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문집, '패스포트' / 김경주 시인
시인 김경주.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했고, 2006년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다. 이로 문단 안팎의 큰 반향을 일으키며 첫 시집으로는 드물게 1만부 가까이 팔림으로써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시단의 대형신인으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당문학상 수상후보에 최연소로 합류했고, 신동엽창작상 최종후보에도 올랐다 최종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의 나이 서른 둘, 시를 향한 그의 피는 여전히 그렇게 뜨겁고 줄곧 달궈진 상태이며 앞으로도 오래 그러할 것이 분명하다. 시에 있어 그는 바람이므로, 또한 바람이 그치는 순간 사람은 영원히 바람이 될 터이므로.
그런 그가 첫 번째 산문집을 펴낸다. 여행의 시작이자 끝인, 그리하여 여행이라는 존재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그러니까 <패스포트>. 여름 고비에서 겨울 시베리아.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2월까지 시인 김경주는 고비와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여타의 그렇고 그런 여행 관련 책들과는 이는 영 다르다. 아니 도통 같을 수가 없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에, 놀이에, 쇼핑에 관련을 짓는 책들이 가지 않을 루트로만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썼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보니 여행이기보다는 고행이다. 그러나 누가 이러함을 고뇌와 깨달음의 고생스러운 시간이라 쉽게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첫 발은 바로 이 칼날 같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을.
그의 패스포트 속에는 고비와 시베리아, 이렇듯 입국과 출국을 허락한 두 나라의 도장이 분명 하게 찍혀 있다. 그 증거처럼, 그는 그곳에서 울었고 웃었고 아팠고 견뎠으며 사랑했고 이별했던 제 마음의 순간순간을 도장처럼 이 책에 꾹 눌러 말렸다. 때문에 이 책은 우리에게 전혀 친절치 못하다. 그러나 그러한 거칠음이 때론 우리에게 더한 매혹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모래처럼 꺼끌꺼끌하고 성긴 글자들과 문장 속에서 우리들이 비집고 들어갈 어떤 틈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스포트>를 읽다 책이 아닌 제 마음에, 제 기억에 집중하느라 책장 넘기는 속도가 뒤쳐진다면 이는 예상할 수 있는 모두의 반응일 터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여권에는 어떤 기억이 존재하고 있을 것인가. 되짚다 보면 어느새 밤이고 아침이고 나날일 터, 그렇게 삶이라는 패스포트는 제 페이지를 다해간다는 것!
김경주 시인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삼성생명 카피라이터, EBS 사회과학 탐구 부문 구성작가로 활동했으며, 서강대 철학과 재학 중 친구들과 독립영화사 '청춘'을 설립하여 무단편영화 작업들을 하기도 했다. 2006년 현재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사 '고골 픽쳐스'에서 시나리오 팀장으로 재직 중이다.지은 책으로 <당신도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다>, <노빈손의 판타스틱 우주 원정대>, 시집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가 있다.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중앙, 2006)가 있다.
“갔다가 돌아오는 게 아닌, 낯선 곳에서 사라져 버리는 듯한 여행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유령처럼. 사라진 나그네의 생을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문서는 여권이죠. 책 제목을 <패스포트>라고 정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 김경주(31)씨가 여행산문집 <패스포트>(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를 냈다. 그는 지난해 8~10월 고비사막, 12월부터 올 2월까지는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거친 여로에서 돌아와 집중적으로 쓴 이 책은 통상적인 기행문 형식과 거리가 멀다. 시공간을 일러줄 푯말은 보이지 않고 풍경과 대면한 작가의 사유가 오롯하다. 산문에서 시로, 서간으로, 희곡으로, 형식은 다채롭게 변주된다.
고비사막 여행기에는 ‘유목’, 시베리아 여행기에는 ‘유형’이란 이름을 붙였다. 김씨는 이동식 천막 게르를 말 등에 얹은 유목민들이 삶을 떠도는 모래땅에서 “문득 말(語)의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시작했던 사랑이 시라는 생각”(89쪽)을 하고, 정치범 유배와 소수민족 강제 이주가 자행됐던 동토에서 만난 히피들의 차가운 눈빛에서 “그들은… 러시아가 악보의 오선지 위에 아직 그리지 못하고 있는 굶주린 음표들”(291쪽)임을 간파한다.
[한국일보]
출처,우원호와문화산책