와창작, 2005 3,4월호
순신이 형
순신이 형, 형과의 거리가 창 밖 어둠만큼
캄캄하다는 걸 잘 알아 별빛이 칼날이 되어
그 거리조차 뭉텅뭉텅 잘라내는
8층 임대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접시형 안테나를 세우고 가난처럼 까마득한,
그리운 형에게 타전하고 싶었어
올해는 을유년이야. 그러나
우리에게 임진년 아닌 날 있었을까
산 속에서는 낙엽들이 고분처럼 쌓이고
오늘도 고이즈미는 신사참배를 했다는데
이라크에서는 여전히 포화가 끊이질 않아
산 거북이를 방생하면 거북선이 되는 걸까?
우리의 왕과 신하들은 여전히 탁상 위에
아름다운 공론을 장식 중이었어
하늘에 떠 있는 저 보름달이
형이 준비한 화포라는 것을 잘 알아
달빛이 심지가 되어 타고 있는 하늘 아래
창문을 열어놓고 지구가 왜 하필이면
구체球體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어
지구는 여전히 목표지점을 향해
날고 있는, 형의 포탄 맞지?
계간, 시인시각, 2006년 - 젊은 시인을 찾아서
조용한 가족
무상 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가 직장이기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이곳에서 사표를 낸다는 것은
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주로 일층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고층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시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 이동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몇 사람 더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으니
한 두 집 더 빈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弔燈을 내걸었다.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앉아 있다.
일부는 여전히 복도를 서성이다가
아무런 말없이 일층을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들처럼
따른다.
200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발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언대로 선산에 묻어드렸다
무덤 가에는 여기저기 암세포들이 만발했다
땅 속에서 차 올랐던 복수腹水가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내며 계곡으로 흘러들었다
손톱들이 언 땅을 벅벅 긁어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땅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은 모두 다 파랗게 질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모처럼 액정 화면을 환하게 켜놓고 있었다
구름들이 여기저기 문자메시지처럼 찍혀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은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에 휴대폰이 나왔다
휴대폰도 아버지처럼 죽어 있었다
외투 주머니가 땅 속이라는 듯 편히 누워 있었다
나는 외투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안방으로 옮겼다
따뜻하게 전원을 넣었다
휴대폰 속에서 호흡 고르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한 순간 아버지가 액정을
번쩍 뜨셨다
격월간, 시와창작, 2006
포구
술에 취해
어두운 포구에 나가본 적 있다
방파제에 올라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시선 머무는 거기 포장마차 있어
나를 부른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손짓처럼 하얀 갈매기 날고 있다
2차를 위하여
파도치는 저 광활한 술잔 속으로
몸 던지고 싶었다
술잔 속에는 배들이 정박 중이고
배가 실어온 파도들이
내 명치 속으로 흘러 들어와 찰랑인다
한 사내가 부두에 묶어둔
그림자를 풀고있다
일엽편주가 되어 떠나려는 자여
나는 또 그대 뒷모습에 취해
이 밤을 밝힌다
등대라도 뽑아 가서 그대
어두워진 등에 불빛을
붓고싶다
국제신문, 2006. 05.31
몸옷
응급실 침대 위에 누군가 걸쳐놓은 저 몸은,
애초 옷이었다
다시 껴입기가 불편할 것이고 볼썽사나울 것이고
자기 옷 아닌 것처럼 어색할 것이다
몸도 오래되어 낡고 해지면 그만 벗어두어야 한다
새 몸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어울리지 않는 몸 한 벌 벗어두고 그대
여벌의 허공을 입는다
그대가 벗어둔 몸은 누군가 단정하게 개어
상자 속에 오래오래 잘
보관해둘 것이다
시와 창작, 2005년 3,4월호
낙원빌라
오전 8시,
아내를 출근시키고, 아침 연속극을 보며 웃다가 울다가, 설거지를 끝내고 잠시 쉰다.
낮잠이, 나를 꿈으로 잉태한다.
내 꿈의 코드는 질긴 고무장갑이다. 혹은 오토리버스다.
꿈속에서 텔레비전이, 나를 연속극으로 관람 중이었다.
깨고 나서도 꿈 안쪽이 콩닥거린다.
凶夢이다.
청소를 한다. 내 몸에 진공청소기를 댄다.
권태, 무료, 지겨움, 고달픔, 외로움, 신경질, 불안, 초조, 분노, 미움, 슬픔, 짜증......
부정적인 것일수록 희망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청소기로는 제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스카치테이프를 반대로 돌돌 말아,
꾹꾹 눌러 죽인다.
떨쳐버려야 될 것들이다.
전화가 온다.
나는 몸밖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옆 집 짧은 부부싸움을 길게 늘여 이야기 하다가, 이야기 듣다가, 눈물 훔치며 깔깔거리다가........
용기를 내, 내 心境을 고백한다.
-내 속은 온통 신간 시집이야. 아무도 나를 읽어주질 않아. 나는 내가 지겨워,
수화기를 내려버린다.
뚜-뚜-
가끔은, 두꺼운 건물을 몇 겹으로 껴입고도 춥다.
나는 부음이 날아들 것 같은 겨울철이어서,
몸 속의 보일러라도 틀어야겠지만,
몸통을 열 열쇠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추위란 조금만 참으면, 견딜 수 있는 아내와도 같아서, 별 걱정은 없다.
내 무감각이 마스터키다.
옆 건물 아줌마는 끝내 짐을 꾸려
아이들과 함께 친정으로 떠났다 하고,
윗집 예수 님들 급하게 계단 뛰어 내려오는 소리,
어제까지 멀쩡하던 윗집 하느님이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나는 거실 전원을 모두 올리고, TV도 켜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몸 속 누군가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내 몸이 깜짝깜짝 열리는,
오후 8시
수화
그는 나무다. 상록수다. 그의 입은 가지이고
그의 언어는 푸른 잎이다.
그가 나이테에 가둔 말을 풀어낸다.
그는 가지 가득 말을 올려놓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잎사귀를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푸른 빛이 시끄러울 뿐이다.
대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잎을 오물거린다.
잎이 점점 深綠色이라는 것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한 증거.
그가 역방향으로 자신의 가지를 흔든다.
사람들은 멀찌감치 멀어져서 곁눈질이다
사람들도 나무다. 단풍나무다.
방언이 깊어 사람들은 늘 가을이다.
불필요한 상징을 없애고 나면
늘 그와의 앙상한 거리를 드러낸다.
그와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삶이다.
그러나 그는 아픈 나무다.
자신의 말에 늘 찔리는 상록 침엽수다.
오늘도 대문 밖에서 그가 푸른 잎을 떨군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도
귀를 막는다
현대시학, 200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