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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쁜 여자는 시 잘 쓰면 안 되나, 시인 김선우 / OhmyNews 홍성식기자

휘수 Hwisu 2007. 3. 2. 01:31

왜? 예쁜 여자는 시 잘 쓰면 안 되나 / OhmyNews 홍성식기자

 

'모든 가능성은 청춘에서 찾아진다'는 명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문학의 가능성 역시 청년작가들에게서 찾아야함이 분명하다. '작가와 기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 그들과 공유한 시간 속에서 얻어진 후일담을 통해 한국 젊은 문학의 이면을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거두절미하고 이런 시는 한국문학의 한 지형을 바꾼 기념비적인 것이다. 읽어볼 텐가?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중 '얼레지' 부분.

 

오랫동안 한국시단(詩壇)에서 '여성'과 '여성성'이란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였고, 주체가 아닌 객체였으며, 핵심에서 비껴난 곁가지였다. 시인 김선우(33)의 시들은 이런 부조리와 불합리를 단숨에 전복시키는 충격으로 우리에게 왔다.

 

좌파운동권 출신의 예쁘장한 시인이 노래하는 존재모태로서의 어머니와 생산자로서의 여성. 익숙하고도 생경한 이 테제에 몇몇은 존경 섞인 환호성을 올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곱살하게만 생긴 어린 네가 뭘 안다고'라는 조소의 눈길을 보내며, 발칙해(?) 보이는 그녀의 시와 윤기 흐르는 긴 생머리를 애써 폄하했다.

 

기자 역시 김선우가 내놓은 시집과 산문집마다에 딴죽을 거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예쁘다는 것이 작가의 문학에 월계관을 씌우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작품을 깎아 내리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도 안 된다.

 

헐리우드의 여우(女優) 샤론 스톤이 <원초적 본능>에 등장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은 슈퍼모델 출신인 그녀를 두고 '예쁘기만 하지 연기는 최악이다'라는 혹평을 내렸다. 하지만, 불과 5~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라스트 댄스>와 <카지노>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도 샤론 스톤의 연기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서울 신촌이나 인사동 혹은, 그녀가 거주하는 강원도 문막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김선우와 소주잔을 기울여본 시인과 소설가들은 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닭똥집 안주를 거침없이 먹어치우고, 고만고만한 또래 작가들의 어깨를 큰누나처럼 두드려주는 김선우의 아름다움이란 '스스로 의도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란 사실을. 그 격의 없음과 넉넉함은 인간이 아닌 고향의 풍광까지 모성(母性)으로 감싸안는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氷花)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대관령 옛길' 중에서.

 

울릉도를 여행한 김선우는 '저마다 성정과 피부빛과 느낌이 다른 그 아름드리 나무들을 일일이 쓰다듬고 인사해 주기에도 한 생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을 쓴다.

세상에 존재하는 하찮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혜안(慧眼). 시란 무엇이고, 시인이란 무엇인가? 예쁜 눈으로 예쁜 인간과 예쁜 자연을 찾아가는 김선우의 태도에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듯하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라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김선우의 유년시절을 지배했다. 능동과 저항의 삶을 설파하고 있는 이 짧고도 강렬한 문장을 가슴에 담아두는 한 김선우의 '예쁨'은 세월을 뛰어넘을 것이며, 그녀 시의 아름다움 역시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