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윤성학 시모음

휘수 Hwisu 2006. 4. 8. 00:15

 

 

1971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에 당선

<농심> 홍보팀 근무

 

 

불, 달린다

 

 

며칠 째 자리가 비어잇다

같이 일하는 여사원

그녀의 고향집

이번 산불로 집과 비닐하우스를 잃었다

버섯과 고추를 알뜰히도 태웠다

 

밤에

불이 산에서 뛰어내려 오는 것을

뻔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가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가랑이를 쭉쭉 벌리며

마구 쏟아져 내려와서는

지붕에 철퍼덕 엎어졌다가

금세 일어나서 또 뛰어가더라고 했다

노부모도 덩달아 뛰었다

 

며칠 만에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머리칼에서

버섯 굽는 냄새가 잠시 피어 올랐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가 불 붙으면

얼마나 달릴 수 있을지

불덩이로 확 덮쳐버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정말 미안했는지

꿈속에서 물동이를 날라주느라

자고 일어나니

어깨가 부서진 듯 아팠다

 

시집 - 당랑권 시대(2006년 창비)

 

 

마중물

 

 

참 어이없기도 해라
마중물, 마중물이라니요

 

마중물 : 펌프로 물을 퍼올릴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
( 문학박사 이기문 감수 「새국어사전」제4판, 두산동아)

 

물 한바가지 부어서
열길 물속
한길 당신 속까지 마중 갔다가
함께 뒤섞이는 거래요
올라온 물과 섞이면
마중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텐데
그 한 바가지의 안타까움에까지
이름을 붙여주어야 했나요
철렁하기도 해라
참 어이없게도

 


 시집 - 당랑권 전성시대 (2006년 창비)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